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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몇 곡의 노래들

tvN 16부작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1부 시퀀스. 시작하자 마자 PC 통신의 파란 화면과 함께 벅의 ‘맨발의 청춘’(1997)이 긴박하게 튀어나온다. 카메라는 곧바로 노래방으로 이동하고, 노래방 이용 종료시간 1분을 남겨두고 H.O.T.의 ‘캔디’(1996)를 고른 주인공 성시원(정은지)는 2012년 기준으로 노래의 역사를 설명한다. “이거 15년도 더 된 노래다.” 격세지감이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이 다루는 복고는 지난해 개봉한 영화 [써니]처럼 1980년대, 혹은 최근 드라마 [빛과 그림자]처럼 그 이전 시대의 이야기라는 인식에 익숙했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의 영화 [건축학 개론]이 말해주는 것처럼 어느덧 1990년대의 이야기도 충분히 복고의 반열에 오른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이어서 현재 6회까지 진행된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보다 집요하고 구체적인 방식으로 1990년대 중후반을 파고든다. 낭만의 전람회만 거론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인 H.O.T.와 젝스키스를 중점 소재로 두면서, 한편 남녀간의 첫사랑이 사랑의 전부가 아니라 연예인에 대한 연정 또한 행복하고도 아픈 사랑의 기억이 될 수 있다고 회고하면서.

[응답하라 1997]은 H.O.T. 부산 팬클럽 회원(후에 임원으로 승격) 여고생 성시원의 요란한 팬질 후일담이다. 팬덤 문화만 협소하게 훑는 것이 아니라 폭넓고 디테일한 시야로 시원과 친구들이 고등학교 2학년을 보낸 1997년의 세월로 우리를 데려간다. 당시를 선명하게 재현하고자 여러 소품과 문화를 동원하는데, 기억나는 대로 대강 나열해보기로 하자. 하이텔, DDR, 다마고찌, 최진실 고데기 머리, 이승연 화보, 27만원짜리 마리떼 프랑소와 저버 청바지, 축배사이다, 콤비콜라, 깜찍이소다, 드라마 [파랑새는 있다] [신데렐라] [별은 내 가슴에], 그리고 그해의 축구 한일전, 그밖에 [스타 다큐]와 [충전 100% 쇼] 등등이다. 조금 웃기지만 우습지는 않고, 그렇다고 무한 감정 이입해 아련해하자니 그걸 다 기억하고 있는 자신이 약간 머쓱하고 부끄러워지는 품목들이다. 그보다 강렬한 시대의 유산은 따로 있다. 노래다. 굳이 찾아 듣지도 않았을 뿐더러 가사를 외우려는 노력조차 없었는 데도 자동으로 입이 움직이는 그 시절의 노래들이다. 심지어 6회분에서 타이틀곡도 아니었던 H.O.T.의 ‘너와 나’를 나도 모르게 따라부르고 말았을 때, 이대로 죽고 싶었다.

[응답하라 1997]은 중계 매체의 성격상 본방 사수의 제약이 많지만, 연이은 호평의 입소문을 타고 다시보기 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우선 ‘네이티브 경남’ 출신의 현직 아이돌이 선보이는 예상 밖의 호연, 연출 차원에서는 시대의 섬세한 재구성, 대본 작업에 있어서는 모나지 않은 따뜻한 이야기구조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 시절 10대를 보냈을, 너도 알고 나도 아는 통속의 1990년대 가요를 다량으로 얹었다. 가수가 등장하거나 노래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품은 많았지만, 어느새 기억 속에서 사라진 여느 작품들과 달리 [응답하라 1997]은 시대의 증인들을 흔드는 중요한 노래들을 통째로 쏟아내면서 특정 세대의 강한 동의를 얻고 있다. 일단 넥스트의 ‘날아라 병아리’, 우노의 ‘슬픈 우리 젊은 날’, K2의 ‘소유하지 않는 사랑’, 지누션의 ‘말해줘’, 영턱스클럽의 ‘못난이 콤플렉스’, 줄리엣의 ‘기다려 늑대’, 김정은의 ‘널 사랑해’ 등이 이따금씩 은은하게 흘러나와 진행에 힘을 보탰다. 반대로 어떤 노래들은 아예 작정하고 밀착해서 오늘날 서른 전후를 살아가는 이들의 본능적인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복고는 기성세대의 전유물인 줄로만 알았다가 이제는 남 얘기가 아니라고 막 실감하기 시작했을 어느 초보 어른들의 응답을.

