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음악사에 뚜렷한 의미를 각인한 노래들을 매주 2회씩 연재한다. 혹자는 '세상을 바꾼 노래'란 타이틀이 거창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원자폭탄으로 도시 하나를 순식간에 박살내버리거나 멀쩡한 강바닥을 파내서 생태계를 초토화시키는 정도쯤이나 되야 세상을 바꿨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설득할 생각은 없다. 다만, 노래가 세상을 바꾸는 방식은 투표의 작동원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한 장의 투표권이 공동의 지향과 만남으로써 세상을 (좋게든 나쁘게든) 바꾸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하나의 노래는 대중의 정서와 호응함으로써 한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규정하는 이정표로 우뚝 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바꾼 노래'들을 주목했다. 당초 19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전체를 아우르는 기획으로 준비했으나,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의 제약으로 여기서는 1970년 이후 발표된 노래들을 시대순으로 소개하기로 했다는 점도 밝혀둔다. 더불어, 여기에 미처 소개하지 못하는 노래들은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을 것이라는 약속도 함께 드린다.
이장희는 당대에 포크 가수로 인식되었고 지금도 포크 록을 했던 뮤지션으로 평가 받는다. 그렇다면 앞서 '세상을 바꾼 노래'에 이름을 올린 김민기, 양희은, 방의경의 뒤를 따라 또 한 명의 포크 싱어가 추가되는 걸까? 도무지 그렇게 볼 수 없다는 건 ‘그건 너’의 유명한 후렴 “그건 너!” 딱 3음절만 흥얼거려보면 금세 탄로가 난다. 다만 김추자처럼 뇌쇄적이거나 신중현의 밴드처럼 황홀하지 않았기에 이장희는 일단 포크 계열로 분류되었다. 도대체 그는 어떤 포크를 했던 것일까
3분 안에 마무리되는 이 노래에서 받는 첫인상은 연주가 무척 깔끔하다는 것이다. 저음을 부지런히 다지는 베이스와 토닥토닥 안정적인 리듬을 들려주는 드럼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클린 톤으로 찰랑거리는 일렉트릭 기타는 얄미울 정도로 야무지다. 비트가 조금 가미된 흥겨운 포크에 딱 어울리는 반주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포크 록이라 부르려는 순간, 돌연 망설여진다. 이 반주에는 우리가 떠올리는 통상적 의미에서의 록의 자태가 없다. 보컬도 오묘하긴 마찬가지다. 당대의 록 보컬처럼 소울풀하거나 끈적거리거나 걸걸한 구석은 없다. 그렇다고 양희은이나 방의경처럼 순수의 어딘가를 향하는 것도 아니다. “우연히 마주친 동창생 녀석이 너 미쳤니 하면서 껄껄 웃더군”이라는 노랫말을 별다른 가창력 없이 구수하게 불러 넘기는 어떤 한 사내가 있을 뿐이다. 그 오묘한 사내의 노래에 1973년의 대한민국은 열광했다. 음반은 삽시간에 5만장 이상 팔려나갔다. 이장희는 패티김, 장현, 어니언스와 함께 그 해의 가요계를 접수했다.
분명한 건 너무 꼿꼿한 통기타 포크와 너무 울렁대는 소울/사이키델릭 모두에게서 한 발자국씩 떨어져있는 음악을 사람들이 신선하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원인은 이장희의 뒤를 깔끔하게 받쳐준 세 명의 연주인이 제공한 것이고, 그들이 바로 동방의 빛이다. 동방의 빛은 기타리스트 강근식이 1960년대 말부터 이장희와 절친했기에 꾸려질 수 있었다. 그는 군 제대 후 다시 이장희를 만났고, ‘그건 너’가 발표되는 그 해에 세션맨으로 활동하던 베이시스트 조원익과 드러머 배수연(후에 유영수로 교체. 키보디스트 이호준 영입)을 끌어들여 팀을 만들었다. 친구 이장희와 이장희의 제작자였던 오리엔트 프로덕션 나현구 사장의 요구로 시작된 팀은 그때부터 새로운 스타일의 밴드 연주를 들려주며 한국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긋는다. 대마초 파동 후 오리엔트가 문을 닫기 전까지 그들의 로킹하지 않은 일렉트릭 사운드의 수혜를 입은 포크 가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영화 [별들의 고향] 사운드 트랙과 현경과 영애의 음반이 그랬고 양병집, 4월과 5월,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김의철 등도 그들의 연주를 담았다. 누구누구 악단, 누구누구 작편곡집이라는 가요 제작의 오랜 관행에서 벗어난 동방의 빛 사운드는 새시대의 시작이었다. 더불어 이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하고, 가수를 스카우트하고, 동방의 빛을 위해 최신 악기를 구입하기 바빴던 나현구 사장도 새시대의 인물이었다. 그는 그때까지 존재해본 적이 없는 진정한 의미의 프로듀서였다.
배후야 어찌됐건 역시 주인공은 노래를 만들고 부른 이장희였다. 그는 당대의 아이콘이었다. 1970년대 초의 포크에서 뻗어 나온 무엇이긴 하되, 어딘가 어둡고 은밀한 구석을 품은 이장희의 노래들은 캠퍼스와 살롱에 한정돼 있던 청년문화를 온 국민이 기웃거리고 향유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만들었다. 청바지, 통기타, 생맥주 중에서 생맥주의 친밀감과 말 못할 숱한 사연 쪽으로 사람들을 이끌었다고나 할까? 그때의 청년들은 그를 2년 남짓 달콤함을 맛보다 대마초 파동 한 방에 사라져버린 옛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겠지만, 그는 그것보다는 한 단계 더 위대한 인물이다. 그는 훗날 사랑과 평화를 데뷔시켜 파란을 일으켰고, 김현식의 데뷔 앨범을 제작했으며, 들국화의 최성원을 휘하에 거느렸다. 그의 혜안은 1980년대 내내 위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몇몇 직장과 각종 알바와 잡일을 하며 보낸 10년 동안 꾸준히 음악에 관한 글도 써온 두 딸내미의 아빠. 청소년 대중음악 입문서 <주머니 속의 대중음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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