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무런 생각 없이 브라운관을 응시하고 있다가 그를 목격했다. 상표도 떼지 않은 휘황찬란한 옷을 입은 청년들이 기존의 가요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화려한 춤사위를 선보이고 있었다. 양현석과 이주노를 대동하고 수줍게 첫 스테이지를 가진 청년이 세상을 들었다 놓은 화제의 대상이 될 것이라 예상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는 헤비메탈 밴드 시나위의 베이시스트 출신 서태지였고, 그의 첫 무대였던 ‘특종 TV연예’의 전반적인 평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 충격적인 방송이 전파를 탄 지 20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음악은 무언가 탈피를 시도하는 중이었다. 아니면, 뭔가 새로운 혈액을 주입 받아야 했거나. 어쨌든 이문세와 변진섭으로 이어졌던 기존 발라드가 헤게모니를 서서히 잃어가던 시점이었고, 소위 ‘정형화할 수 없는 아이들’로 명명된 새로운 세대의 취향은 물려받았던 것을 완전히 거부하고 있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강렬한 이미지’와 ‘새로운 콘셉트’였다.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의 타이틀곡 ‘난 알아요’는 정확하게 그에 부합하는 트랙이었다고 할 만했다.
미국의 립싱크 보컬그룹 밀리 바닐리(Milli Vanilli)의 ‘Girl, You Know It’s True’의 멜로디가 샘플링된 이 노래는 트래디셔널한 가요 작법의 지형도를 뒤바꾼 곡이 되었다. “난~~알아요! 이 밤이 흐르고 흐르면~”으로 시작하는 강렬한 인트로, “오 그대여, 가지 마세요~”부터 발을 떼는 슬로 템포의 무드, 모든 중고생을 경악에 빠뜨린 회오리춤, 그리고 브릿지 부분에 삽입된 헤비메탈 연주까지. 이 모든 요소가 버무려져 한 곡에 녹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하나의 거대한 모자이크였다. 그는 곡을 ‘뽑아 내지’ 않았다. 대신 잘라냈고, 오려 붙였다. 사실 이 방법을 국내에서 서태지가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러했듯 역사는 승자의 편으로 자리했다.
하여간 저류에 깔린 묵직한 무언가가 이동하고 있었다. 서태지는 이 곡으로 청소년의 아이콘으로 등극했으며, 이제 그(녀)들의 주머니를 여는 것이 곧 성공의 열쇠가 되었다. 서태지의 빅뱅을 기점으로 대형 기획사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생겨났다는 점만 주목해도 감지할 수 있다. 그 공과를 이 자리에서 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아무튼 서태지, 그리고 이 곡을 기점으로 세상이 달라지고 있었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다. 때는 1990년대 초반이었고, 사회적으로 어수선한 시기였지만, 그의 등장으로 인해 수많은 동료들과 선배들은 입장시기를 저울질하며 서로 눈치를 보아야 했다. TV를 틀지 않아도, 정말 모든 장소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러니 이것은 ‘히트곡’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의 현상에 가까웠다.
이 곡과 함께 ‘뒤섞음’의 시대가 왔다. 그가, 그리고 한국 대중음악이 나아가게 될 방향이었다. 후속 앨범에 수록된 ‘하여가’(1993)에서도 서태지는 ‘배합’의 한 경지를 제시하며,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게 될 것이었다. 아이돌의 전성기가 목전에 있었다. 이런 진행을 그가 의도했던 것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실제로 겨냥했던 목표보다 더 커다란 사냥감을 잡고야 만다. 회사들은 그가 명중한 표적의 반경보다 훨씬 더 넓은 면적을 보고 있었다. 그들의 본격적인 공습은 서태지가 은퇴한 1996년 1월 이후 본격화되게 될 것이었다.
타이틀이 거창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원자폭탄으로 도시 하나를 순식간에 박살내버리거나 멀쩡한 강바닥을 파내서 생태계를 초토화시키는 정도쯤이나 되야 세상을 바꿨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설득할 생각은 없다. 다만, 노래가 세상을 바꾸는 방식은 투표의 작동원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한 장의 투표권이 공동의 지향과 만남으로써 세상을 (좋게든 나쁘게든) 바꾸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하나의 노래는 대중의 정서와 호응함으로써 한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규정하는 이정표로 우뚝 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바꾼 노래'들을 주목했다. 당초 19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전체를 아우르는 기획으로 준비했으나,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의 제약으로 여기서는 1970년 이후 발표된 노래들을 시대순으로 소개하기로 했다는 점도 밝혀둔다. 더불어, 여기에 미처 소개하지 못하는 노래들은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을 것이라는 약속도 함께 드린다.
영문학과 철학을 전공했고 현 대중음악평론가로 활약하고 있다. 잡지 [오이뮤직], [프라우드], [브뤼트]의 필자로 있었고 현재는 웹진 '100비트' 편집위원, '보다', 매거진 [독서평설], [유레카]의 필진이다. [네이버 오늘의 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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