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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 뮤직

추천 3 | 조회 5200 | 2013.07.25
한국 대중음악의 연대기 1992 - 2012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장기하와 얼굴들까지

제목을 쓰고 발문을 붙이려다 보니, 불가피하게도, 살짝 민망한 생각이 드는 것은 이 연재물이 당초 작년에 공개되었어야 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돌아본다는 취지에 대해서라면이야 딱히 원고 게재의 유통기한이란 게 있을 리 없겠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20주년을 계기로 그런 내용을 다루겠다고 계획했다면 연재 개시의 타이밍 정도는 맞춰주는 게 최소한의 조건이니까 말이다. 그런 기준의 하한선조차 지키지 못했으니 민망한 게 당연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늦게나마 이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견인했던 한국 대중음악의 활황기와 장기하와 얼굴들로 상징되는 인디 씬의 성장세를 다시 한번 되짚는 일은 늦어도 결코 늦은 게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덩치 큰 기획을 그냥 묵혀둘 수는 없다는 편집자의 절박함도 한 몫을 했다.) 더불어, 조용필의 신작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최근의 현상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연륜과 성취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을 감지한 것 역시도 연재를 감행하게 만든 동력이다.

연재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한 1992년부터 이후 현재까지(개제 시점이 늦어진 김에 2012년까지 다루기로 했다) 한국 대중음악계를 연간 단위로 정리하는 방식을 기본으로 한다. 음악계의 경향을 통해 당대의 사회적 배경과 문화적 양상을 결산하고자(혹은 당대의 사회적 배경과 문화적 양상을 통해 음악계의 경향을 결산하고자) 의도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매회 원고의 말미에 그 해를 대표하는 노래와 음반을 선정해 소개함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하는데, 해당 목록은 음악적 성취보다는 대중적 반향과 사회적 영향에서 상징성을 띤 작품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결과이다. 작품 선별의 기준을 발표 시점이 아니라 히트 혹은 대중적 인지의 시점으로 잡은 것도 같은 이유이다. 물론, 제한된 지면에 한정된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이므로 독자의 관점에 따라 누락된 노래와 음반이 눈에 띄는 건 거의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빠졌다고 질책하기 보다 저것도 생각난다고 귀띔해주시면 우리로서는 연재를 진행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끝으로, 장기하와 얼굴들을 서태지와 아이들의 대응항으로서 선택한 것은 그들이 인디라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음악생태계의 가장 성공적인 존재로서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를 반영하는 상징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제목에 올리기에 그 이름의 각운도 제법 훌륭하게 어울리지 않는가?) 그러므로 우리의 선택이 적절했는지 여부는 10년 후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자.

한국 대중음악의 연대기 제8탄 1999년

1999년은 시작부터 떠들썩했다. 천 년만의 이벤트 때문이었다. 새로운 밀레니엄과 맞닿은 한 세기의 끝에서 세상은 만연한 불안과 막연한 희망을 얘기하고 해석하느라 분주했다. ‘세기말’과 ‘새천년’이라는 수사가 깃발처럼 아우성쳤던 그 해, 그 낯선 공기 속에서 대중음악계도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변화의 진앙은 컴퓨터 테크놀로지였다. 이른바 ‘Y2K 버그’가 첨예한 이슈로 등장한 데서도 알 수 있다시피, 1999년은 컴퓨터와 인터넷이 문명사회의 일상적인 도구로 확고히 자리를 잡아가던 때였다. 기술의 이기가 사회와 문화의 양상을 본격적으로 바꿔나가기 시작한 시기였고, 대중음악의 영역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급진적인 변화의 장으로 대두했다. 1997년 ‘윈앰프(Winamp)’ 소프트웨어의 보급과 함께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한 MP3 파일 형식이 음악산업의 지형을 바꿔놓기 시작했던 것이다. ‘냅스터(Napster)’의 등장은 그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1999년 6월 서비스를 시작한 냅스터는, 주지하다시피, 인터넷을 통한 개인간 파일공유 소프트웨어다. 개인이 소유한 음악을 불특정다수의 사람들과 파일의 형태로 공유한다는 그것의 운영원리는 이전 100여 년에 걸쳐 구축된 음악산업의 구조를 토대부터 뒤흔드는 것이었다.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과 초고속 통신망의 확산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혁신이 음악의 유통구조와 소비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냅스터 등장의 여파가 당장 극적인 변화로 드러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비롯된 점진적인 변화는 음악산업의 지형도를 영원히 바꿔놓게 되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경제/사회/문화적 여건 속에서 주류 가요계는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전년도에 데뷔한 조성모가 밀리언셀러 대열에 합류하긴 했지만 홀로 승승장구했을 뿐, 음악시장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성모의 스타덤은 오히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쳤다. ‘To Heaven’의 성공이 가요계에 블록버스터 뮤직비디오 제작 열풍을 몰고 왔던 것이다. MTV의 등장 이래 뮤직비디오라는 미디엄의 고유한 특성 가운데 하나로 특화되어 왔던 ‘내러티브의 비선형성’을 폐기하고, 마이클 잭슨의 ‘Thriller’가 실험했던 단편영화적 양식을 통속적으로 변용하는 시도들이 가요계에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것이 마치 투기와도 같았다는 점이다. 관건은 자본을 쏟아 부어 만들어낸 비디오 자체의 완성도가 아니라, 별볼일 없는 음악을 포장하기 위한 용도로 비디오 제작에 자본을 쏟아 붓기로 작정한 마케팅적 판단에 있었다.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저 그런 노래들이, 상품의 질이야 어떻든 겉치레만 잘하면 된다는 기만적 요행수에 기대어 쏟아져 나왔던 것이다. 가요계가 앞장서서 스스로 가요계의 위기를 키운 셈이었다.

