뒷북인데, 조성모의 최근 무대를 보고 마음이 좀 많이 아파졌다. 여전히 노래 참 잘한다. 그리고 수트빨도 장난 아니다. 그런데 노래의 이미지를 반영한 헤어가 몹시 어색했고, 노래는, 편곡은, 그리고 프로듀싱은, 아…. 그 문제적 노래 ‘바람필래’는 조성모의 지난날을 기억하는 모든 이들의 심장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그 곡을 만든 자들은 굳이 조성모한테 노래를 안 줘도 되는 ‘형제’ 같았고, 조성모 역시도 굳이 그들과 그렇게 ‘용감한’ 협력을 이룰 필요가 있었나 싶어졌다. 나는 여전히 조성모가 노래하는 순간을 지지한다. 하지만 그런 프로듀서와 만나는 그런 순간까지 너그럽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토록 마음이 아팠던 건 조성모가 용감해질수록 내가 기억하고 또 누군가와 나눠왔던 그의 아름다운 시절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떠오르기 때문이다. 고교시절 수업이 끝나고 청소가 시작되면 교실마다 TV를 켰다. 학급의 TV로 방송부 교우들이 녹화한 테이프가 각 교실로 전송됐기 때문이다. 당시 단골 메뉴는 조성모 데뷔곡 ‘To Heaven’의 뮤직 비디오였는데 그 대작 안에서 무엇이 빵빵 터지고 결국 누가 죽는지 우리는 이미 다 알았다. 근데도 우리는 진정으로 가슴을 졸이며 TV 앞에 붙어 클라이막스를 기다렸고 주요 멜로디를 표정까지 바꿔가면서 따라 불렀다. 우리의 암담한 교실은 그렇게 극장이 되었고 공연장이 되었다.
조성모는 남친과 가난한 시간을 나눌 때도 옆에 있었다. 학교 앞 후미진 식당에서 삼천구백원짜리 왕돈까스를 썰던 어느 날 나는 그가 다시 부른 ‘가시나무’가 이토록 아름다운 곡이었음을 문득 실감했다. 그의 은은한 노래는 싸구려 돈까스를 낭만적인 레스토랑의 식단으로 만들어주었다. ‘가시나무’가 실렸던 그의 리메이크 앨범 [Classic]은 계속해서 돌아갔고 ‘잃어버린 우산’, ‘너를 사랑하고도’, ‘입영열차 안에서’, ‘비창’ 등등이 이어졌다. 먹다 말고 소리에만 집중했을 만큼 감미롭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어쩐지 슬펐다. 조성모는 막연히 음색이 좋은 보컬리스트가 아니었다. 원곡에 대한 깊은 이해를 탑재하고, 노래가 의도했던 감정을 고스란히 안겨주는 탁월한 전달자였다. 그렇게 기쁨과 슬픔을 한꺼번에 느끼며 조성모의 해석을 나는 진지하게 감상했다. 미사리의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진심으로 음미하는 숱한 언니들의 아련한 표정으로.
이후 조성모는 다시 리메이크 앨범을 발표했지만 [Classic]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조성모는 다시 새로운 발라드를 불렀지만 ‘To Heaven’ 만한 적극적인 응답은 돌아오지 않았으며 결국 ‘바람필래’라는 극단을 택했다가 내게 작은 상처를 주었다. 이런 걸 보면 한 가수가 어떻게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유지를 취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은 참 어렵다. 전문분야가 발전의 폭이 상대적으로 좁을 수밖에 없는 발라드라면 더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무력한 나는 다시 가슴이 아프다. 그런 그에게 ‘바람필래’ 같은 노래와는 제발 거리를 두었으면 한다는 바람 말고는 할 말이 없기에, 뾰족한 대안을 주지 못한 채 지나간 아름다운 순간만을 반추하며 그의 재기를 기대하고 있기에.
[글: 이민희 대중음악 평론가]
취미이자 직업으로 음악을 듣고 있다. 그리고 취미이자 직업으로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취미일 때 즐겁지만 직업일 때 고민되는 건 몇 년째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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