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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8 | 조회 5701 | 2013.08.02
한국 인디 20년 - 우리가 기억해야 할 100장의 음반 (10)

한국 인디 음악의 연원을 특정하는 일은, 과거사를 다루는 작업들이 언제나 그렇듯이, 쟁점적이다. 누군가는 크라잉 넛의 노래 ‘말달리자’가 발표된 시점을, 누군가는 배드 테이스트의 셀프 타이틀 앨범이 공개된 날을, 또 누군가는 홍대 앞 주차장에서 ‘스트리트 펑크 쇼’가 벌어진 때를 그 유력한 후보로 언급할지 모른다. 시간을 거슬러 특정한 문화적 현상의 근원을 따지는 일은 대개 상징적인 사건들을 주목하기 마련이고,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상징성의 가치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밝혀두건대, 여기 “한국 인디 20년” 기획을 마련하며 우리가 주목한 상징적 사건은 ‘클럽 드럭의 오픈’이다. 1994년 7월 마포구 서교동 86-35번지에서 문을 연 이 수상한 이름의 클럽은, 뉴욕의 ‘CBGB’와 런던의 ‘100 클럽’이 그러했듯, 한국 인디 음악의 자궁과 같은 역할을 했다는 판단이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보다 ‘씬의 성립’이라는 관점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주지하다시피, 한국 인디 음악 여명기의 가장 중요한 매개체는 앨범이나 레이블이기 전에 라이브 클럽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클럽 드럭의 오픈을 기준으로 삼은 것으로 “한국 인디 20년” 기획의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인디의 범주를 어떻게 볼 것이냐는 질문이 남아있으니까 말이다. 한국에서 메이저와 인디를 구분하는 일은 자본의 성격을 기준으로 삼는 미국과 영국의 그것과 다르다. 2011년 여름, 한국독립제작자협회 출범을 앞두고 열린 토론회에서조차도 한국의 인디를 정의하는 기준이 뜨거운 감자로 대두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우리가 기성성의 관계와 음악성의 지향을 분류의 기준으로 포함시킨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이 리스트가 완벽하지 않다는 자인으로 읽힐 수도 있다. 우리도 부정하지 않는다. 장필순과 유앤미 블루의 작품들은 배제되었지만 윤영배와 이승열의 작품들은 포함된, 메이저를 통해 제작되거나 유통된 작품임에도 델리 스파이스와 배드 테이스트의 데뷔작은 포함시킨 반면 이상은과 자우림의 일부 앨범은 배제시킨 목록의 완결성의 한계를, 우리도 알고 있다는 말이다. 다만, 우리가 여전히 진화와 변모를 거듭하고 있는 한국 음악계의 현재적 관점에서 이 목록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언급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한국 음악계를 관찰하는 반영하는 자료로 일말의 역할이나마 수행할 수 있다면 이 목록은 소임을 다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리스트는 맹신도 불신도 바라지 않는다. 여러분들이 각자의 기억을 우리의 목록과 대조하는 것으로 이 기획에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10. 검정치마 [201](2008)

어딘가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통쾌하고 후련했다기 보다는 그저 막혀 있는 어딘가가 뚫려버린 느낌이었지만 분명한 감각이었다. 2008년 11월 ‘좋아해줘’를 처음 들었을 때, 우리는 직감했다. 검정치마와 조휴일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인디 뮤지션이며,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인디 씬이 시작되었구나 하는 사실을. 퀭한 목소리, 단순하지만 감각적인 편곡, 탁월한 팝 멜로디, 무엇보다 위트 있게 비꼬는 가사 - “씨발 나 어떻케”. 장르담론과 문화운동의 피로, 아이돌의 지배 아래에서 간절히 구원의 기다렸던 한국 인디 판을 향해, 뭘 그렇게 진지하냐고, 구원이 아니라 차트 1위 같은 걸 꿈꾸는 게 아니냐고 조롱하는 듯 했다. 가볍게 시니컬하고 지독히 멜로디컬하게. (최지호)

9. 백현진 [반성의 시간](2008)

우리는 여전히 이 앨범의 첫 인상을 ’위악스런 목소리’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다른 누군가에게 [반성의 시간]을 설명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목소리였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그가 말하는 바에 사람들이 귀를 대기 시작했다. 그의 말은 사실이자 경험이되 우화이고, 솔직하고 직설이되 그것에 관하여 보통의 사람들이 말하는 기준을 넘는 것이다. 그 과정은 단지 별나거나 우악스러움을 가장하여 성취할 수 없는 것이고, 아티스트가 일상의 풍경을 예술로 바꾸는 치열한 길이다. [반성의 시간]은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방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서성덕)

8. 루시드 폴 [Lucid Fall](2001)