내수시장의 침체를 해외시장 진출로 타개하려는 움직임이 이즈음에 본격화된 이유도 그런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국내에서의 성장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판단한 일련의 가수와 기획사들이 국내에서의 성공을 발판 삼아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로 활동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던 것이다. 클론, 디바, 베이비 복스, S.E.S, NRG 등이 그 행렬에 동참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뚜렷한 소득 없이 국내로 회귀하고 말았다. 치밀한 계획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나섰다가 실패를 면하지 못한 건 일견 당연한 결과였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해외 진출 사례들이 남긴 성과가 있다면 국내 기획사들이 체계적인 현지화 전략의 필요성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는 점이다. 이듬해 보아를 일본시장에 안착시킨 SM의 성공담은 그로부터 반면교사를 얻은 덕분이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일련의 시행착오들이 궁극적으로 소녀시대와 싸이의 해외시장 진출에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1 꿍따리 샤바라 클론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2 왜불러 디바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3 Get Up 베이비복스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4 Dreams Come True S.E.S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5 할 수 있어 NRG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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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 기성의 인기 가수들이 너도나도 해외시장 진출을 꾀하고 경기 침체의 여파로 새로운 얼굴의 등장은 주춤해진 스타 부재의 진공상태에서 반사이익을 본 경우도 생겨났다. 이정현과 이수영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영화배우로 먼저 이름을 알린 이정현은 가수겸업을 선언하고 발표한 데뷔 앨범 [Let’s Go My Star]로 순식간에 스타덤에 올랐다. 세기말의 트렌드였으며 당대 서구 음악계의 창의적 흐름을 주도하고 있던 일렉트로닉을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운 것이 주효했다. 실상은 테크노의 무늬만 차용한 상투적 댄스 팝에 불과한 ‘바꿔’가 하나의 현상으로 돌변한 데에는 마땅한 경쟁자가 없었던 당시의 가요계의 상황이 큰 몫을 했다. 이수영의 성공은 보다 불가사의한 경우였다. 성인가요와 발라드를 애매하게 결합시킨 노래들을 줄줄이 히트시킨 그녀는, 당시 가요계가 요구했던 외모와 가창력의 뻔한 조건을 어느 한 쪽도 흡족하게 만족시키지 못했지만, 누구에게도 반감을 사지 않은 친화력으로 조용히 스타덤에 안착했던 것이다.

