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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 뮤직

추천 3 | 조회 5015 | 2013.06.13
한국 대중음악의 연대기 1992 - 2012
서태지와 아이들에서 장기하와 얼굴들까지

제목을 쓰고 발문을 붙이려다 보니, 불가피하게도, 살짝 민망한 생각이 드는 것은 이 연재물이 당초 작년에 공개되었어야 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한국 대중음악의 흐름을 돌아본다는 취지에 대해서라면이야 딱히 원고 게재의 유통기한이란 게 있을 리 없겠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20주년을 계기로 그런 내용을 다루겠다고 계획했다면 연재 개시의 타이밍 정도는 맞춰주는 게 최소한의 조건이니까 말이다. 그런 기준의 하한선조차 지키지 못했으니 민망한 게 당연할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늦게나마 이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견인했던 한국 대중음악의 활황기와 장기하와 얼굴들로 상징되는 인디 씬의 성장세를 다시 한번 되짚는 일은 늦어도 결코 늦은 게 아니라는 판단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덩치 큰 기획을 그냥 묵혀둘 수는 없다는 편집자의 절박함도 한 몫을 했다.) 더불어, 조용필의 신작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최근의 현상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연륜과 성취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을 감지한 것 역시도 연재를 감행하게 만든 동력이다.

연재는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한 1992년부터 이후 현재까지(개제 시점이 늦어진 김에 2012년까지 다루기로 했다) 한국 대중음악계를 연간 단위로 정리하는 방식을 기본으로 한다. 음악계의 경향을 통해 당대의 사회적 배경과 문화적 양상을 결산하고자(혹은 당대의 사회적 배경과 문화적 양상을 통해 음악계의 경향을 결산하고자) 의도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매회 원고의 말미에 그 해를 대표하는 노래와 음반을 선정해 소개함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하는데, 해당 목록은 음악적 성취보다는 대중적 반향과 사회적 영향에서 상징성을 띤 작품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결과이다. 작품 선별의 기준을 발표 시점이 아니라 히트 혹은 대중적 인지의 시점으로 잡은 것도 같은 이유이다. 물론, 제한된 지면에 한정된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이므로 독자의 관점에 따라 누락된 노래와 음반이 눈에 띄는 건 거의 필연적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빠졌다고 질책하기 보다 저것도 생각난다고 귀띔해주시면 우리로서는 연재를 진행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끝으로, 장기하와 얼굴들을 서태지와 아이들의 대응항으로서 선택한 것은 그들이 인디라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음악생태계의 가장 성공적인 존재로서 한국 대중음악의 현재를 반영하는 상징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제목에 올리기에 그 이름의 각운도 제법 훌륭하게 어울리지 않는가?) 그러므로 우리의 선택이 적절했는지 여부는 10년 후에 다시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자.

한국 대중음악의 연대기 제7탄 1998년

1998년은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흥미로운 지점이다. 영미 팝 음악에 기세가 눌려있던 한국주류 대중음악의 연속 흥행 신화가 시작된 것은 1980년대 말이었고,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드디어 대폭발을 시작한다. 2012년의 상황에선 상상하기 힘들지만, 당시엔 밀리언셀링 앨범이 등장해도 하등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호황은 머지않아 엄청난 벽에 부딪히게 된다. 1997년 말 찾아온 외환위기, 그리고 이어진 기업들의 줄도산과 실직자 양산은 장미빛 미래로만 향해가던 한국 사회 전반을 충격에 빠뜨렸다. 당연하게 음반업계도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혼란 속에 빠진 사람들을 달래주기 위해 앨범 제작을 마무리 한 시점에서 급히 만들어 넣었다는 강산에의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이 (예상치 못했던) 큰 사랑을 받은 것은 1998년의 한국 상황을 은유한다. 1998년 한국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과 절망, 위로 받아야 할 상처와 그 상처에 소금을 뿌려대는 현실이 교차하고 있었다. 한국의 중산층은 붕괴되기 시작했고, 이들의 구매력에 기대서 성장해온 대중음악도 생존을 위한 변화가 절실했다. 1998년은 그런 의미에서 한국 대중음악의 생존 실험이 시작된 때라 하겠다. 이 실험은 크게 두 개의 모양새로 압축된다. 하나는 클럽과 PC통신 팬덤을 자양분으로 자라난 인디 뮤직이 자기 자리를 틀기 시작하려는 몸부림이다.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규모를 키우는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한 주류 음악의 시도가 또 다른 한 축이다.