성시원(정은지)의 노래
H.O.T. – 전사의 후예 / 젝스키스 – 폼생폼사

부산 여고생 시원. H.O.T.가 대구 MBC에서 라디오 공개방송을 한다는 소식을 접수한 후, 생리 핑계로 야자를 째고 그 먼 길을 한걸음에 달려갈 만큼 못 말리는 열혈 팬이다. 공개홀에 도착한 시원은 H.O.T.의 데뷔곡 ‘전사의 후예’가 흐르자 벌떡 일어나 그동안 집에서 녹화 테이프를 여려 차례 돌리면서 연마한 안무를 그대로 따라하는 재주를 부린다(뿐만 아니라 시원은 ‘캔디’의 안무도 마스터한 상태다). 중간중간 감격의 눈물까지 흘린다. 보통 이런 공연 장면은 무대 위주로 구성되기 마련인데, 이제와서 H.O.T.를 무대에 세울 수 없는 제작진은 뜨거운 팬심에만 초점을 둔다. 그리고 시원을 비롯해 저마다 똑같은 팬복을 입고 오빠를 연호하는 객석의 이색 풍경만 보여준다. 정작 열광하는 대상이 보이지 않는 데도 충분히 전달되는 생생한 현장감이다. 작가진 혹은 연출진 가운데 또 다른 시원이 있었을 것이라 확신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겪어보지 않았으면 그런 장면은 나올 수가 없다.

시원이 가장 좋아하는 H.O.T. 멤버는 토니안이다. 안승부인(안승호: 토니안의 한국식 이름)이라 자처하는 시원에게는 동서가 있다. 한반의 절친이자 강타를 좋아하는 유정(신소율)이다. 오붓한 동서지간은 어느 순간 절교의 위기를 맞는다. 시원이 불쑥 찾아간 유정의 집에서, 방 벽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젝스키스(그간 시원 표현에 의하면 “우리 오빠 따라지”)의 포스터를 발견하면서다. 시원의 배신감, 유정의 당혹감 앞에서 돌연 명랑한 노래가 튀어나온다. 젝스키스의 ‘폼생폼사’다. 이후 영원히 철새팬(2012년에는 인피니트와 김수현을 좋아하고 있다)으로 살아가게 되는 유정은 일시적으로 박살난 우정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간절한 해명의 삐삐 메시지를 남긴다. “미안타. 내 H.O.T. 오빠야들 싫어진 거 아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여섯 개의 수정이 내 마음 속에 들어와버린 걸 우야겠노. 내 억수로 미안타. ㅜ.ㅜ”

윤윤제(서인국)의 노래
K2 – 슬프도록 아름다운 / 양파 – 애송이의 사랑

시원의 소꿉친구 윤제. 잠든 시원을 바라보면서 “한때는 안경을 벗으니까 예뻐 보였는데 이제는 안경을 써도 예쁘네”라 중얼거릴 만큼 그녀를 좋아하고 있다. 시원과 윤제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윤제는 매사 이성적이지만 시원은 충동적이고 즉흥적이다. 성적도 극과 극이라 윤제는 전교 1등, 시원은 반에서 48등이다(정원 48명). 언제부턴가 윤제는 시원을 애타게 좋아하지만, 윤제가 몇 번이나 신호를 줬는데도 그 마음을 읽을 리 없는 덜 성숙한 시원이 한결 같이 좋아하는 남자는 H.O.T.의 토니다. 그런 시원은 H.O.T.의 노래만 듣지만 윤제는 K2(그간 시원의 표현에 의하면 “할애비 같은 음악”)와 유사 발라드를 좋아한다. 그런 윤제의 취향을 알아주는 친구는 따로 있다. 아침부터 번호 1004와 함께 K2의 ‘슬프도록 아름다운’을 삐삐로 선물해주는 묘령의 인물인데, 그 친구가 누구인지는 현재까지 시원과 준희(인피니트 호야) 사이의 깊숙한 비밀이다.

