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하게도 롤링 스톤스는 항상 2인자였다. ‘(I Can't Get No) Satisfaction’으로 처음 미국 차트를 점령했을 때는 비틀스(The Beatles)가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었고, [Sticky Fingers]와 [Exile on Main St.]를 통해 음악적으로 최고의 정점에 도달했을 때도 지구상 최고의 록 밴드라는 왕좌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에게 양보해야만 했다. 하지만 신은 공평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비틀스와 레드 제플린은 최고의 자리에 올랐던 저주로 불과 10년 남짓한 짧은 전성기를 끝으로 전설 속의 이름이 되어버렸지만, 롤링 스톤스는 끊임없는 음악적 열정과 질긴 생명력을 부여받아 지난 반세기 동안 현재진행형의 록 밴드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굴러온 돌이 아직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초창기의 롤링 스톤스는 척 베리(Chuck Berry)와 버디 홀리(Buddy Holly), 머디 워터스(Muddy Waters)의 곡들을 커버하면서 전통에 충실한 록 밴드로서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비틀스의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로부터 제공받은 ‘I Wanna Be Your Man’이 역사상 첫 히트 싱글이 되면서 밴드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것을 계기로 믹 재거와 키스 리차드는 좋은 곡을 스스로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인식했고, 이후 작곡 능력을 향상시키는데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롤링 스톤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처음으로 주목해야 할 작품이 [Aftermath]인 것은 그 때문이다. 믹 재거와 키스 리차드가 만든 곡들로만 온전하게 채워진 첫 앨범이었으며, 냉소적이지만 매혹적인 ‘Mother's Little Helper’와 ‘Under My Thumb’, 지나치게 서사적이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Goin' Home’은 당시 대세를 이루던 비틀스의 음악 스타일과는 분명하게 차별화되는 정체성을 확립한 기념비적인 곡들이다.
롤링 스톤스의 신화를 만들어낸 결정적인 앨범이자 이후 록의 방향을 제시한 1960년대 최고의 명반인 정규 6집 [Aftermath]의 리마스터 영국반으로 'Mother's Little Helper', 'Under My Thumb', 'High And Dry', 'Out Of Time' 등이 수록되어 있..
물론, 롤링 스톤스의 음악이 매스컴과 호사가들에 의해 숙명적인 라이벌 관계가 형성된 비틀스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증명하는 사례도 있다. 롤링 스톤스가 가장 급진적이고 실험적인 음악성을 보였던 1967년의 문제작 [Their Satanic Majesties Request]는 그보다 조금 앞서 공개된 비틀스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앨범 커버와 음악성을 의도적으로 쫓아간 결과물이라는 의혹을 받았다. 애초의 의도와 어떻든지 간에 [Their Satanic Majesties Request]가 미적지근한 반응을 얻어내는데 그치면서 롤링 스톤스는 다시금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악성에만 몰두하기로 결심했(던 것처럼 보인)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겪은 전화위복의 계기였다. 결과적으로, 롤링 스톤스는 이듬해부터 [Beggars Banquet]과 [Let It Bleed], [Sticky Fingers]와 [Exile on Main St.]로 이어지는 걸작 퍼레이드를 완성하면서 화려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그러나 [Their Satanic Majesties Request]는 틀림없이 후세에 재평가를 내릴만한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사이키델릭과 스페이스 록에 월드 퓨전까지 아우르는 혁신적인 음악성은 비틀스가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서 풀어낸 안정적인 실험성보다는 틀림없이 과감하게 한발 더 나아간 것이었다. 롤링 스톤스의 이름을 빌어 나온 작품이 아니었다면 매우 훌륭한 사이키델릭 록 앨범으로 평가받았을 것이다.
그룹 Rolling Stones이 67년도에 공개했던 명반 [Their Satanic Majesties Request]의 리마스터 버전. 비틀즈의 불후의 명반 [Sgt. Pepper.....]를 패러디해서 당시 화제를 모았던 음반으로, 이들의 불후의 명곡 'She's a Rainbow'와 '2000 Man'..