1 To Heaven 조성모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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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의 노래로 맨 먼저 꼽을 수 있을 작품은 조성모 'To Heaven' 이다. 그런데, 이 노래의 성공요인은 곡의 빼어난 완성도나 엄청난 가창력과 같은 음악적인 부분에 있지 않았다. 아주 정석적인 AABCA의 진행을 차근차근 밟아가는, 예상 가능한 멜로디로 구성된 이 노래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은 최소 8할이 뮤직비디오의 덕이었다. 김하늘, 이병헌, 허준호 등이 등장하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구성된 이 뮤직비디오는 규모와 스토리 모두에서 화제가 되었다. 이 클립은 한국 대중음악계 전체에 드라마타이즈(dramatized) 뮤직비디오 열풍을 지폈는데, 심지어 앨범 제작비의 대부분을 뮤직비디오에 투입하는 희한한 세태(?)마저 불러왔다. 위기의 시대에 자본을 한 곳에 ‘몰빵’(!)하는 전략은 영화판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블록버스터 영화의 시작으로 일컬어지는 [쉬리] 역시 1998년 발표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규모에 대한 집착은 해외 팝 시장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음악과 영화는 블록버스터급 결합으로 동반 흥행을 노렸고, 뮤직비디오는 이를 이어준 가교였다. 1998년 최고의 히트곡으로 꼽히는 셀린 디온(Celin Dion)의 ‘My Heart Will Go On’은 제작비에서 흥행성적까지 신기원을 이룩한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였다. 또 하나의 1998년 대표곡으로 꼽을만한 에어로스미스(Aerosmith)의 ‘I Don't Want To Miss A Thing’ 역시 영화 [아마게돈]의 주제가였다. 두 곡 모두 영화의 스케일이 느껴지는 장쾌한 장면을 극적으로 편집한 뮤직비디오를 통해 전세계 음악 팬들에게 알려졌다.

1 My Heart Will Go On Celine Dion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2 I Don't Want To Miss A Thi.. Aerosmith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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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에 오히려 더 커지고 화려해진 주류 대중음악과 반대로 상대적으로 자본에서 자유로운 음악 즉, 인디가 언더그라운드로부터 부상하기 시작했다. 배드 테이스트의 [Bad Taste](1995), 그리고 크라잉 넛과 옐로우 키친의 스플릿 앨범 [Our Nation 1](1996)이 한국 인디 음악의 서막이었다면, 1998년은 본격적으로 인디 아티스트들이 앨범을 통해 세상과 만나기 시작한 해로 기억된다. 클럽 드럭의 쌍두마차 크라잉 넛의 독집 앨범 [Crying Nut]과 노 브레인의 EP [청춘 구십팔]은 주목할만한 문제작이었다. 거침없는 펑크와 하드코어의 외침은 컴필레이션 [클럽 하드코어, 아싸 오방 첫 앨범]으로 계속된다. 여기에는 삼청교육대(현 삼청), 바세린 등 현재도 한국 하드코어 씬을 이끌고 있는 굵직한 밴드의 미약하지만 발악하는(좋은 의미다) 시작이 담겨있다.

이 해 인디 씬에서는 소위 문제작들이 끊임없이 발표되었다. 기존 한국 대중음악의 문법 안에서 찾기 힘들었던 노이즈와 뒤틀림의 미학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 것이다. 허클베리 핀의 [18일의 수요일], 미선이의 [Drifting...], 레이니 선의 [Porno Virus], 어어부 프로젝트의 [개, 럭키스타] 등은 연주의 파격과 신경질적이면서도 청자를 사로잡을 줄 아는 호소력을 두루 갖춘, 미션 임파서블을 수행한 기폭제였다. 슬그머니 등장한 아무밴드의 [이.판.을.사]는 매끈한 녹음이나 세련됨 대신 날 것의 분노와 거침없음이 시대의 정서임을 매력적으로 확인시켜준다. 어설픈 흉내가 아닌 자기 색을 가진 테크노 앨범이 발표된 것도 인디 씬을 기반(발매는 도레미레코드)으로 하고 있다. 시나위, H2O, 삐삐롱스타킹을 거친 강기영이 달파란이란 이름으로 발표한 [휘파람 별]은 대중적 성공과 별개로 한국의 테크노/일렉트로니카 역사에서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다. 한국 최초의 블랙 메탈 앨범인 오딘의 [아주 커다란 슬픔의 눈]과 새드 레전드의 [Sad Legend]는 인디 제작 방식과 라이브 클럽을 통해 외려 소통의 통로를 구축한 한국 익스트림 메탈의 쾌작이었다. 이 모든 자양분이 모여 결국 ‘소란 페스티벌’이라는 한바탕 소동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던 것이다.

