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비 원더(Stevie Wonder)는 의심할 바 없는 20세기 후반, 특히 1960년대 말~1980년대라는 시대를 대표하는 또 시대가 만들어낸 전설이다. 더 훌륭한 음악적 성취를 한 아티스트가 없느냐고? 그거야 관점에 따라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건 취향과 시선의 문제다. 내가 주장하는 전설의 이유는 음악적 성취에만 있지 않다. 내가 스티비를 시대의 전설로 추켜세우는 이유는 작사, 작곡, 편곡과 같은 소위 “음악”의 기본 요소 때문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에 못지 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스티비는 현대 대중음악을 대중음악-음원으로 만들어낸 스튜디오 녹음 기술이라는 요소를 제대로 이해했고, 확실히 이용한 선구자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1950년생인 스티비 원더가 딱 1세대(30년) 전에만 태어났더라면 지금과 같은 성공과 성취를 모두 얻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1920년대에 태어났더라도 이렇게 천재적으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양반이 전설이 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었겠지만, 그 전설은 실체가 아닌 입소문이거나 확인하기 모호한 상태의 음원 몇 개로만 남았을 공산이 크다. 블라인드 레몬 제퍼슨(Blind Lemon Jefferson)이 스티비 원더보다 뭐가 부족했겠는가? 하지만 그의 시대에는 스티비가 누렸던 녹음 기술이 없었다. 덕분에 일생 대부분을 길거리에서 홀로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불렀다. 워낙 음악을 잘했기에 몇 몇 녹음업자와 국회도서관 소속 학자들을 만나 원-테이크로 조악한 녹음을 몇 곡(NG까지 포함해도 일생 씨디 7장도 채우지 못할 수준) 이라도 남길 수 있었다. 최고의 블루스맨이었던 블라인드 레몬 역시 최고의 싱어송라이터였고, 연주자였으며, 노래꾼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대는 (맹인) 아티스트에게 원맨밴드를, 오버 더빙을, 신디사이저를 허하지 않았다. 실력을 떠나 기술적으로 두 곡을 제외하곤 모두 스티비 원더 혼자 원맨밴드로 완성한 [Music of My Mind](1972)는 블라인드 레몬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환경이었단 말이다.
약 10년간 Motown의 어린 히트제조기였던 Stevie Wonder는 당시 Marvin Gaye, Issac Hayes의 혁신적인 훵크 아티스트로의 변신에 크게 고무되어있었다. Motown과 협상을 통해 앨범 제작의 주도권을 얻어낸 그는 더 이상 싱글 히트 퍼레이드..
자신이 원하는 음색을 마음껏 시도해볼 수 있는 신디사이저의 발명과 멀티 트랙, 오버 더빙 기술의 시대에 태어난 천재 스티비 원더에게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은 머릿속 아이디어를 소리로 구현하는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스티비의 음악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모든 사람에게 새로운 청각의 세계를 열어주는 마법으로 작동한다. 오히려 스티비의 음악을 듣지 않은 사람들을 팝-소울-펑크(funk)의 신기원을 경험하지 못한 일종의 청각 장애인이자, 이 소리가 만들어내는 특별한 종류의 감성을 갖지 못한 사람으로 만든다. 물론 이 장애는 스티비의 리듬과 화성, 보컬 그리고 가사의 아름다움을 만나는 순간, 바로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의 것이긴 하다.
스티비 원더의 음악이 녹음 기술, 악기의 발전의 수혜를 받은 것은 분명하다. 또 이 내용은 글이라는 딱딱한 매체로 밝혀내기도 쉽다. 그가 사용한 악기, 녹음 방식, 믹싱 방식은 인터넷만 뒤지면 모두 구할 수 있다. 하지만, 테크놀로지의 수혜로 만들어진 소리가 전하는 감성은 글로 설명하기 참 어려운 부분이다. 그것도 12살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노래하는 환갑도 지난 거장의 감성세계를 이 짧은 글 안에서 떠드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아주 어설픈 내 주변의 경험 얘기를 주저리 떠들어보는 소박한 방식으로 설명해보기로 결심했다. 이 소소한 경험이 주는 확실한 교훈은 이거다. 스티비 원더의 음악을 알고 모르고 사이의 감성의 진폭은 천국과 지옥의 간극 정도 된다는 거다. 스티비의 음악이 삶의 어떤 순간을 어떤 소리로 위로하고 축복해주는지.... 레전드의 삶이나 디스코그래피, 사용 악기와 같은 대한 공식적인 자료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만, 내 삶에 공명한 스티비 원더는 솔직하고 하나 뿐인 내 얘기다. 혹여난 스티비의 음악을 아직 경험하지 않았다면, 여러분에게도 찾아갈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의 모습이다.
