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이 된 이후 나온 7집 [Self Portrait](1996)의 인트로. 그가 생전에 라디오에 출연해 털어놨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편집되어 흘러나온다. 어쩌면 이렇게나 한 마디 한 마디가 절망적일까. “건강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회복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그에게, 어느 DJ가 일생의 소원을 물으니 참 무기력한 답을 준다. “목소리가 사실 갔거든요. 제일 바라는 게 그거죠.” 어린 시절의 기억도 털어놓는다. 서울과 시골을 오가며 살았던 유년 시절의 그는 전학할 때마다 놀림을 당했고, 그럴 때마다 싸웠고 또 외로워했다고 말한다. 그 싸움과 외로움은 곧 노래가 됐다. “음악을 시작했을 때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던 시절이 있었다. 배가 고파야 노래가 더 잘 됐던 것 같다. 나는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특히 방황, 좌절 등 여러 가지 좀 나쁜 경험이 많은 편이다.”
돌이켜보면 김현식은 행복할 수도 있었다. 그를 늘 걱정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고, 당장 병원부터 가야 하나 녹음을 지속해야 하나를 함께 고민하던 절친한 동료들이 있었다. 2집 전후로 맺게 된 동아기획 식구들과의 인연, 차차 확장되는 새로운 인연들이 그랬다. 많은 이들이 그의 곁에 있었다. 동방의 빛과 메신저스 등 밤무대 생활을 함께 하던 친구들, 그리고 나중에 봄여름가을겨울을 결성하는 김종진 전태관 장기호 유재하, 더 나중에 만나 그에게 블루스를 일깨운 이정선 엄인호 같은 동료들의 이야기다. 그들과 교감하면서 그의 음악은 거듭 발전했고, 그 길목에서 ‘사랑했어요’ ‘비처럼 음악처럼’ 등의 히트곡을 얻었다.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오르자 수많은 라디오와 음반매장이 그를 찾았고 곧 방송국이 그를 찾았지만 그는 현장을 더 사랑했다. 공연만으로 뮤지션이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이 될 때까지 무대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그는 1990년 11월 1일, 33세의 그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갔다. 사인은 알코올 중독에 의한 간경화였다. 그리고 그해 겨울, 여느 때와 다르게 크리스마스 캐럴이 아닌 다른 노래가 매체와 거리를 뒤덮었다. 김현식이 남긴 ‘내 사랑 내 곁에’였다. 병원에 있다가 탈출했다가를 반복하는 김현식과 동료들의 근심 속에서 가녹음된 노래는 그가 눈을 감자 어느새 동네 꼬마들까지 흥얼거릴 수 있는 1990년의 노래가 되었다. 노래가 수록된 6집은 순식간에 100만 장이 넘게 나갔고, 골든디스크는 ‘내 사랑 내 곁에’에 대상을 안겼다. 과연 세상이 함께 아파하고 탄식할 만한 노래였다. ‘내 사랑 내 곁에’는 가수의 사연과 완벽한 일치를 이루고 있었다. 더없이 서정적인 선율과 공허한 가사를, 그는 당장 죽어버릴 것처럼 누구보다도 절박하게 울부짖으며 실어 나른 보컬리스트였다.
노래를 만든 오태호도 부상했다. ‘내 사랑 내 곁에’는 당시 신촌블루스에서 기타를 연주하던 오태호가 본격적으로 스튜디오를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만든 노래로, 김현식은 나중에 작곡가 이력을 쌓게 되는 오태호의 싹을 처음으로 발견한 인물이다. 연습 삼아 자작곡을 홀로 연주하고 있는 오태호에게 다가간 김현식은 곡을 달라 요구하고 승낙을 얻는다. 그리고 작곡가의 손을 떠난 노래를 성치 않은 몸으로 녹음했는데, 가녹음 버전을 들어본 후 오태호는 편곡과 보컬 모두에 만족하지만 작은 오류를 발견하게 된다. ‘시간은 멀어 집으로 향해 가는데’ 대목이 원래는 ‘시간은 멀어짐으로 향해 가는데’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원히 수정되지 못했다. 아무도 손을 댈 수 없는 노래를 남기고, 그는 갔다.
완벽하게 마친 상태가 아니라서 떠난 자의 인생이 더 명확하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내 사랑 내 곁에’를 들을 때면 눈 앞에서 휘청거리며 노래하는 김현식을 바라보는 것만 같다. 도입부의 처연한 바이올린 연주가 끝나면, 이윽고 지나간 생을 돌아보며 후회하는 절절한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많이 사랑받았지만 그 사랑을 영영 받아들이지 못한 삐딱한 남자, 언제나 열정과 열망이 가득했지만 그만큼 많은 좌절과 절망과 씨름하면서 살아온 불행한 사내의 회한이다. 자신을 돌보지 않으며 비틀거리던 그는 끝내 몸을 안길 곳을 찾지 못했다. 저 먼 곳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이제는 알지 않을까.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노래를 사랑했다는 것을, 그리고 당신이 남기고 간 노래는 신화적인 유작으로 남았다는 것을.
타이틀이 거창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원자폭탄으로 도시 하나를 순식간에 박살내버리거나 멀쩡한 강바닥을 파내서 생태계를 초토화시키는 정도쯤이나 되야 세상을 바꿨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설득할 생각은 없다. 다만, 노래가 세상을 바꾸는 방식은 투표의 작동원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한 장의 투표권이 공동의 지향과 만남으로써 세상을 (좋게든 나쁘게든) 바꾸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하나의 노래는 대중의 정서와 호응함으로써 한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규정하는 이정표로 우뚝 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바꾼 노래'들을 주목했다. 당초 19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전체를 아우르는 기획으로 준비했으나,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의 제약으로 여기서는 1970년 이후 발표된 노래들을 시대순으로 소개하기로 했다는 점도 밝혀둔다. 더불어, 여기에 미처 소개하지 못하는 노래들은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을 것이라는 약속도 함께 드린다.
취미이자 직업으로 음악을 듣고 있다. 그리고 취미이자 직업으로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취미일 때 즐겁지만 직업일 때 고민되는 건 몇 년째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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