실연의 기억을 메인스트림의 현란한 업비트나 처절한 신파 없이 간결한 기타와 서정적인 가사로 투명하게 그려낸 루시드 폴의 첫 번째 앨범은 이렇게 조용히 노래해도 들을 사람은 듣는다는 것을 알게끔 해준 음반이다. 무엇보다 인디 하면 주로 펑크/하드코어만 떠올렸던 클럽고어들의 취향과 흐름을 가열차게 바꾼 앨범이기도 하다. 덕분에 당시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포크는 한 청년의 향수 어린 멜로디에 힘입어 갑자기 힘을 얻기 시작했고 이후 대세가 되는 경로를 밟는다. 그 흐름의 맨 위에는 바로 이 앨범이 있다. [Lucid Fall]의 순위는 처음엔 그저 잔잔한 파문에 불과했던 이 앨범의 파장이 지금 얼마나 크게 퍼졌는지를 방증하는 것이다. (현지운)

7. 마이 앤트 매리 [Just Pop](2004)

어떤 음악을 추구하느냐 물었을 때, 활동 초기 시절부터 그들은 “저스트 팝”을 주장했다. 그냥 팝이라는 겸손하고 무던한 말로 사실은 우수한 팝을 선보이겠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세 번째 앨범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그런 팝 음악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얻었고 확실한 응답 또한 얻었다. ‘소꿉친구’나 ‘공항 가는 길’ 같은 발라드에 가까운 느긋한 팝은 전보다 풍성한 서정과 낭만의 노래가 되었고, ‘골든 글러브’처럼 록으로 향하는 팝은 관악기의 도입으로 전보다 강렬하게 밀착하는 역동의 노래가 되었다. 변화의 음악이 아닌 발전의 음악으로 이룬 건강한 성과다. (이민희)

6. 크라잉 넛 & 옐로우 키친 [Our Nation](1996)

역사란 모름지기 작은 씨앗으로부터 잉태된다. 여기 놓여있는 크라잉 넛과 옐로우 키친의 스플릿 음반 [Our Nation]이 그 점을 입증한다. 이것은 음반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현장성’에 더 가깝다. 배후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1994년 문을 연 전설적인 라이브 클럽 ‘드럭’과, 그로부터 2년 후 열린 ‘스트리트 펑크 쇼’는 한국 로컬 씬 활성화에 불을 당긴, 소박하지만 큰 파장을 몰고 온 ‘사건’이었으며, ‘젊음의 혈기 내지는 새로운 문화의 탄생’으로 일갈했던 관찰자의 시선으로 관조되기보다는, 이전부터 꿈틀거리고 있었던 내부의 운동 내지는 경향으로 파악됨이 마땅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태생적으로 ‘질서’라기보다는 ‘혼돈’에 근접할 수밖에 없었다. [Our Nation]은 그러하기에 하드코어 펑크와 슈게이징/드림 팝이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질성’을 접붙인, 일면 조악하지만 ‘사실 그대로를 담은’ 리포트라 칭하는 것이 옳다. 이후 한 팀은 ‘로큰롤 스타’로 도약했고, 다른 팀은 실험적인 록 음악에 천착했지만 에너지를 오래 이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드러날 ‘미래’를 모르겠다는 듯, 이 음반은 그 자체만으로 한 페이지를 움켜쥐었고 회자되었다. 그렇게 역사가 되었다. (이경준)

5. 언니네 이발관 [가장 보통의 존재](2008)

언니네 이발관은 한국적 모던 록을 정의하고 세공화시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랜 숙고를 거쳐 발표한 이 5집 앨범을 통해 언니네 이발관은 ‘90년대 중후반에 발흥한 1세대 모던 록을 대표했다는 사실에 그치지 않고, 자신들의 현존을 여실히 증명해낸다. 유려한 선율과 매끄러운 목소리, 연륜이 느껴지는 가사, 달콤쌉싸래한 서정을 담아낸 이 앨범은 당대의 인디 씬과 모던 록 밴드들의 작품을 통틀어서도 수작으로 손꼽을 만하다. 이 앨범은 발표 당시에도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두고두고 좋은 선례로 기록될 작품임에 틀림없다. (최지선)

04. 노이즈가든 [Noisegarden]

대한민국 록의 역사에서 가장 헤비한 음반이 헤비 메탈이 아니라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그런데, 노이즈가든 음악은 블랙 새버드(Black Sabbath)와 레드 제플린(Led Zeppelin)과 같은 헤비 메탈의 정수 중 정수를 건드리고 있기에 억지로 헤비메탈이 아니라고 밀어내기도 저어하다. 그렇다고 헤비 메탈의 카테고리 안에 이 음반을 끼워 넣기엔 작품을 가득 채운 감성이 너무나 ‘우주 꽃사슴’스럽다. 이 모호한 감성은 노이즈가든의 시작부터 이미 내포된 것이었을 지도 모른다. 노이즈가든은 거창한 음악적 목표를 세우고 모인 밴드가 아니라 친목도모를 위해, 그리고 그 모임의 기록물을 만드는 것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피를 토하며(혹은 피를 흘려가며, 어쨌건 그 시절엔 피와 땀이 참 중요했다) 세계를 정복하겠노라고 호언장담하던 딱 10년 전 선배들과 달리, 이들은 좋아하는 음악을 즐기는 게 밴드 존재의 유일한 목적이었다. 클래식 하드 록과 브릿팝, 블루스, 그런지가 조우하는 음악이 이토록 자연스러운 헤비니스를 만들어 낼 수 있던 힘도 여기서 시작한다. 앨범 발매 즈음, 윤병주는 여러 인터뷰에서 해외 명인들의 톤과 연주기법을 따라 친다고 아무렇지 않게 밝히곤 했었다. 그 솔직함과 소탈함이 인디 정신이요, 심각하지 않음의 심각함이야말로 인디의 힘 아닐까? 노이즈가든은 바로 그 인디라는 말조차도 무시하고 싶어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조일동)