K2를 좋아하는 윤제는 전람회와 올포원과 유재하도 즐겨 듣는다. 고결한 취향의 윤제는 신예 가수 양파마저도 다마네기 운운하며 철저하게 무시한다. 이름이 그게 뭐냐고, 그런 식이면 자두도 나올 거고 거미 같은 장난스러운 이름의 가수도 나올 것이라며 절망적인(그러나 정확한) 미래 예측까지 한다. 그냥 품위를 잃은 가요계에 대한 맹렬한 비판 정도로만 끝냈으면 됐을 텐데, 시종일관 깐죽거리며 양파의 음악을 권하는 친구 성재(이시언) 앞에서 윤제는 이렇게 세속적인 노래가 뜨면 홀딱 벗고 부산여고에서 덤블링을 하겠다고 호언장담까지 해버린다. 그런데 우짜노. 며칠 지나지 않아 그토록 우습게 여겼던 양파가 확 떠버리고 만다. 윤제는 쪽을 무릅쓰고 여고 운동장에서 팬티 바람으로 퍼포먼스를 벌여야만 한다. 남아일언중천금.

윤태웅(송종호)의 노래
이승환 – 화려하지 않은 고백 / 서지원 – I Miss You

[응답하라 1997]에는 소품 같은 과거 이야기가 하나 스쳐 지나간다. 윤제의 형 태웅, 그리고 시원의 언니 송주(쥬얼리 김예원)가 나눈 짧은 사랑의 추억이다. 대학생 시절의 태웅은 고교생 송주의 영어 과외를 맡고 있다. 함께 영어 공부를 하던 도중 말괄량이 같은 송주는 불쑥 태웅에게 고백한다. “오빠야, 할 말이 있다. marry to me!” 아직 태웅은 이성적인 상태라서 그런 송주의 진심을 귀여운 장난으로 넘기고 선생의 본분에 집중한다. “바보야, marry는 타동사라서 전치사가 안 붙는다고 몇 번을 말했나. marry me가 맞는 표현이다.” 이후 송주는 타동사와 자동사를 완벽하게 구분하게 됐는지 좌우간 대학에 합격한다. 태웅이 다니고 있는 사범대학이다. 둘은 이제 동등해졌다.

1992년, 그해 대학생이 된 송주는 태웅과 풋풋한 사랑을 시작한다. 바흐의 음악을 나누며 행복한 연애에 젖어 있을 때, [응답하라 1997]은 그들에게 이승환의 ‘화려하지 않은 고백’을 선사한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송주는 세상을 떠난다. 그렇게 송주와 태웅의 사랑이 좌절되었을 때, [응답하라 1997]은 서지원의 ‘I Miss You’로 그들의 슬픔에 동참한다. 1992년은 송주의 아버지 성동일이 코치로 있던 프로야구팀 롯데 자이언츠가 한국 시리즈 우승을 거둔 감격의 해이지만 딸을 잃은 송주의 아버지는 차마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없다. 시간이 흘러 송주를 둘러싼 모든 이들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었을 1997년, 과거 송주와 태웅이 즐겼던 바흐의 선율이 어디선가 흘러나온다. 전도연 한석규 주연의 영화 [접속]이 개봉했다.

[응답하라 1997]에 삽입된 다른 곡들
1 Candy H.O.T.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2 We Are The Future H.O.T.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3 너와 나 H.O.T.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4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Free .. H.O.T.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5 늑대와 양 H.O.T.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6 아이야!(I YAH!) - SONG H.O.T.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7 Go! HOT! H.O.T.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8 사랑하는 너에게 젝스키스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9 날아라 병아리 N.EX.T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10 고백 델리스파이스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11 말해줘(Feat. 엄정화) 지누션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12 FOREVER 안재욱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13 맨발의 청춘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14 암연 고한우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15 못난이 콤플렉스 영턱스클럽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16 기다려 늑대 줄리엣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17 A Lover′s Concerto - 접속.. V.A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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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비트 | 이민희 (웹진 '백비트' 편집인)

취미이자 직업으로 음악을 듣고 있다. 그리고 취미이자 직업으로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취미일 때 즐겁지만 직업일 때 고민되는 건 몇 년째 변함이 없다.

http://100be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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