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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TOP밴드] 시즌에 인터뷰를 제안하고 싶었지만 많이 망설였다. 반응의 정점에 올라 있었기 시기였던 까닭에 섭외가 어려울 거라 짐작하고 일찌감치 포기하고 말았다고 말하니 약간 어이없어한다. 공연을 보러 제주도까지 찾아오는 사람도 있고 더러는 가방을 선물하는 팬을 자랑할 만큼 지지자들이 많이 생겼지만, 정작 그들은 한가하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지치지 않을 만큼의 일정을 소화하는 여유의 프리랜서, 그리고 전문 분야가 확고해 좀 멋진 일반인의 인상이다.

그들은 최근 새 앨범 [Times]를 발표했다. [TOP밴드]를 통해 인연을 맺은 신대철이 프로듀스한 앨범이다. 열두 곡이 실린 앨범 안에는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 게이트 플라워즈가 있었고 예상 밖의 게이트 플라워즈 또한 존재했다. 처음엔 '좋은 날'과 '물어' 같이 발랄한 곡에 이끌렸다가 '기억의 틈'의 아름다운 멜로디에 갑자기 눈이 뜨이고, 그리고 'We Are One'의 폭풍 같은 사자후에 쾌감을 얻게 되는 작품이었다. 안정과 분열, 예상과 의외가 혼재한 앨범 앞에서, 재생을 거듭할수록 인상적인 곡들이 수시로 바뀌고 있었다.

새 앨범에 관한 애정과 의문을 드러내자 그들은 몹시 진지하고 빠르게 열변을 토해냈다. 그러다가도 석상이나 공연장에서 자주 선보이는 유머 또한 간간이 튀어나왔다. 많은 우문들이 풍성한 현답으로 돌아오는 와중에, 의중을 읽은 듯 묻기도 전에 먼저 답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어느 것 하나 쳐낼 것도 걷어낼 것도 없는 관계로 인터뷰하는 내내 정리를 걱정했을 만큼 긴 이야기를 풀었다.

앨범명
1집 Times
아티스트 및 발매일
게이트 플라워즈 | 2012.05.29
타이틀곡
잘자라
앨범설명

GateFlowers 1st Album [Times] 데뷔 8년만인 2012년 5월 29일 발매!! '호시절'이 무슨 의미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새 앨범의 첫 번째 노래가 "좋은 날"인 것을 보면 어지간히도 '호시절'임을 강조하고 싶었나 보다. 어쩌면 신대철..

TOP밴드 이후 1

하루에 인터뷰 두 개 이상 하면 피곤할 것 같아서 일부러 일정을 확인하고 인터뷰 없는 날로 약속을 잡았다.
그런데 추가로 제안이 들어왔다고, 방금 인터뷰 하나 마치고 왔다고 들었다.
조금 지치는 일정이겠다. 전과 다른 일과이기도 할 것이고.

염승식
새 앨범 내고 오늘 네 번째 인터뷰를 한다. 이걸론 부족하다. 지칠 정도로 더 뛰어야 한다.

박근홍 지칠 일이 없다. 안 바쁘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상관없다.

들었다. 박근홍 씨 출판사 그만뒀다면서.

박근홍
지난해부터 회사한테 미안한 상황이 많아졌다. 음반 작업도 있고 인터뷰도 있고 공연 리허설 많아지면서 감당이 안 돼서 부득이하게 그만뒀다.

후회는 없나.

박근홍
후회는 오래 전부터 하고 있다. 제대로 구직하려면 한 군데 5년씩은 있어야 하는데 띄엄띄엄 일해왔다. 경력이 애매해서 다시 들어갈 구멍이 없다.

어쨌든 [TOP 밴드] 얘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다. 방송 이후 무엇이 가장 크게 변했나.

박근홍
모든 게 변하긴 했는데 내 경우 회사를 그만둔 게 가장 크다. 전까지 음악에 투자하는 시간이 일과의 25%였다 한다면 지금은 오락하는 시간을 빼면 70-90%가 됐다. 전업 음악인이 된 셈이다.

오락은 어떤 거? 설마 '디아블로3'?

박근홍
그거 시작하면 음악이고 뭐고 없어진다. 농구를 좋아해서 'NBA 2K' 시리즈를 하고 있다.

염승식 농구는 몸으로 해야지 어떻게 손으로 하고 있어. 손은 기타 치라고 있는 거야.

