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름과 해변을 걷다, 태양과 함께.
짧은 여름밤이 지나고 성미 급하게 날이 밝자 부지런한 탈출자들은 말끔한 모습으로 버스에 올랐다. 지난밤에 술잔을 나누며 초면임에도 격의를 내던지고 급속히 친밀해진 덕에 말을 놓기로 약속했던 사람들도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잘 자…무셨어요?”
GET의 모든 이동수단은 튼튼한 버스와 연약한 두 다리였다. 도시의 연결망인 포장도로를 따라 이젠 도시사람들이 과거의 노동 현장이었던 시골로 휴가를 간다. 나이든 부모 혹은 어린 아이들과 함께 하는 가족여행이 아니라면 대중교통과 도보여행이 더 나은 이유는 한둘이 아니다. 사연이 있는 동네라면 더욱 그렇다. 유목민을 제외하면 자가용으로 몇 시간을 돌아다녀야 하는 고향을 가진 사람은 없다. 차창의 위치에 따라 시선의 높이와 풍경도 다른 자가용을 타고선 어릴 적에 아이스트림을 사먹던 슈퍼마켓 앞의 플라타너스가 그대로 있는지 확인하기 힘들고, 박씨네 아들이 박사학위를 땄다거나 초등학교 4학년 때 짝꿍이었던 동창이 같은 반 누구와 혼인을 했다거나 하는 속사정도 들을 수 없다.
섬 여행에는 고향 여행과 비슷한 구석이 있다. 지난봄에 작은 오토바이를 빌려 우도 구석구석을 일주하고 다니면서도 누군가에겐 평생의 터전인 섬을 몇 시간 휙 돌아보는 것이 미안했다. 그때 오토바이 옆으로 무슨 밀린 일이라도 해치우듯이 훨씬 빠르게 둘러보며 나가려는 자가용이 휙 지나갔다. 교통수단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공원처럼 된 마라도에선 선착장과 짜장면집을 오가는 골프카트들을 피해 걸어야 한다. 임종의 순간에조차 절대 해선 안 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짜장이냐, 잠뽕이냐?’가 그것이다. 이 한국인의 햄릿형 고뇌를 덜어주려는 고뇌에 찬 결단으로 짬짜면이 탄생했다. 짬짜면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짜장과 짬뽕을 제대로 맛보게 하려는 기획이 GET이다.
버스에서 제주민의 삶이 시작되고 끝나는 오름에 대한 이야기, 너무 성공한 제주올레길 덕에 ‘올레 몇 코스’로 통폐합되어 저마다의 이름을 잃어가는 마을과 길에 대한 안타까움을 전해 들으며 저지오름에 당도했다. 제주의 하늘이 우리를 반기고자 파견한 태양이 열정을 쏟아 붓는 와중에 마주한 급경사 계단 앞에서 작은 동요가 일고 있었다. 그 때 유치원 아이들의 행렬이 나타났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든 구호를 외치며 아이들은 계단을 아무렇잖게 아장아장 올랐다. 탈출자들은 어른스럽게 늠름한 표정을 지으며 유치원생 행렬에 질세라 계단을 성큼성큼 올랐고, 잠시 후 넓은 시야와 막힌 것 없는 하늘 그리고 아름다운 숲에게서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
저지오름 탐방을 마치고 난 후에 탈출자들 중 일부는 세상에서 가장 느린 걸음과 동작을 몸소 시현했다. 바다가 내뿜어준 뜨거운 숨결 때문이 아니라 여유와 낭만에 취해서였다고 믿는다. 그간의 숱한 도보여행의 경험을 통하여 최단거리로 걷는 방법과 한여름 땡볕을 피하는 비법을 터득한 내 눈에 저지리의 농협이 보였고, 지역사회와 방문자들에게 기여해준 농협의 에어컨 아래에서 모자를 벗어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자동입출금기 창구 안에 쪼그려 앉아있다 보니 문득 제주에서 ‘세한도’를 그린 추사 김정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유배지에서 한겨울 풍경을 그림에 담아놓고 뚫어져라 응시하며 상상냉방을 시도한 것이 분명하다. ‘세한도’의 숨은 뜻을 깨닫게 된 나 자신이 무척 대견스러워졌다.
바다와 제대로 재회한 것은 그 다음이다. 제주선인장 자생지로 유명한 월령리에서 30분 정도 걸으면 된다는 교관, 아니 생태해설사 강성일 박사의 말씀에 적지 않은 이들이 모세를 따라 열사의 사막으로 나아간 신의 백성마냥 다시 태양 아래로 뛰어들었다. 30분이면 입 안에 커다란 사탕 하나를 물고 다녀올 수 있는 거리 아닌가(역시나 실제론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그러나 약간의 망설임과 의구심은 동네의 작은 길을 따라 걷다가 일순 사라져버린다. 바다같은 하늘과 하늘같은 바다가 펼쳐졌다. 구름은 전선에 걸리지 않고 마음껏 하늘과 바다를 항해했다. 도시와 도시 바깥의 가장 큰 차이는 시야의 범위이다. 더구나 도시에는 그 좁은 시야 안에 볼 것들이 ‘너무’ 많이 들어차 있다. 해변의 길은 시야의 범위가 곧 마음의 넓이가 된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단순히 인간의 구조물이 모두 싫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의 놀라운 발명품은, 사람이 만든 꽃이라 생각하는, 가로등만이 아니다. 홀로 선 등대들은 아련한 무언가를 상징했고, 비양도를 바라보며 금능까지 걷는 해변의 풍경 속에 녹아든 풍력발전기가 우리를 응원했다.