[Innervisions]는 1973년 8월 3일 모타운 레코드에서 발매된 스티비 원더의 열 여섯번째 앨범으로, 스티비 원더의 전성기에 정점을 찍은 앨범이다. 9곡의 수록곡은 다양한 주제와 이슈를 다루고 있는데, 그 중 'Too High'는 약물 남용에 대해, 'Livi..
군대를 마치고, 나와 친구들이 광고 촬영 연출 보조에서 공연장 스텝, 심지어 붕어빵 장사까지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그렇게 만든 돈으로 싸구려 악기도 조금씩 업그레이드 시켜나갔고, 철야로 소주잔(안주는 밤 새 술국 한 그릇이었지만)을 기울일 수 있었으며, 음반도 한 장 한 장 늘어갔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만난 오랜 친구들이었기에 블루스에서 재즈로, 록으로, 펑키와 펑크 사이를 횡단하는 수다 사이로 아침 해를 보며 헤어지는 때가 허다했다. 이 와중에 다들 연애 사업에도 열심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슬픈 결말이 대부분이었다는 사실 뿐.
초여름이었다. 붕어빵 매출이 급감하는 시기. 팥빙수를 팔아볼까, 다른 자리를 알아볼까 고민하던 친구 녀석이 사귀던 깜찍한 여자 친구에게 차였다. 하필이면 바텐더의 삶을 새롭게 모색하던 기타쟁이 녀석도 예쁜 여자 친구에게 이별을 통보 받았다. 두 슬픈 청춘이 술을 들이 부으며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의 처량한 신세를 달래줄 음악이 필요하다고. 그날 두 친구는 자신을 대신해 울어주는 스티비 원더의 'Never Dreamed You'd Leave In Summer'를 무한 반복해 들었다. 이 노래는 마이클 잭슨 추모 공연에서 스티비가 선택한 곡이기도 하다. 이 곡이 실린 [Where I'm Coming From](1971)은 21세의 스티비가 막 결혼한 부인(Syreeta Wright)과 함께 작업한 앨범이다. 성인이 된, 그리고 소울-펑크의 신기원을 열어갈 스티비 원더의 음악세계를 알기 위해선 반드시 짚어야 할 작품이다. 그리고 울고 있는 친구들의 등을 토닥여준 처연한 피아노 연주와 깊이를 알 수 없는 "영혼"의 목소리가 담긴 앨범이기도 하다.
스티비 원더가 1971년 모타운 레이블에서 발매한 열 세번째 정규 앨범인 [Where I'm Coming From]은 1971년 4월 12일 발매 후 빌보드 팝 앨범 차트에서 62위로, 빌보드 알앤비 앨범 차트에서 10위로 데뷔하였다. 모든 곡은 스티비 원더와 모타운..
가을이었다. 문제의 친구 녀석이 내 베이스를 빌려갔다. 그 녀석의 기타 선생격인 다른 친구가 슬래핑의 울림을 대신할 수 있는 피킹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뜬금없이 술자리에서 고민하던 것도 그 즈음이었다. 결론이 뭐였는지는 소주 속에 사라져서 모르겠다. 겨울을 시작을 알리는 바람이 불 무렵 빌려간 내 베이스를 가지고 녀석은 공연을 했다. 윤수일의 '아름다워'와 스티비 원더의 'I Just Call To Say I Love You'(스티비가 음악을 맡은 영화 [The Woman In Red](1984)의 수록곡)를 접속곡으로 편곡해서 연주하고 있었다. 친구는 무대에서 2.0mm 두툼한 피크로 꽤나 박진감 넘치는 그루브를 만들고 있었다. 녀석은 슬래핑 주법을 완성하지 못했다. 대신 녀석은 그날 예의 깜찍한 여자 친구와 격정적인 화해를 이뤘다.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녀석은 그녀와 두 아이를 키우는 행복한 가장이 되었다. 큰 딸아이를 'Overjoyed'('Part-Time Lover'와 함께 [In Square Circle](1985)를 대표하는 곡)를 스티비 원더처럼 영혼을 담아 연주하게 만들겠다며 돌 선물로 키보드를 요구했다가 다른 친구들로부터 욕을 좀 들어먹긴 했지만.