다시 [TOP 밴드] 이후로 돌아가서, 어쨌든 많은 것이 변했고 변화 가운데에는 소속사도 있다.
조금 더 안정된 환경을 얻었을 것 같다. 특히 경제적으로.

박근홍
어디에 소속되든 어차피 우리가 쓴 돈은 나중에 다 우리의 비용으로 산정된다. 다만 밥 먹고 스케줄 따라 이동할 때 차로 움직이니까 그게 많이 편해졌다.

염승식 뮤직비디오도 만들고 수트 입고 프로필 사진도 찍고 하니까 예전보다 풍요로워 보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팬이 많아진 것이다. 약 스무 배 정도? 말도 안 될 정도로 늘어났다. 밴드라 해도 결국 팔리는 물건이나 다름없다. 어느 정도 잘 만들고 매력이 있다고 느낀다면 누군가 돈을 주고 음반을 사고 공연을 보고, 그렇게 우리 문화를 산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게 가장 큰 변화다.

박근홍 공연을 하고 앨범을 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자식 키우듯 뿌듯해하는 사람도 생겼다. [TOP밴드] 제작진도 종종 공연 보러 오는데, 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이제 [TOP밴드] 졸업해야죠" 했더니 "졸업을 인정합니다"라 쓰인 화환을 보내왔다.

1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 게이트 플라워즈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TOP밴드 이후 2

스스로 [TOP 밴드] 시절에서 벗어나는 일에 적극적이다.
최근 게이트 플라워즈, 눈뜨고 코베인, 레스카의 합동 공연 '열광의 씨앗'(6월 10일)에 다녀왔는데, 거기서 약간 감지했다. TV를 통해 친숙해진 커버곡은 아예 안 했고, EP에 실린 노래들도 많이 아꼈다.
최근 발표한 새 앨범 [Times]의 수록곡을 선보이는 자리로 합의하고 무대에 선 것 같았다.

염승식
여러모로 중요한 계기였지만 거기 머무를 수는 없다. 음원이 남아 있으니까 충분한 기록이 됐다고 믿는다. 그걸 넘어서서 진짜 우리 음악을 보여주고 싶었다. 1집 나오고 공연을 많이 안 했다. 그리고 'TOP밴드' 시절의 노래들은 마르고 닳도록 했다.

양종은 EP 시절의 곡을 좋아하지만, 하긴 하되 비중을 많이 두지는 않는다. 'Ghost' 정도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신)대철 형이랑 하는 거지 우리끼리는 안 한 지 오래됐다.

노래할 일이 많아지면서 박근홍 씨 목이 좀 상했다면서.
지난 주말 제주도 공연에서 '예비역'의 고음역대를 팬들에게 넘겼다는 제보가 있었다.

박근홍
‘예비역’의 최고 음역대가 샤우트 창법으로 부르는 것이라 사실 부르려면 부를 수도 있었다. 못 불러서 안 한 게 아니다. '예비역'은 어느 순간 내 노래가 아니라 사람들이 불러주는 노래가 됐다. 내가 안 불러도 되는 곡이 됐다는 얘기다. 만들 때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곡이라 전혀 예상 못 했던 결과다. 결국 창작자와 반응 사이의 괴리를 안겨준 노래다.

'예비역'을 안 좋아한다고? 가장 사랑받는 곡인데?

양종은
나는 제일 싫어했다. 원래 EP에 안 넣으려고 했는데, 그거 빼니까 네 곡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넣었다. 일단 연주가 재미있는 곡이 아니다. 처음엔 더 단조로웠고, 리듬을 어떻게든 다시 만져보자 상의한 후 완성됐지만 지금까지도 크게 만족스러워하지 않는다.

염승식 녹음 준비하는 데 두 시간 걸렸는데, 사전 연주는 딱 15분 했다. 특히 (양)종은이. 막상 녹음에 돌입해서는 딱 두 번 해놓고 약속 있다고 가버렸다. (유)재인이 혼자 고민하면서 후반 작업하느라 고생했다.

양종은 아니야. 세 번 했어.

염승식 아니야. 두 번 했어.

박근홍 EP에서 가장 공을 들인 노래는 ‘불편한 진실’이다. 사실 이 노래가 제일 인기 있을 줄 알았는데 반응만 정말 불편해졌다.

다시 공연 얘기로 돌아가서, 게이트 플라워즈의 어떤 노래들은 기타 솔로가 길다.
그럴 때 보컬 박근홍 씨는 약간 심심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 시간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박근홍
언제 끝나나.

