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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 뮤직

추천 0 | 조회 5036 | 2013.08.01
한국 대중음악의 연대기 1992 - 2012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장기하와 얼굴들까지

제목을 쓰고 발문을 붙이려다 보니, 불가피하게도, 살짝 민망한 생각이 드는 것은 이 연재물이 당초 작년에 공개되었어야 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돌아본다는 취지에 대해서라면이야 딱히 원고 게재의 유통기한이란 게 있을 리 없겠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20주년을 계기로 그런 내용을 다루겠다고 계획했다면 연재 개시의 타이밍 정도는 맞춰주는 게 최소한의 조건이니까 말이다. 그런 기준의 하한선조차 지키지 못했으니 민망한 게 당연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늦게나마 이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견인했던 한국 대중음악의 활황기와 장기하와 얼굴들로 상징되는 인디 씬의 성장세를 다시 한번 되짚는 일은 늦어도 결코 늦은 게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덩치 큰 기획을 그냥 묵혀둘 수는 없다는 편집자의 절박함도 한 몫을 했다.) 더불어, 조용필의 신작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최근의 현상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연륜과 성취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을 감지한 것 역시도 연재를 감행하게 만든 동력이다.

연재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한 1992년부터 이후 현재까지(개제 시점이 늦어진 김에 2012년까지 다루기로 했다) 한국 대중음악계를 연간 단위로 정리하는 방식을 기본으로 한다. 음악계의 경향을 통해 당대의 사회적 배경과 문화적 양상을 결산하고자(혹은 당대의 사회적 배경과 문화적 양상을 통해 음악계의 경향을 결산하고자) 의도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매회 원고의 말미에 그 해를 대표하는 노래와 음반을 선정해 소개함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하는데, 해당 목록은 음악적 성취보다는 대중적 반향과 사회적 영향에서 상징성을 띤 작품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결과이다. 작품 선별의 기준을 발표 시점이 아니라 히트 혹은 대중적 인지의 시점으로 잡은 것도 같은 이유이다. 물론, 제한된 지면에 한정된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이므로 독자의 관점에 따라 누락된 노래와 음반이 눈에 띄는 건 거의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빠졌다고 질책하기 보다 저것도 생각난다고 귀띔해주시면 우리로서는 연재를 진행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끝으로, 장기하와 얼굴들을 서태지와 아이들의 대응항으로서 선택한 것은 그들이 인디라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음악생태계의 가장 성공적인 존재로서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를 반영하는 상징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제목에 올리기에 그 이름의 각운도 제법 훌륭하게 어울리지 않는가?) 그러므로 우리의 선택이 적절했는지 여부는 10년 후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자.

한국 대중음악의 연대기 제9탄 2000년

2000년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며 새삼 놀란 건 조성모라는 가수의 '대단함'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정말 '대다나다.' 여기서 대단하다는 건 사전적 의미 그대로 '1. 매우 심하다. 2. 몹시 크거나 많다'의 뜻을 담고 있다. 1998년 'To Heaven'으로 데뷔한 조성모는 2000년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 리메이크 앨범이었던 2.5집 [Classic]은 160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고, 여덟 달 뒤 나온 3집 [Let Me Love]는 190만 장이 팔렸다. 합해서 350만 장을 넘긴 이 기록적인 판매고는 조성모를 한국에서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앨범을 판매한 가수로 만들어줬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3집은 발매 당일에만 40만 장이 팔리며 발매 당일 최고 판매 기록을 세웠고, 4일 만에 100만 장을 팔며 최단 기단 밀리언셀러가 됐다. [Classic]은 리메이크 음반들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 됐다. 이로써 조성모는 1집부터 시작해 4장의 앨범을 연속으로 100만 장 이상 판매한 놀라운 기록의 소유자가 됐다. 2000년은 명백한 조성모의 해였다.