작사, 작곡, 편곡, 연주, 프로듀싱까지 혼자 대부분을 해결하는 스티비 원더지만, 그 역시도 처음부터 싱어송라이터는 아니었다. 하지만, 천재는 달랐다. 소년시절부터 그는 노래에 영혼을 담아내는 놀라운 재주로 주변을 놀라게 만들었고, 15세 무렵 녹음한 'Up Tight'에 공동 작곡자로 이름을 올렸다. 소속사 모타운의 위기를 구해낸 소년 스티비의 슈퍼 히트곡인 이 노래와 앨범 [Up-Tight Everything's Alright]는 사실 모타운 특유의 분업화된 공장식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곡이었다. 그러나 하모니카, 피아노, 심지어 드럼에도 영혼을 부여하는 스티비 원더가 마이크 앞에 선 순간, 'Up Tight'는 도저히 다른 사람은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노래가 되었고, 그 자체로 이미 그는 작곡자였던 것이다. 악보를 그리는 게 작곡이 아니라, 노래에 영혼과 색을 입혀내는 것이 진짜 작곡임을 그는 몸으로 증명한다.
즉흥적인 연주가 곡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고, 결국 새로운 곡을 만들어내는 재즈 혹은 아프로 아메리칸적 작법은 스티비 원더 음악의 근간이고 모든 것이다. 그래서 스티비 최고의 앨범으로 꼽히는 [Songs In The Key Of Life](1976)에 담긴 아기자기한 펑키 트랙 'Sir Duke'로 듀크 앨링턴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흑인 음악의 선구자이자 개척자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마음은 빅밴드 스윙이 아님에도 차고 넘친다. 동시에 그 즉흥 연주의 기반은 유기적으로 호흡하는 악기들의 조합이라는 사실도 듀크 앨링턴(Duke Ellington)에게 스티비가 곡을 바치는 이유다.
스티비 원더의 열 여덟번째 앨범으로 1976년 9월 28일 모타운 레코드에서 발매되었다. 더블 LP로 발매된 이 앨범은 그의 커리어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자 비평가들에게 가장 극찬을 받은 앨범이기도 하다. 2003년 롤링 스톤지의 '역사상 가장 ..
물리적으로 볼 순 없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스티비 원더의 시선은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Superstition'(’Sunshine Of My Life'와 함께 [Talking Book](1972)의 대표곡)이나 ‘Living For The City'([Innervisions](1973)의 수록곡)과 같은 아프로 아메리칸의 삶과 왜곡된 사회 구조를 꼬집을 수 있었다. 그 유명한 ’We Are The World'(1985)나 에이즈 연구와 구호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That's What Friends Are For'(1985) 등에 참여한 것 역시 그러한 시선의 연장이리라.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와 듀엣으로 부른 ’Ebony and Ivory‘(1982)나 영화 [정글피버(Jungle Fever, 1991)]의 음악감독을 맡는 것 역시 단순한 상업성을 넘어선 그의 메시지다. 나아가 ’Lately'([Hotter Than July](1980)에 수록된 발라드)나 ‘Sunshine In Their Eyes'(1971)와 같은 곡에서 스티비는 시선에 대해 수없이 얘기한다. ’Isn't She Lovely'(1976)에서 노래한 사랑스러운 딸을 보고 싶은 마음에 위험한 개안수술에 도전했던(안타깝게도 실패했지만) 사연까지. 스티비 원더의 음악은 그의 경험과 생각, 시선, 마음에서 우러난 감정에서 시작한다. 나와 친구들의 청춘에 사랑을 보듬어주고, 힘을 실어준 스티비의 노랫소리는 다 이렇게 만들어졌던 것이다.
분명 스티비 원더는 20세기 후반 테크놀로지로 더 빛나게 완성된 아티스트다. 그러나 기술로 환원시켜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한 위대한 인간의 아우라가 스티비가 만든 소리에는 담겨있다. 음악은 목소리, 손놀림, 발놀림이 다가 아니다. 그 이상의 무엇이 목소리와 손, 발놀림 안에 담길 때, 우리는 그 소리, 그 음악에 감동한다. 스티비 원더의 세계가 우리에게 전하는 가르침이다.
호오는 분명하지만, 취향의 다름을 옳고 그름이라 오해하는 자들을 경멸하는 음악딴따라 글쟁이이자 문화인류학꾼. 변방의 잡놈들의 네트워크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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