염승식 익숙할 것 같다. 합주할 때 잼을 굉장히 많이 한다. 연습하다가 좀 지겨워지면 그냥 잼을 한다. 두 시간, 세 시간씩 한다. 그러다 보면 공연 자체가 잼이 된다. 잼을 해도 보컬이 원한다면 충분히 참여하고 리드할 수 있지만, 우리의 경우는 대부분 기타 베이스 드럼이 이끌어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공연 중 잼의 요소들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드럼과 기타 같은 경우는 이렇게 어느 정도 짜여진 틀 내에서의 즉흥성을 매우 즐긴다. 펄 잼 같은 많은 외국 밴드들에게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며, 동시에 많은 팬들 또한 게이트 플라워즈의 매력 중 하나라고 여긴다.

박근홍 합주실에서야 익숙하지만 무대에 설 때면 약간 경직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도 솔로할 때가 있으니 그럭저럭 공평한 시스템이다.

한편 박근홍 씨는 가사를 종종 손으로 표현한다. 일례로 '흐르는 눈물도'라 노래하면서 손으로 눈물을 그리는 식이다. 보는 우리는 신선하지만 정작 본인은 나중에 공연 영상 다시 보면 조금 민망할 수도 있겠다.

박근홍
안 본다. 사운드 체크하려고 이어폰으로만 듣고 영상은 너무 오그라들어서 다시 볼 수가 없었다. 사진은 좀 많이 봤다. [TOP밴드] 이후 '디씨 인사이드'를 통해 각종 굴욕사진을 접하면서 차차 감흥이 없어졌다. 어떻게 찍혀도 난 이렇게 나온다.

염승식 공연하면서 우리도 가끔 웃는다. 이건 뭐 마임하는 것도 아니고.

박근홍 아는 형님이 연극을 한다. 우리 공연을 처음 보더니 다 좋은데 전반적으로 무대 매너가 좀 심심하다, 연극적인 요소가 필요할 것 같다 한다. 게다가 우리 노래는 가사가 안 들린다고들 한다. 그래서 수화를 해보자 하는 생각을 했다. 딱히 무대에서 할 것도 없고. 그리고 그렇게 하니까 노래에 집중도 더 잘 되고. 이게 익숙해지니까 연주가 길어지면 심심해진다.

염승식 듣고 보니 대철형이랑 ‘Ghost’ 할 때, 되게 심심했을 것 같네.

스스로 잘 안 들리는 보컬이라고 인정했다(웃음).

그리고 정확한 발음은 새 앨범 [Times]의 프로듀서이자 소속사 대표인 신대철의 요구사항이라고 들었다.

박근홍
나는 들리는데 다들 안 들린대. 자꾸 그러니까 처음엔 신경을 썼지만 결국 하던 대로 했다.

발음 하니까 [TOP 밴드] 시절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r'가 생각난다.
들리고 안 들리고를 떠나서 이런 식의 새로운 발음도 박근홍 보컬의 재미있는 특징이다.

박근홍
그거 승식이 아이디어다. '편지를', 하고 쉬고, '써-r', 하는 것도 내 머리에서 나온 게 아니다. 그 유치한 걸 하자고 우겼다.

염승식 결과적으로 먹히는 유치함이었다.

1 Paint It Black 게이트 플라워즈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Times] 후일담 1

새 앨범에는 조동진의 '나뭇잎 사이로'가 실려 있다.
커버곡을 담을 생각이었다면 좀 친숙하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박근홍
승식이는 좋아했지만 사실 잘 몰랐던 노래다. 그리고 우리 취향에서도 많이 벗어나 있는 곡이었다. 대철 형이 게이트 플라워즈 음악에는 포크 감수성이 숨어 있는데 그걸 좀 보여주면 어떨까 제안했다. 편곡 최소화하고 담백하게 보여달라고.

염승식 대철 형이 직접 조동진 선배에게 의사를 물었고, 승낙하면서 원곡 많이 훼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왔다. 그래서 잔잔하게 만들었다.

양종은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가 우리를 띄워 준 노래이긴 해도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처음 발표하는 정규 앨범인데 커버곡이 부각되는 건 조금 곤란하니까.

1 나뭇잎 사이로 게이트 플라워즈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그만큼 부드러운 게 앨범 자켓이다. 일부러 웃기게 연출한 것 같은데.