1 바꿔 이정현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2 이정현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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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대중음악계의 창조적 동력 부재가 당시 전세계적인 현상이었다는 점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시장이 메이저 음반사들의 대대적 마케팅 전략에 휘둘리고 있었던 것이 단적인 예다. 요컨대, 1999년의 팝 시장을 장악한 밀리언셀러들은 틴에이저(백스트리트 보이스, 엔싱크,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그리고 누구보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거나 히스패닉(산타나, 제니퍼 로페즈,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그리고 당연히 리키 마틴)이었다. 아이돌 대세와 라틴 팝 열풍은, 단언컨대, 음악적 진화에서 파생한 경향이 아니라 상업적 극단에서 돌출한 유행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90년대를 “새로운 ‘60년대”로 만들었던 ‘대안적’ 세력들조차 더 이상 새로운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브릿팝은 진작에 모멘텀을 지났고, 뉴 메탈의 열기는 가라앉기 시작했으며, 개러지 리바이벌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정황이 세기말의 분위기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세기말이라는 단어가 자동연상시키는 어두운 뉘앙스가 사람들로 하여금 반대급부의 정서를 좇도록 만든 것은 아니었는지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1 Genie In A Bottle Christina Aguilera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2 ...Baby One More Time Britney Spears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3 Waiting For Tonight Jennifer Lopez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4 Livin' La Vida Loca Ricky Martin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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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1999년의 음악계에 희망적 징후가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힙합의 본격적인 가요시장 진입이 바로 이 해에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한국 대중음악의 다양화라는 측면에서 중요하게 언급해야 할 부분이다. 앞서 ‘Break Free’로 파란을 일으킨 바 있었던 조피디가 정규 데뷔작 [In Stardom]을 발표하며 기세를 이어갔고,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가 수록된 데뷔 앨범 [Year of the Tiger]을 선보인 드렁큰 타이거가 상당한 반향을 획득했으며, 최초의 힙합 컴필레이션인 [1999 대한민국]이 선을 보였다. 물론 힙합은 여전히, 창작의 주체로 등장한 이들이 대부분 교포 혹은 유학생 신분이었다는 점에서, 한국 대중음악계의 자생적 경향으로 부르기에 미흡한 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온라인 가상공간의 동호회를 중심으로 새로운 하위문화를 만들어온 움직임이 그로부터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는 점 또한 부인하기는 힘들다.

1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드렁큰타이거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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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90년대 후반을 주도해온 인디 씬은 조정기를 거치는 형국이었다. 인디 씬 형성에 기여했던 두 레이블 – 인디와 강아지문화예술이 이 해에 활동을 멈췄고, 주목할만한 작품의 배출도 지난 몇 년에 비해 미진했다. 그러나 카바레와 스컹크를 비롯한 신흥 레이블들이 활동 저변을 넓혀가기 시작한 상황을 고려하면, 1999년의 인디 씬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숨 고르기 단계였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해 식품위생법의 개정으로 마침내 ‘라이브 클럽 합법화’가 이루어졌다는 사실도 그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요컨대, 인디 씬의 도약에 중요한 발판이 마련된 셈이라고 할 일이었다. 더불어, 홈레코딩 방식으로 앨범을 제작하여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둔 롤러코스터의 등장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그들은, 이듬해 자주 레이블을 설립하게 되는 스위트 피(델리 스파이스의 김민규)와 함께, 인디의 생존방식에 또 다른 대안을 제시했다.

그 밖에도 1999년은 ‘트라이포트’와 ‘쌈지 사운드’가 본격적인 형태의 페스티벌을 선보인 원년이라는 점에서 기억할 만한 해이기도 하다. 이는 지금 여기와 그때 거기 사이에 가로놓인 문화적 거리를 측정하는 기준으로서도 유의미하다. “한국에서도 록 페스티벌이 열린다”고 흥분했던 당시와 “페스티벌이 너무 많아져서 문제”라고 불평하는 요즘의 격세지감은, 그 사이의 달라진 우리 음악계 현황을 대변한다. 그렇게 1999면은 여러모로 변화라는 키워드와 조응한다. 역사가 그렇듯, 그런 변화가 오늘의 음악계를 만든 재료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1999년의 대표곡
1 난 널 원해 드렁큰타이거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2 천년의 사랑 박완규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3 Killer 베이비복스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4 I BELIEVE 이수영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5 바꿔 이정현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6 순정 KYT (코요태)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7 Break Free(Original Edit)   조PD (ZoPD)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이 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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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의 대표작

롤러코스터 [내게로 와]
토이 [A Night In Seoul]
V. A. [1999 대한민국]
아무밴드 [이.판.을.사]
언니네 이발관 [후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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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이 [A Night In Seoul]
V. A. [1999 대한민국]
아무밴드 [이.판.을.사]
언니네 이발관 [후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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