[Beggars Banquet]의 선동적인 오프닝 트랙 ‘Sympathy For The Devil’은 비로소 롤링 스톤스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렸다. 믹 재거와 키스 리차드의 당당하고 오만한 자신감의 표출은 [Let It Bleed]의 ‘Gimme Shelter’와 [Sticky Fingers]의 ‘Brown Sugar’, [Exile on Main St.]의 ‘Rocks Off’로 그 계보가 이어진다. 전술한 곡들이 대변하는 것처럼 항상 거칠고 악동적인 이미지만 부각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사실 롤링 스톤스에게는 대중의 취향과 편견을 마음대로 밀고 당길만한 아수라 백작의 혼이 잠재되어 있었다. 애초부터 겸손과 예의라는 단어를 배우고 이해하기를 포기했던 롤링 스톤스의 무례함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청자들도 ‘No Expectations’과 ‘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 ‘Wild Horses’와 ‘Let It Loose’의 달콤한 유혹마저 거부하기는 어려웠다. -예컨대, 롤링 스톤스에 문외한이더라도 지구에 살고 있다면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Angie’와 ‘As Tears Go By’, ‘Ruby Tuesday’와 같은 곡들이 더욱 확실한 증거가 될 것이다.- 걸작 퍼레이드의 대미를 장식한 [Exile on Main St.]은 비틀스와 악연적인 의미로서의 라이벌 관계를 청산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단지 더블 앨범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엮일 가능성이 다분했지만, 감히 그 누구도 [The White Album]을 들먹이면서 그 음악적 성과를 깎아내리려 하지 않았다. 드디어 비틀스의 시대가 가고 롤링 스톤스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동안 밴드를 지탱해온 뚜렷한 동기부여가 상실된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전술한 것처럼, [Goats Head Soup]와 [It's Only Rock 'n Roll], [Black and Blue]는 목표의식을 상실한 암흑기를 대변하는 결과물들이었다. 그러나 롤링 스톤스는 생각보다 빨리 다음의 과제를 인식하고 의욕적으로 창작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빠르게 변모하는 대중의 기호와 그에 따른 트렌드에 영민하게 대처하는 전략이었다. [Some Girls]의 ‘Miss You’와 [Emotional Rescue]의 ‘Emotional Rescue’, [Tattoo You]의 ‘Start Me Up’은 디스코와 댄스 음악의 전성 시대에 현명하게 대응하면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권의 자리를 유지했다. 이후 [Undercover]와 [Dirty Work]로 다시 몇 년간 침체기를 겪기도 했지만, 롤링 스톤스는 다시 극적인 순간에 부활한다. 바로 하드 록과 헤비 메탈이 각광받던 1989년에 완성한 [Steel Wheels]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것이다. 이 당시 롤링 스톤스가 정 조준한 경쟁상대는 에어로스미스(Aerosmith)와 반 헤일런(Van Halen)과 같은 정통 하드 록 밴드들이었다. 이전처럼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의 돋보이는 성적을 이어가지는 못했지만, ‘Mixed Emotions’과 ‘Rock And A Hard Place’, ‘Almost Hear You Sigh’는 앨범 록 트랙스(지금의 메인스트림 록 트랙스) 차트에서 3연속으로 정상을 차지하면서 그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이어지는 [Voodoo Lounge]와 [Bridges to Babylon]에서도 비슷한 노선을 유지했다. 그런지 장르의 영향을 받은 듯한 ‘Love Is Strong’과 R&B적인 감성과 랩을 수용한 ‘Anybody Seen My Baby?’는 다분히 트렌드를 의식한 흔적은 엿보이지만, 롤링 스톤스가 아니면 결코 탄생할 수 없었을 노련하고 감각적인 전개로 밴드의 후기 싱글들 중 가장 돋보이는 매력을 표출한다. -‘Anybody Seen My Baby?’는 만들어 놓고 보니 케이디 랭(K.D. Lang)의 ‘Constant Craving’과 후렴구가 유사한 것을 발견하고 발매 전에 부랴부랴 합의를 거쳐 크레딧에 그녀의 이름을 기재했다고 한다. 