염승식
같은 맥락에서 자켓도 부드럽게 만들었다. 내부적으로는 저항이 있었지만 음악이 좀 무거우니까 표지는 가볍게 가자고, 역설의 즐거움 같은 걸 반영하자고 했다. 변화의 필요성도 좀 있었고.

박근홍 자켓을 보고 '마포 발바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 성욕이라는 게 없어요. 혈기도 없고. 거의 거세 상태야. Y염색체가 X염색체로 변해가고 있다고.

좌우간 앨범의 제목은 [Times]이고, 진짜 '타임'지답게 기사 형식으로 부클릿을 편집했다.
내용도 좋고 표현도 좋다. 누가 썼나.

박근홍
내가 썼는데 쓰고 보니 별로 재미가 없어서 많이 아쉬웠다.

아까 포크 감수성 이야기를 했는데, 나도 새 앨범을 거듭 듣고 나서 절감한 내용이다.
의외로 멜로디가 좋다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됐다.
전반적으로 게이트 플라워즈의 음악은 사운드가 압도적이라 그동안 멜로디 음미할 생각을 잘 못했던 것 같다.
멜로디가 저평가된 밴드라고 뒤늦게 인지하게 됐다.

박근홍
조금 억울한 부분이기도 한데, 어쩌면 이건 사운드가든이나 펄 잼을 들으면서 멜로디가 얼마나 출중한지를 좀처럼 실감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음악을 두고 사운드가든과 펄 잼을 떠올리는 사람을 보면 많이 반갑고 고맙다. 나는 그런 밴드들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멜로디를 참 잘 쓴다는 생각을 해왔다.

보컬이 워낙 강렬한 탓도 있을 것 같다.

박근홍
게이트 플라워즈가 추구하는 사운드에 대한 편견이 좀 있다. 전면적으로 고래고래 소리만 지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단순히 '우웨웨웨웨엑' 하는 게 아니라 다 음가가 있다. 영미에서는 흔한 스타일인데 국내에서는 비호감으로 받아들여져 약간 서글퍼지기도 한다.

염승식 처음 근홍 형을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이안 커티스(조이 디비전의 보컬)과 에디 베더(펄 잼의 보컬)을 섞어 놓은 모습 같았다. 위압적이라 느낄 정도로 카리스마가 엄청났다.

박근홍 전에 하던 음악은 과시하는 연주가 많았다. 그래서 나도 '우웨웨에에엑' 할 수 있는 폭이 많았는데 지금 하는 음악은 템포도 느리고 내내 그 지랄할 수는 없다. 나이를 먹기도 했고, 빼빼 말랐을 때 하면 멋있어 보이는데 이런 상태로 하면 비호감도 이런 비호감이 없다.

염승식 옆에서 달랑 어쿠스틱 기타 하나 치고 있을 때마저 그렇게 강렬하게 노래했다. 그때부터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박근홍 나의 록 스피릿을 오늘의 이 친구들이 다 깎아 먹은 셈이다.

하여간 박근홍씨의 유머감각은 남다르다. 사람들 웃기는 걸 많이 좋아하는가 보다.

박근홍
좋아하는데 많이 못 알아듣는다. 이래저래 좀 덕후스럽고 디테일한 개그를 좋아하는데 코드가 다른 사람 앞에서는 금방 망한다.

염승식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웅얼웅얼 안 하면 더 웃길 텐데.

박근홍 나는 웅얼웅얼 안 한다고 생각하지만…. 가슴이 아프다.

염승식 한 번 웃기기 시작하면 엄청난데 발음 때문에 약간 상처받으면 의기소침해지는 경향이 있다.

박근홍 회사 다닐 때는 인터넷 많이 하고 책도 많이 보고, 그래서 이야기할 거리가 많았다. 지금은 백수라서 집에서 놀고만 있어서 감각이 많이 떨어졌다. 공부 좀 해야 한다.

새 앨범 [Times]는 경쾌하게 시작해 적당히 무거워졌다가 후반엔 서정적으로 마무리된다. 의도한 구성일까.

박근홍
EP 시절엔 설왕설래가 좀 있었는데 이번엔 이견이 없었다. 굉장히 빨리 끝난 작업이다.

양종은 해외 밴드들 역시 대부분 이렇게 구성하지 않을까. 어느 정도 곡을 추리고 배열해놓으니까 밸런스가 잘 맞아떨어졌다.

