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플라워즈는 본의 아니게 상징적인 존재가 돼버렸다.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한 밴드가 서바이벌 프로그램 ‘탑밴드’에 나갔다. 이는 실력이 대중적인 성공으로 이어지지 않는 작금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였다. 물론 게이트 플라워즈 이전에도 좋은 앨범을 내고 묻힌 팀은 한둘이 아니다. 때문에 게이트 플라워즈의 선택은 한때 비난을 받기도 했다.
사실 게이트 플라워즈는 인디 신에서도 스타가 아니었다. 이들의 터프한 록은 인디 신에서 통용되는 히트공식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게이트 플라워즈는 공중파는 물론이고 록 페스티벌에서도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탑밴드’에 나가기 전까지 말이다. 이들의 상업적 가치는 그 실력을 인정해준 평단에서조차 고개를 설레설레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방송을 탄 후 게이트 플라워즈는 인기 면에서도 승승장구했다. ‘마니아용’이라 여겨졌지만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TV를 통해 일단 보여주면 그에 대한 판단은 대중이 알아서 하는 거였다. 이러한 게이트 플라워즈의 사례는 ‘탑밴드’란 프로그램에 괴물 같은 밴드들이 달려들게 된 전초전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게이트 플라워즈가 새 앨범을 만드는데 상당한 부담감으로 자리했을 것이다. 그 과정이 조금 기형적이긴 했지만, 공중파 덕분에 대중의 관심이 모아졌다. 게이트 플라워즈로서는 이 시점에서 차기작의 완성도를 보여주지 못할 경우 다소 붕 뜰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한방’을 보여줄 경우 ‘반격’이 가능한 상황이기도 했다.
[Times]에는 그 위험을 불식시킬 만큼 출중한 결과물이 담겼다. 앨범의 완성도는 ‘탑밴드’의 후광을 잠재우기에 충분하다. 첫 곡 ‘좋은 날’부터 감지되는 것은 게이트 플라워즈의 음악이 다소 밝아졌다는 것이다. 마이너가 아닌 메이저로 흐르는 염승식의 기타, 그리고 “기회가 왔어 아무렇지 않게 일생동안 다시 못 올 그런 날이 왔어”라고 노래하는 박근홍의 목소리는 게이트 플라워즈의 변화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게이트 플라워즈의 앙상블은 이전보다 한층 탄탄해졌다. 기존 스타일에서 이어지는 ‘물어’, ‘해봐’, ‘오해’와 같은 곡들은 분노를 토해내면서도 적절한 완급을 지닌다. 잼세션에 기댄 EP앨범 [Gate Flowers]에 비해 사운드가 정제됐음에도 야성이 여전한 이유는 앙상블이 만들어낸 육중함 때문이다. 특히 염승식의 기타 리프는 더욱 자신감에 넘친다. 밴드 사운드 면에서는 다루는 폭이 한층 넓어졌다. ‘다가와’에서는 U2를 떠올리게 하는 공간감이 돋보인다. ‘We Are One’에서 6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네 명이 이뤄내는 응집력과 폭발력도 인상적이다. 이 두 곡은 게이트 플라워즈의 음악을 표현해내는 어법이 더욱 세련돼졌음을 보여준다.
눈여겨봐야 점은 공감을 주는 힘이 더 세졌다는 것이다. EP [Gate Flowers]가 청자의 분노를 깨워줬다면, [Times]에서는 가슴 깊이 자리한 심연까지 자극한다. ‘잘 자라’와 ‘서울 발라드(돌아가지 않도록)’ 같은 곡들이 그렇다. 청자에게 위안을 주는 노래들로, 예전의 게이트 플라워즈에게는 이런 면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EP 이후 예상치 못한 일들을 겪으며 내공이 축적됐기 때문일까? 또한 이 노래들이 찡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단순히 영미 록의 관성에만 기대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박근홍 목소리는 울부짖음에서 나아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호소력까지 획득했다. 덕분에 나지막이 희망을 노래하는 ‘기억의 틈’은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프로듀서 신대철의 제안으로 조동진을 커버한 ‘나뭇잎 사이로’는 게이트 플라워즈의 포용력을 느끼게 해준다. 아마도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의 ‘Purple Haze’와 같은 기존의 커버 곡들이 게이트 플라워즈의 앙상블을 성장시켜줬다면, ‘나뭇잎 사이로’는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릴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줬을 것이다.
[Times]를 기점으로 게이트 플라워즈의 스케일은 몇 뼘 더 커졌다. 반가운 밴드의 성장. 게이트 플라워즈가 더 나은 조건에서 앨범을 작업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사실만으로 ‘탑밴드’에 대한 비호감이 호감으로 바뀔 정도다. 이제 [Times]를 통해 게이트 플라워즈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남을 것이다. 이들의 가능성은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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