1 지구를 떠나며 달파란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2 휘파람별의 외계인 달파란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3 휘파람 코믹 댄스 파티 달파란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4 휘파람도시 달파란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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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는 자본 대신 팬들의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해 활로를 모색했고, PC통신은 이들에게 너무나 귀중한 자원이었다. 수많은 인디 뮤지션들이 PC통신 음악 동호회에서 활동하는 매니아인 동시에 이 공간을 통해 자신의 음악을 소개했다. 이중에는 한국 인디 힙합의 씨앗도 있었다. 검은 소리, SNP 등 PC통신 힙합 동호회의 회원들이 전화사서함을 이용해 회원들과 자작 랩을 공유하다 클럽 무대로 진출한 시점도 이때다. 이러한 PC통신과 인터넷을 통해 태어난 스타 중 가장 먼저 주목 받은 이는 단연 조피디다. ‘Break Free’는 주류 가요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화끈하고 직설적인 가사로 PC통신 사용자들의 호응을 얻기 시작했고, 이 팬덤 현상은 공중파의 관심까지 얻어냈다. ‘사이버’라는 단어가 SF 소설이나 영화 속 일이 아닌 일상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음악 생활의 중요한 장치가 된 것도 이 무렵부터다.

블록버스터 급 뮤직비디오와 함께 주류 대중음악계가 찾은 또 다른 활로는 아이돌 산업이었다. 이전까지 한국의 댄스 음악은 각 동네의 내로라하는 춤꾼들을 모아(혹은 춤꾼들이 모여) 그룹을 만들고, 작곡가에게 곡을 받고 곡에 맞춰 자신들이 안무를 만드는 식이었다. 그러나 아이돌 그룹의 시대에 이르러 이 모든 과정은 철저하게 분업화된 기획사가 전담하게 되었다. 기획사는 각 중, 고등학교에서 이름을 날리는 ‘끼’있는 친구들을 모아 전문 선생을 붙여 춤과 노래를 가르치고, 이들의 스타일에 어울리는 곡과 안무가가 동선 하나하나까지 고려해서 구성한 춤을 ‘훈련’시켜 군무를 추는, ‘공식’이 확립된 것이다. H.O.T의 성공에 힘입은 SM엔터테인먼트는 여성 아이돌 그룹 S.E.S.의 ‘Dreams Come True’를 내놨고, 이에 질세라 대성기획에서는 핑클이 ‘내 남자친구에게’로 응수하면서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졌다. 젝스키스와 H.O.T가 형성한 양강 체제에 박진영이 기획한 아이돌 그룹 G.O.D가 ‘어머님께’를 성공시키며 삼각구도로 판을 재구성하기 시작한다. 아이돌 그룹을 집중적으로 육성하는 모습은 해외 음악계의 추세와도 맞아 떨어지는 현상이었다. 1998년은 백스트리트 보이스(Backstreet Boys), 엔 싱크('N Sync), 스파이스 걸스(Spice Girls), 올 세인츠(All Saints) 등이 차트 정상을 차지한 해이기도 했던 것이다. 글로벌 단위로 봐도 아이돌 그룹의 전성기였다. 모타운에서 시작된 분업화된 공장제 아이돌 그룹은 1998년, 말 그대로,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대중음악의 트랜드의 최전선을 구축했던 것이다.

1 AS LONG AS YOU LOVE M.. Backstreet Boys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2 I WANT YOU BACK N Sync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3 2 Become 1 Spice Girls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4 Never Ever All Saints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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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국 아이돌 그룹들의 음악 대부분이 힙합을 (최소한 리듬에 있어선) 근간으로 하고 있었다는 점에 확실히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미 힙합이 주류 대중음악을 접수한 해외의 사례와 달리 한국 힙합은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상황이었음을 떠올려본다면, 한국에서 아이돌이 힙합을 차용한 것은 매우 흥미롭다. 심지어 음악적으론 전혀 힙합의 요소를 갖지 않은 아이돌 그룹의 경우에도 패션이나 여러 장치를 통해 힙합과의 연관성을 내비치려 노력했다. 1990년대 후반, 해외에서 부동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던 힙합은 청소년의 지지로 유지되는 아이돌 산업의 입장에서 저항적이고 쿨한 정서 모두를 갖춘 매력적인 선택지였던 것이다.