곡을 만들고 완성하는 과정에서, 프로듀서 신대철이 원하는 방향과 어긋날 때도 많았을 것 같다.
연대감은 공고할지언정 추구하는 방식이 많이 다르지 않나.

염승식
딱딱 잘 맞추는 걸 원했지만 원래 우리는 그런 걸 잘 못 한다. 나름 구성 잘했다고 생각해서 들려주면 늘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니넨 구성 파괴자야.

박근홍 물론 근본적인 방향은 다르다. 노래를 만들 때 대철 형의 경우 프로듀서이기 때문에 abab'c 같은 전형적인 전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파한다면, 우리는 대책없이 a로 시작해 e까지 가는 걸 즐긴다. 예를 들어 수록곡 '다가와'에는 엉뚱한 데서 후렴 코드가 나온다. 그 부분에 관해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무 나갈 때면 그걸 잘 잡아준 형이다.

양종은 특히 리듬에 있어서 실험을 즐기는 편이다. 앨범 안에 깃들어 있는 다양한 시도들을 알아챈다면 재미있는 앨범이 되겠지만, 그걸 못 느낀다면 지루한 앨범으로 여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염승식 좋은 곡은 무슨 짓을 해도 다 좋게 들린다고.

새 앨범에서 멜로디가 크게 두드러지는 노래로 '기억의 틈'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곡이라고 생각한다.

염승식
원래 아주 길고 지저분하게 뻗어 가는 노래였다. 그런데 대철 형과 상의한 후 연주를 많이 줄여서 결국 4분짜리가 됐다. 거칠고 즉흥적인 느낌을 많이 살리고 싶었는데, 그걸 다 걷어냈다. 프로듀서가 어떤 부분을 의도했는지 아니까 우리도 납득할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곡을 접한 후 다른 곡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확장하려는 전략이다.

박근홍 나는 100% 좋아할 수가 없는 곡이다. 작사 작곡을 승식이가 다 했다. 익숙하지 않아서 녹음할 때 죽는 줄 알았다.

염승식 근홍 형 키 신경 안 쓰고 그냥 만들어서 줬다. 형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곡이다.

박근홍 잼으로 시작했지만 앞부분 리프가 조이엄(염승식의 솔로 프로젝트) 스타일로 나왔다. 조이엄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하면 우리 스타일이랑 맞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왜 조이엄 노래를 불러야 해.

염승식 그래도 뒤에 솔로 연주 나오잖아. 어느 정도 감성적인 부분은 있지만, 솔로가 나오면서 치고 달리면 곧 우리의 마성적인 노래가 된다.

공연장에서 확인한 바, '서울발라드'를 벌써 따라 부르는 사람이 보인다.
역시 멜로디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생각한다.


양종은 나로서는 알앤비로 해본 곡이다.

으응? 진짜 알앤비?

양종은
물론 록밴드에서 아무리 알앤비 스타일로 리듬을 만들어도 그런 느낌이 잘 안 나온다. 기타의 비중이 굉장히 크니까. 하지만 리듬 파트만 떼어내면 충분히 흑인 음악에 가까워진다. 재인이 베이스도 마찬가지고. 그러다 근홍 형 보컬이 들어가고 승식이 기타가 들어가면 바로 블루지하게 바뀐다. 어스 윈드 앤 파이어 같은 음악을 들으면, 절대로 록에서 일반화된 리듬이 안 나온다. 언제든 랩을 얹을 수 있는 힙합의 인상이다. 게이트 플라워즈에서 들려주는 드럼은 그런 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 전체적인 그림이 완성되면 많이 사라지지만.

염승식 EP 시절의 강성 음악도 좋아하지만, 멤버 대부분이 감성적인 음악도 좋아한다. 그리고 우리는 연주하는 방식을 바꾸는 일에 능동적인 편이다. 계속 연주하면서 멜로디와 어우러지는 사운드를 고민하고, 그런 고민을 앨범에 담으려고 많이 노력했다는 얘기다.

박근홍 'TOP밴드2'를 예로 들자면 해리 빅 버튼과 우리가 비슷하다는 평가가 따르기도 한다. 둘 다 보여주고 반응을 얻었던 강렬한 소리가 일치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완전히 다른 밴드다. 강한 음악 말고도 보여줄 수 있는 게 많다. 그게 1집이 전하는 내용이다.