사실 롤링 스톤스 정도면 시치미 떼고 넘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 사례를 통해 의외로 솔직하고 정정당당한 대(大)밴드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롤링 스톤스가 [Bridges to Babylon] 이후로 세월의 흐름에 무디게 반응하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정말로 노쇠한 조짐을 보이는 것 아니냐는 세간의 우려를 낳기도 했다. 2005년에 8년 만의 정규 앨범 [A Bigger Bang]으로 복귀함과 동시에 2007년 8월까지 행한 “A Bigger Bang Tour”는 그러한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켰지만, 이후로는 지금까지 다시 공식적인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공백기로부터 예외인 인물도 있었다. 여전히 넘치는 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믹 재거는 2011년에 유리스믹스(Eurythmics)의 데이브 스튜어트(Dave Stewart)와 밥 말리(Bob Marley)의 아들 데미안 말리(Damian Marley), 그리고 조스 스톤(Joss Stone)과 함께 한 프로젝트 밴드 슈퍼헤비(SuperHeavy)의 활동으로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2012년 7월 12일에는 롤링 스톤스의 네 멤버가 오랜만에 한 자리에 모이기도 했다. 바로 밴드 결성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였으며, 1962년 7월 12일은 롤링 스톤스가 영국 런던의 마키(Marquee) 클럽에서 첫 공연을 가졌던 역사적인 날이었다. 당시의 창단 멤버 중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만이 꾸준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드러머 찰리 와츠는 불과 이듬해인 1963년부터 밴드에 합류했고 로니 우드도 1975년부터 거의 40년에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대단한 결속력이 아닐 수 없다. 믹 재거와 키스 리차드는 찰리 와츠의 시점에서 진정한 밴드의 50주년은 2013년이라고 언급했고, 그것을 기념해 투어를 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이 투어에 빌 와이먼(Bill Wyman)과 믹 테일러(Mick Taylor)가 함께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매우 긍정적인 소식도 들려온다.
비틀즈와 영국의 60년대를 양분했던 롤링 스톤즈의 71년작. 롤링 스톤즈가 이루어낸 최고의 음악적 성과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앨범은 밴드의 레이블 를 통해 발매된 첫 작품이다.Ry Cooder - Guitar, Mandolin Mi..
현존하는 가장 전설적인 록 밴드에 대한 역사를 개인적으로 아는 관점에서 후회없이 늘어놓아 봤지만 그래도 무언가 허전함을 지울 수 없다. 밥 딜런(Bob Dylan)과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이 그랬던 것처럼, 롤링 스톤스의 음악도 유독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과소평가되어 왔던 악습이 지금도 완전하게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오아시스(Oasis)가 되었든 뮤즈(Muse)가 되었든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에만 심취하고 선뜻 이해되지 않는 역사에 대한 평가는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라지만, 음악이 단순한 즐길 거리가 아닌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학문의 연장이라면 현재 유행하는 록 음악의 뿌리 깊은 토대를 형성해왔던 롤링 스톤스라는 과목에 대한 탐구는 필수적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필자도 롤링 스톤스에 대해 무지했던 적이 있었다.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롤링 스톤스를 무척 좋아했던 상무님은 그런 필자를 꾸짖는 대신 별다른 언급 없이 [Sticky Fingers] 앨범을 선물해주셨다. 지금의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렇게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단, 그때보다 더 세월이 흐른 만큼 [Sticky Fingers]보다는 [Steel Wheels]와 [Voodoo Lounge]를 권할 것이다.
모름지기 남자라면 공학과를 나와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잘못된(?) 전공을 택하게 되었고, 덕분에 지긋지긋하게 싫어했던 수학, 물리에 기초한 각종 역학 과목들과 씨름하며 보낸 4년 간의 대학 생활은 어떤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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