3. 델리 스파이스 [Deli Spice] (1997)

초창기 한국 인디 씬은 펑크 록과 하드 코어와 같은 빠르고 강한 음악이 대세를 형성했다. 사실 이러한 경향은 H.O.T.와 S.E.S. 같은 거대 자본의 기획사에서 양성된 아이돌 그룹이 주류 가요 시장을 점령한 것에 대한 반항심리가 극도로 확대된 결과이기도 했다. 즉, 음악의 수용층이 가요 혹은 인디를 선호하는 두 부류로 나뉠 수밖에 없었고, 이도 저도 아닌 부류는 해외의 록 음악에 심취했다. 이 때 등장한 델리 스파이스의 데뷔 앨범은 극적인 화합의 매개체였다. 가요와 인디의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국내에는 들을만한 음악이 없다고 푸념하던 이들도 한국산 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요컨대, 델리 스파이스는 한국형 모던 록의 완성이라는 표면적인 업적보다 더욱 많은 것을 실현한 밴드였다. (이태훈)

2. 이장혁 [Vol. 1](2004)

밴드의 이름을 “아무”라고 짓고 앨범의 제목을 “이 판을 사”라고 붙인 위악적 태도를 기억하고 있던 이들에게 이장혁의 솔로 데뷔 앨범은 충격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이장혁이라는 평범한 이름과 [Vol. 1]이라는 건조한 제목 아래 펼쳐진 세계는 마음을 온통 뒤흔드는 공감의 영역이었다. 보편성이라는 가장 강력한 추동원이 매개하는 감동의 파고. 주지하건대, 이 앨범에는 음악의 방법론이란 측면에서 획기적이라거나 압도적이라고 할만한 요인이 없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더 획기적이고 압도적이다. 이장혁은 모던 포크라는 고색창연한 도구와 모던 록이라는 흔한 윤활제를 가지고 시간의 흐름과 시대의 유행을 초월하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발표 이후 10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 앨범은 전혀 나이 들지 않았다. “보편적인 노래”의 미덕이다. 첫 번째 트랙인 ‘누수’에서부터 마지막 트랙인 ‘알아챈 사내’까지, 대표곡인 ‘스무 살’에서부터 대서사시인 ‘칼’까지, 이 앨범에 수록된 노래들은 어느 하나 싱글로 발매하기에 모자람이 없을 만큼 인상적이다. 나는 평단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혹은 평단의 찬사 때문에 이 앨범이 아직도 보편적 다수의 대중에게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누구든 이 앨범을, 저 노래들을 실제로 듣는다면 인디에 대한 선입견 혹은 걸작에 대한 부담 따위 느낄 겨를도 없이 끝내 좋아하게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들어보면 안다. (박은석)

1. 노 브레인 [청년폭도맹진가](2000)

이 앨범은 내가 아는 가장 뛰어난 데뷔 앨범 가운데 한 장이고, 가장 뜨거운 에너지를 담고 있는 앨범 가운데 한 장이다. 이 앨범은 펑크의 외피를 잠시 내려두고, 우리가 '록'이란 음악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그게 저항정신이든 원초적인 에너지든 단순한 사운드의 힘이든, 그 모든 이미지를 다 담고 있는 앨범이다. 이 앨범은 거칠 게 없고, 무서울 게 없는 말 그대로 '청춘'의 앨범이다. 그 청춘들은 '청년폭도'들이기도 하고, '잡놈패거리'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체념하지 않고,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 지르고 역겨운 세상을 향해 침을 뱉고 오줌을 갈기며 조롱한다. '차차' 차승우가 갖고 있던 절정의 창작력과 '불대갈' 이성우의 위악적인 보컬이 더해지면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들이 음반에서, 라이브 무대에서 만들어내던 미친 에너지는 이런 몇 문장 글로는 쉽게 설명이 안 된다. 모든 관객들을 미치게 하고 싱얼롱을 유도할 수 있는 힘, 그건 그 당시 노 브레인만이 해낼 수 있는 권능이었다. 모든 관객들이 함께 "오이(Oi)!!"라 외치던 그때의 가슴 벅차던 함성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김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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