한편 'We Are One'은 초반부와 후반부가 바뀐 것 같은 이상한 구성이다.
박근홍 씨 스타일이랑 가장 잘 맞는 곡으로 들리기도 하고.

박근홍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게이트 플라워즈의 음악 안에서 연주하는 친구들은 표현의 폭이 넓다. 나라고 표현할 수 없는 게 아니다. 그걸 다 해치운 곡이다. 마음껏 그로울링을 쏟아낼 수 있어서 만족한다.

염승식 근홍 형 스스로 앨범 안에서 가장 멜로디를 잘 쓴 곡이라는 생각까지 한다. 물 만난 고기처럼 리듬도 잘 탔다. 리듬과 연주가 간단해지면 보컬이 멜로디를 붙이기가 상대적으로 쉬워진다. 근데 우리 음악이 별로 그렇지가 않다. 간단하게 가는 게 별로 없다.

에필로그

결국 게이트 플라워즈는 음악으로 인정받은 걸까, 아니면 기회를 통해 성장했다고 봐야 할까.

양종은
운이라고 생각한다. 잘해서 된 게 없다. 이래저래 오디션 많이 봤지만 우리는 매번 까이기만 하는 전패의 역사를 살아왔다. ‘쌈사페’ 포함해서 한 열 번은 떨어졌을 것이다. 클럽에서도 찬밥이나 다름 없었다. 가장 핫하다는 FF나 빵 같은 클럽에서도 우리는 주말 무대에 서본 일이 거의 없다. 브로큰 발렌타인이 나갔던 ‘아시안 비트’, 당연히 모를 테지만 우리도 응모했다. 멤버들한테 말도 안하고 내가 신청했다. 매번 떨어지는데 뭘 또, 이런 반응이 나오기 전에 내가 먼저 움직인 거다. 당연히 떨어졌다.

그래도 결국 승자가 되지 않았나.

염승식
'헬로루키' 당시에는 정말 운 좋게 우리 음악에 귀 기울이는 평론가가 있었다. [TOP 밴드] 때는 장비가 갑자기 문제가 생겨서 혼란스러웠는데, 우리가 예선 무대에 섰을 때 또 운 좋게 대철 형이 있었다. 그 운이 쌓이고 쌓여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지나친 겸손 같다. 운이 아니라 실력이라 생각하지만, 어쨌든 만족할 만한 앨범을 발표하는 단계까지 왔다.
그리고 이제는 막연한 행운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기대하는 내용이 생겼을 것 같다.
새 앨범에서 어떤 부분을 인정받을 때 가장 뿌듯할까.

유재인
곡마다 새로운 구성을 취하려고 했다. 이러다 산으로 가면 어쩌나 걱정하면서도, 틀에 박힌 부분들을 다 걷어내고 그게 너무 불편하게 들리지 않도록 유연하게 연결하는 일을 많이 생각했다.

염승식 뻔하게 하는 게 싫다. 보편을 피하려고 노력한 앨범인데, 그 부분을 눈치채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서로 특이하게 해 보겠다고 싸우곤 했다. 전주 흐르고 버스 나오고 곧바로 후렴구 등장하고, 이러면 쉽지. 당연한 것들을 빠짐없이 의심해보고 고민했던 게 우리의 작업이었다.

박근홍 앨범에 대한 리뷰를 살펴보니 "레퍼런스가 보인다"는 평가가 있다. 나는 그런 말이 좋다. 레드 제플린이 됐든 사운드가든이 됐든 우리가 좋아하는 밴드들의 구성을 많이 연구했다는 얘기로 이해하기에, 긍정적인 반응으로 본다.

그런데 유재인씨는 원래 말이 이렇게 없나. 한 시간 넘게 같이 앉아 있는 동안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박근홍
원래 말이 없다. 하루 빨리 게플을 나가고 싶어 안달이 나서 그렇다. 물론 농담이다.

마지막으로, '디씨 인사이드'에는 팬이 많다.
'박분홍' '소희' '염기타' 등의 별명을 만들어준 [TOP 밴드] 시절의 팬들이 여전히 게이트 플라워즈를 지지하고 있다.
눈팅 많이 하고 있나.

박근홍
아이디가 이미 다 눈에 익었다.

100비트 | 이민희 (웹진 '백비트' 편집인)

취미이자 직업으로 음악을 듣고 있다. 그리고 취미이자 직업으로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취미일 때 즐겁지만 직업일 때 고민되는 건 몇 년째 변함이 없다.

http://100be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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