한국 밖에선 힙합 자체는 물론이고 힙합의 근간이 되는 훵크(funk)와 소울(soul)까지 다시금 주목 받기 시작했다. 예컨대, 네오 소울을 표방하며 힙합 리듬과 고전적 멜로디를 절묘하게 접목한 어셔(Usher), 브라이언 맥나이트(Brian McKnight)는 1998년 내내 차트를 누볐다. 힙합의 요소를 더 많이 품은 로린 힐(Lauryn Hill)의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 앨범은 1997년의 에리카 바두(Erykah Badu)의 [Baduizm]과 함께 네오 소울의 미학적 완성도에 방점을 찍었다. 또한 자미로콰이(Jamiroquai), US3 등은 훵크와 일렉트로니카를 조합한 애시드 재즈를 선보이며 온고지신의 묘로 사랑 받았다. 복고의 시계를 아예 과거로 돌려 빅밴드 스윙의 강렬한 리듬을 내세운 체리 파핑 대디스(Cherry Poppin' Daddies)나 브라이언 세처 오케스트라(Brian Setzer Orchestra) 등 레트로 스윙 무브먼트의 주인공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힙합과 네오 소울은 당시 PC통신에서 내공을 쌓고 있던 가리온, 주석, 피타입, 데프콘, 휘성, 정인, 거미 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이들을 통해 바로 몇 년 후부터 한국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다음해(1999년)에 데뷔 앨범을 발표하게 되는 롤러코스터의 싹 역시 해외의 애시드 재즈 붐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1 You Make Me Wanna.... Usher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2 Anytime Brian McKnight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3 Doo Wop (That Thing) Lauryn Hill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4 Otherside Of The Game Erykah Badu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5 Virtual Insanity Jamiroquai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6 Cantaloop Us3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7 The Dirty Boogie Brian Setzer Orchest..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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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998년 4월에는 역사적인 메탈리카(Metallica)의 첫 내한공연이 있었다. 금융위기 직후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이틀간 진행된 공연은 흥행에 성공하며, 해외 아티스트 방한 공연의 새로운 신화를 만들었다. 공연장을 찾았던 수많은 넥타이 부대들은 살얼음을 걷는 것 같은 하루하루의 현실을 메탈리카의 강렬한 음악 속에서 잊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메탈리카의 첫 내한이 성공을 거둔 것처럼, 위기는 기회라고 하던가. 주먹구구식에 가깝던 한국의 주류 대중음악 제작 시스템이 포드적인 방식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던 계기도, 인디 음악의 눈부신 약진도 따지고 보면 철저하게 시장의 위기에 대처하는 음악계의 노력이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대중음악이 시대를 담아내는 것은 단순히 노랫말이나 음률만이 아니라 그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도 발견된다. 1998년의 교훈은 여기 있다.

1998년의 대표곡
1 어머님께 god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2 그녀와의 이별 김현정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3 나나나 유승준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4 고해 임재범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5 커플 젝스키스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6 To Heaven 조성모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7 내 남자 친구에게 핑클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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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의 대표작

달파란 [휘파람 별]
레이니 선 [Porno Virus]
미선이 [Drifting...]
새드 레전드 [Sad Legend]
서태지 [Seo Tai Ji]
어어부 프로젝트 [개, 럭키스타]
조성모 [To Heaven]
허클베리 핀 [18일의 수요일]
V.A. [클럽 하드코어, 아싸 오방 첫 앨범]

달파란 [휘파람 별]
레이니 선 [Porno Virus]
미선이 [Drifting...]
새드 레전드 [Sad Legend]
서태지 [Seo Tai Ji]
어어부 프로젝트 [개, 럭키스타]
조성모 [To Heaven]
허클베리 핀 [18일의 수요일]
V.A. [클럽 하드코어, 아싸 오방 첫 앨범]

100비트 | 조일동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호오는 분명하지만, 취향의 다름을 옳고 그름이라 오해하는 자들을 경멸하는 음악딴따라 글쟁이이자 문화인류학꾼. 변방의 잡놈들의 네트워크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믿고 있다.

http://100be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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