하지만 이는 거꾸로 생각해보면 2000년의 주류 가요계가 음악적으로 얼마나 부실한 해였는지를 반증하는 사례다. 위에서 언급한 저 무시무시한 기록을 뺀다면 지금 조성모라는 가수에게서, 그리고 당시 조성모의 노래들에서 어떤 미덕이나 가치를 찾기는 어렵다. 뮤직비디오 마케팅이라는, 음악 외적인 부분에 더 공을 들이고 투자를 하게 했다는 괴상한 영향력을 뺀다면 조성모의 음악에서 어떤 부분을 얘기해야 할까. 조성모는 오직 '판매고'라는 숫자의 나열로만 남아있다. 그나마 ‘월드 스타’ 싸이(Psy)가 데뷔한 해라는 사실에 의미를 두어야 할까?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된 주류 가요계의 암흑기는 2000년에 정점을 찍고 있는 것 같았다(이후 한동안 계속되긴 하지만).

박지윤이 '성인식'으로 변신해 화제를 모았던 게 2000년이었고, "짜장면이 싫다"는 어머니 아래서 자란 아이들(G.O.D)이 1년 만에 부쩍 커서 '거짓말'을 한 게 2000년이었다. 이 정도를 제외한다면 눈에 띄는 가수들은 드물다. 백지영의 'Dash'가 있었고, 대형 신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박효신이 데뷔를 했다는 정도를 제외한다면 2000년에 특별히 거론할 만한 노래나 가수는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서태지가 '울트라맨이야'를 들고 실질적인 활동 재개를 선언하며 또 한 번 화제의 중심에 섰지만, 그때의 서태지는 주류 가요계의 일원이 아니라 '서태지'라는 별개의 영역에 가까워 보였다. 서태지가 들고 나온 '울트라맨이야'는 그가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때 주로 듣던 '장르 오퍼상'이란 말처럼 ‘90년대 중후반부터 미국에서 유행한 뉴 메탈을 한국에 이식한 결과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때 주로 듣던 '앞서가는 뮤지션'이라는 말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그가 가지고 돌아온 뉴 메탈은 이미 홍대 앞을 중심으로 상당수의 밴드들이 연주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의 홍대 앞은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이른바 '인디 씬'이라는 게 생기고 난 뒤 홍대 앞은 다양한 음악가들과 레이블들, 그리고 기획자들이 한데 엉켜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고 있었다. 2000년은 그런 움직임들이 실질적인 결과물들로 나타나기 시작한 해였다. “이 곳에서 무엇인가가 벌어지고 있다, 어떤 재미있는 일들이 생기고 있다”는 생각들이 그 즈음을 중심으로 해서 퍼져나갔다. 그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기획들과 그만큼 다양한 음악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서태지의 컴백과 맞물려 제기된 '하드코어' 용어 논쟁은 이미 홍대 씬에서 '진짜' 하드코어 음악을 하고 있는 음악가들이 있다는 방증이었다. 인디 씬의 시작과 함께했던 펑크와 모던 록 역시 자신들의 자리를 굳건하게 하였다. 델리 스파이스, 코코어 등의 밴드가 건재했고, 노 브레인은 [청년폭도맹진가]라는 기념비적인 데뷔 앨범을 발표했다. 또한 클럽 마스터플랜(MP)을 중심으로 한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은 이미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었다. [MP Hip Hop 超]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며 씬의 다양성을 알렸고, 가리온과 주석, 다 크루(Da Crew), DJ 소울스케이프 같은 새로운 얼굴들을 등장시켰다. 이현도는 이런 언더그라운드의 래퍼들을 등용하며 [완전힙합] 앨범을 발표했고, 막다른 길에 몰렸던 DJ DOC 역시 언더그라운드에 활동하고 있던 동생/후배들과 함께 [DOC Blues]라는 '인생 앨범'을 만들었다. 트랜지스터헤드, 가재발 등의 일렉트로닉 음악가들이 자신들의 '전자세계'를 담아 첫 앨범을 발표한 것도 2000년이었다. 이미 한 해 전에 발표됐던 일렉트로닉 컴필레이션 앨범 [Techno@Kr]이나 [PLUR] 등이 군불을 땐 덕분이었다. 물론 주류가요계에도 힙합이 있었고 테크노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늘 그래왔듯 '이정현의 테크노'와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굳이 '바꿔'란 말을 하지 않고도 더 건강하고 본류에 충실한 장르 음악들을 통해 인디 씬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롤러코스터와 스위트피는 홍대 씬에서 D.I.Y 정신을 전파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이들은 자체적으로 자신들의 음악을 스스로 녹음하고 믹싱까지 하며 말 그대로의 독립과 자립의 토대를 마련했다. 특히 스위트피(김민규)의 역할은 작지만 중요한데, 그는 홈레코딩 방식으로 앨범을 만들어내는 것을 넘어서 직접 '문라이즈'라는 레이블을 만들어 운영까지 하였다. 그가 당시 델리 스파이스의 멤버로 메이저 음반사에 속해있던 걸 생각하면 무척이나 의미 있는 일이었다. 스위트피의 취지에 공감한 이들이 같은 레이블에 모여들었고, 같은 방식으로 앨범을 제작했다. 더블유(Where The Story Ends)처럼 기존 주류 가요계에서 활동했던 이들도 문라이즈란 그늘 아래서 새로운 실험을 하기도 했다. 문라이즈를 비롯한 많은 레이블, 많은 공동체들이 생겨났다. 그런 공동체들이 중심이 돼 '뭔가 재미있는 일'들을 벌여나갔다.

