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훈의 선율과 가사는 주로 사랑의 비극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는 사랑의 패자가 감내해야 하는 슬픔과 아픔을 애절하게 전달하면서도, 거기 매몰되지 않고 흔들림 없이 노래하는 믿음직한 가창력의 가수다. 그렇게 발라드의 전형을 따르고 있지만 이문세, 변진섭, 김민우 등 이전의 발라드 가수들과 차별화된 부분이 있다. 그는 일당백 캐릭터였다. 신재홍, 박광현, 김창환 등 여러 작곡가가 앨범에 등장하긴 하지만, 1집 ‘미소 속에 비친 그대’와 2집 ‘보이지 않는 사랑’과 3집 ‘널 사랑하니까’ 등 앨범의 대표곡은 늘 그의 작품으로 갔다(게다가 5집부터는 전곡을 작곡하고, 프로듀싱까지 섭렵한다). 그는 발라드 제작과 소화의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는 교과서였다.
1집 앨범에서 '미소속에 비친 그대', '오늘같이 이런 창밖이 좋아' 등이 큰 인기를 얻은 후 이듬 해인 1991년 발표한 발라드의 황제 신승훈의 두 번째 앨범이다. 베토벤의 Ich liebe dich'를 삽입한 신승훈 작사, 작곡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 수록되..
그의 노래는 누구보다도 발라드의 기본에 충실했지만, 그가 획득한 성과란 발라드의 기본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잘 만들고 잘 부른 그의 노래는 남녀불문으로 또 세대불문으로 애창됐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보이지 않는 사랑’이다. 당시 SBS [인기가요] 14주 연속 1위 기록을 세운 징글징글한 곡이다. 차트는 곧 판매의 다른 이름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2집은 158만 장이 나갔는데, 사실 새삼스러울 것 없는 수량이다. 데뷔 시절부터 7집까지 앨범당 100만 장을 넘기는 건 예정된 수순에 가까웠다. 나아가 1집부터 6집까지 총 1,000만여 장, 그리고 그의 통산 세일즈는 1,400만 장 가량이다. 게다가 이건 정밀하게 누적된 수치가 아니라 앨범이 나왔던 해당 해 기록의 합산일 뿐이다. 그는 발라드의 기본이 아니었다. 흔한 수사가 말해주는 대로 그는 진정 발라드의 황제였다.
대전지역에서 통기타 가수로 생활하던 그는 작사가 신재각을 통해 프로듀서 김창환을 만난다. 신승훈을 발견한 김창환은 이후 김건모와 박미경과 클론의 앨범에서 하게 될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됐다. 노래의 성격도 달랐던 데다 이미 작곡까지 가능한 준비된 가수였기 때문이다. 등장과 동시에 불꽃 같은 반응을 얻은 후 안정된 팬층을 확보하자 곧 작은 실험이 시작된다. 발라드의 기본을 유지하면서도 여기에 변형을 가한 것이다. 베토벤의 성악곡 ‘Ich liebe dich(그대를 사랑해)’를 붙여 편곡한 ‘보이지 않는 사랑’의 이야기다. 전에 없던 이질적인 구성이었지만 세상은 너그러웠다. 노래는 방송 3사 가요 프로그램에서 모두 1위를 기록했다. 신승훈은 그해 연말 KBS 가요대상과 골든디스크 본상을 수상했다. 데뷔 이후 점화된 반응의 불꽃이 마침내 폭발한 것이다.
성공적인 데뷔는 ‘보이지 않는 사랑’ 말고도 크고 작은 전환의 음악을 선보일 여유를 마련해 주었다. 사실상 1집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성이지만, 두 번째 앨범에는 외부 작곡가들의 참여가 늘어났고 그들의 일부는 신승훈에게 리듬과 적극적으로 어울려볼 것을 권했다. 후속 활동을 부추긴 두 곡, 박광현이 작곡한 ‘우연히’와 프로듀서 김창환의 작품 ‘날 울리지마’가 대표적이다. 박동을 살린 편곡으로 팬덤에게 사랑받았던 ‘두 번째의 사랑’을 끝내 아껴두고 ‘미소 속에 비친 그대’ 단 한 곡으로 승부를 봤던 전작보다 훨씬 공격적인 전법이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진 변신과 적당한 노출로, 앨범은 전보다 발전적인 반응을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앨범보다 오래 남은 건 결국 노래다. 유일무이하게 3개월 이상 차트를 점령했던 노래 ‘보이지 않는 사랑’의 위엄이다. 노래에는 클래식을 붙이는 획기적인 시도가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발라드 고유의 미덕을 외면하지는 않았다. 떠난 그대가 어제는 사랑을 오늘은 이별을 안겨주었다는 사연을, 울음을 참아내는 것처럼 전달하면서 발라드의 보편을 노래했다. 그러나 반응까지 보편적이지는 않았다. 단순히 슬픔에 대한 세상의 동참이라 한정할 수 없는 엄청난 지지였다. 광화문에 대한 추억이 없어도 이문세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군입대에 대한 아픔이 없어도 김민우의 노래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사랑할 거라 다짐한 적 없는 이들까지 움직일 수 있었다. 노래가 전하는 슬픔에 대한 이해 없이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마음을 파고 들 만큼, 아름답게 만들고 따뜻하게 표현된 노래의 힘이다.
돌이켜보면 세상은 그에게 노래만을 원했을 뿐 캐릭터를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토록 오랜 기간 실패한 사랑을 주제로 노래했지만 스캔들 한 번 터지지 않았을 정도로 건조한 연예인으로 살았다. 점차 앨범에 대한 그의 지분은 더 커졌고, 전곡 작곡과 프로듀싱 도전까지 이루는 한편 7집 ‘전설 속의 누군가처럼’(2000)을 통해 파격적인 장르 전환까지 시도하지만, 뮤지션 혹은 싱어 송라이터 신승훈에 대한 평가는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좋은 노래를 불렀던 가수이지, 만들었던 인재로 강렬하게 기억되지는 않는다. 그는 그렇게 발라드의 황제이자 대성한 대중가수의 표본으로 살았다. 보다 고매하고 차원 높은 기량을 덮어버릴 만큼 위대했던 노래 때문일지 모른다.
타이틀이 거창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원자폭탄으로 도시 하나를 순식간에 박살내버리거나 멀쩡한 강바닥을 파내서 생태계를 초토화시키는 정도쯤이나 되야 세상을 바꿨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설득할 생각은 없다. 다만, 노래가 세상을 바꾸는 방식은 투표의 작동원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한 장의 투표권이 공동의 지향과 만남으로써 세상을 (좋게든 나쁘게든) 바꾸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하나의 노래는 대중의 정서와 호응함으로써 한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규정하는 이정표로 우뚝 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바꾼 노래'들을 주목했다. 당초 19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전체를 아우르는 기획으로 준비했으나,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의 제약으로 여기서는 1970년 이후 발표된 노래들을 시대순으로 소개하기로 했다는 점도 밝혀둔다. 더불어, 여기에 미처 소개하지 못하는 노래들은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을 것이라는 약속도 함께 드린다.
취미이자 직업으로 음악을 듣고 있다. 그리고 취미이자 직업으로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취미일 때 즐겁지만 직업일 때 고민되는 건 몇 년째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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