1 힘을 내요, 미스터 김 롤러코스터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2 유기 스위트피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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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말을 거친 팝계도 그리 흥미롭지는 않았다. 돌아온 거장 U2가 화려한 복귀를 알리며 [All That You Can't Leave Behind]로 차트와 시상식의 승자가 됐고, 라디오헤드(Radiohead)가 [Kid A]를 발표하며 새로운 거장의 대열에 합류했다. 에미넴(Eminem)이라는 악동의 부각이 없었다면 2000년의 팝계는 익숙한 이름들의 나열에 그쳤을 것이다. 에미넴은 닥터 드레의 앨범 [2001]과 자신의 두 번째 앨범 [The Marshall Mathers LP]를 통해 새로운 팝의 아이콘이 되었다.

1 Beautiful Day U2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2 How To Disappear Complet.. Radiohead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3 The Real Slim Shady Eminem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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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00년은 맥 빠진 주류와, 활기찬 비주류 정도로 거칠게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장 상황마저 주류 가요계에 녹록치 않았다. 음악 산업은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길로 내려가고 있었고, 음원 제작자들에겐 악몽과도 같을 이름인 소리바다가 서비스를 개시했다. 소리바다의 등장은 '음악은 공짜'라는 인식을 퍼지게 했고, 제작자들은 이를 양성화해 발전적인 방향으로 돌리려 하기보다는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일관하다 시장의 주도권을 이동통신사들에게 빼앗겼다. 주류 가요계는 다른 곳으로 시장 가능성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그곳은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었다. 일찌감치 '수출용' 가수로 준비한 보아가 데뷔 앨범을 발표했고, H.O.T는 중국 시장에 진출해 중국 언론으로부터 최초로 '한류'란 말을 들었다. 클론, 베이비 복스, NRG 등도 중국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문제는 이 암울한 상황이 1, 2년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새로운 세기의 시작부터 드리워진 이 어두운 그림자는 쉽게 거치지 않고, 2000년대 가요계 전반(全般)을 덮는다.

2000년의 대표곡
1 거짓말 god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2 성인식 박지윤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3 해줄 수 없는 일 박효신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4 울트라 맨이야 서태지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5 가시나무 조성모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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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의 대표작

CB 매스 [나침반]
DJ DOC [The Life... DOC Blues]
DJ 소울스케이프 [180g Beats]
노 브레인 [청년폭도맹진가]
롤러코스터 [일상다반사]
서태지 [울트라맨이야]
윤상 [Cliche]
이박사 [Space Fantasy]
V. A. [MP Hip Hop 超]

CB 매스 [나침반]
DJ DOC [The Life... DOC Blues]
DJ 소울스케이프 [180g Beats]
노 브레인 [청년폭도맹진가]
롤러코스터 [일상다반사]
서태지 [울트라맨이야]
윤상 [Cliche]
이박사 [Space Fantasy]
V. A. [MP Hip Hop 超]

보다 | 김학선 (웹진 [보다] 편집장)

2000년에 인터넷 음악방송국 '쌈넷' 기자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웹진 '가슴' 편집인과 한겨레신문 객원기자를 지냈으며, 현재 웹진 '보다' 편집장과 '100비트'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참여하..

http://www.bo-d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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