많은 풀과 꽃을 만나고, 맥반석처럼 달궈진 돌과 바위를 밟으며 누구는 절로 사진기를 꺼내드는 자신의 손을 보았고, 누구는 여행은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며 그냥 바람 속을 걸었다. 돌담을 사이에 두고 말들을 만났을 때엔 말을 걸어볼까 하다가 공통의 화제가 떠오르지 않아 그만두었다. 말들은 풀을 뜯고 낮잠을 자느라 바빠 보였고, 바쁜 말들의 시간에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한때는 처치 곤란한 잡초에 불과했던 선인장이 제주를 대표하는 각종 음식물의 재료가 되고, 자생군락지가 관광코스가 된 과정에 대한 설명도 들었다. 미국조차도 불과 200년 전에 있었던 조지 워싱턴의 생가에서 무려 포크까지 발굴하는데 우린 너무 많은 것들을 아낌없이 버려왔다. 여기저기에서 벌이는 공사가 친환경이란 주장은 한강둔치에 스머프 마을이 있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배려와 예의는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다. 때론 삶의 앎이 불편함과 불쾌함을 야기한다. 그러나 경제적 가치 때문이 아니라, 외국에서 비용을 지불하며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새삼스럽지 않듯이, 자연과의 화해 자체가 관계의 이해이며, 자연과 도시 그리고 신비와 과학의 공존은 상식 수준의 지향이 되고 있다. 자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거리는 평생 줄지 않을 것이다. 너무 흔해 보여선지 크레용이 얼마나 훌륭한 미술재료이고 리코더가 얼마나 유서 깊은 악기인지 우리는 잊곤 한다.
귀족부인들처럼 부채를 살랑살랑 흔들며 유유자적 산책하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태양과 바다의 환영사는 그칠 줄 몰랐다. 태양계에 대하여 공부하지 않았다면 지난겨울 언 땅을 녹이던 해가 지금 머리 위에 떠있는 해와 같은 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예전에 ‘다음뮤직’에 밴드 부활에 관한 글을 썼을 때 커버로 쓰인 사진 속 멤버들은 여름에 텐트 하나 들고 계곡으로 놀러온 동네 형들 같았다. 하지만 탈출자들은 품위를 잃지 않았다. 어떤 탈출자는 햇볕을 차단하기에 매우 유용한 우산을 펼쳐 들었다. 열의 흡수에 있어서도 매우 유용한 검은 색 우산이었다. “정오의 해변을 검은 우산을 들고 건너”는 그에게 감동받았다. 더욱 놀라운 인물은 지금까지의 일정은 물론, 앞으로의 모든 일정을 완수해낸 한 여인이다. 게다가 임신 6개월이었다.
‘임산부의 투혼’에 경의를 표하며 숙소 근처의 마을로 접어들 즈음, 탈출자들의 느릿한 움직임을 보다가 저러다 정지해버리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러웠다. 예전에 ‘600만 불의 사나이’라든가 ‘소머즈’ 그리고 ‘헐크’ 같은 초인들이 나오는 1970~80년대의 원조 미드에선 주인공들이 초고속으로 달리거나 괴력을 발휘하는 장면이 ‘따따따따따’ 따위의 효과음과 함께 슬로우 모션으로 처리되었다. 기술적 한계를 연극적 약속으로 대신한 셈이다. 해변의 탈출자들 역시 슬로우 모션 속에 있었지만 마음만은 단숨에 숙소로 달려가 샤워를 하겠다는 초고속의 의지로 충만했다. 이때 ‘따따따따따’ 소리 대신 저 멀리 먹구름 근처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왔다.
며칠 앞서 제주를 지나간 태풍은 열기와 습도만 남겨놓고 떠날 정도로 냉정하지 않았다. ‘육짓것들’은 보기 힘든 구름과 무지개를 감춰두었다가 7월 21일에 공개했다. 세련되게 차려입은 탈출자들은 무지개 아래를 통과하여 제주시 문예회관대극장으로 향했고, GET 라이브의 현장은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로 가득 메워지고 있었다. 이날 무대에 2인의 ‘극한직업’ 종사자를 포함하여 풀 라인업으로 피터팬 컴플렉스가 나타났다. 10년의 경력을 갖게 된 중견밴드의 노련함으로 금세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오르멍드르멍’에서 어쿠스틱으로 들려준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히트송들이 이어졌고, ‘탑밴드’에서 불러 좋은 반응을 얻었다는 ‘몰래한 사랑’에서 볼 수 있듯이 대중적 감각과 유머를 십분 발휘했다. 특히 손짜짱집 주방장을 연상시키는 복장의(농담입니다) 보컬 전지한은 독특한 춤을(그것을 춤이라 할 수 있는지는 별도의 문제로 하고) 선보였으며, ‘첫사랑’부터는 아예 관객들의 군무(역시 그것을 춤이라 할 수 있는지는 별도의 문제로 하고)를 유도해냈다.
들뜬 분위기를 이어가야 하는 부담감 따윈 오하이오에 두고 왔는지 나일론 기타 하나를 대동하고 무대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 양반이 보였다. 일반에겐 생소할지 몰라도 음악 마니아 집단에선 유명인사인 마크 코즐렉(Mark Kozelek)이다. 슬로코어 혹은 새드코어의 전설과도 같은 밴드인 레드 하우스 페인터스(Red House Painters)와 선 킬 문(Sun Kil Moon)을 이끌었던 싱어-송라이터의 연주와 노래는 엄격했다. 동시에 편안했다. 노래하던 중에 나온 기침마저 자연스러울 정도로.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은 몰입하는 만큼 들리는데 마크 코즐렉의 음악은 더욱 그랬다. 그의 프로젝트인 선 킬 문의 이름은 한국의 권투선수인 문성길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선 킬 문의 대곡인 ‘Duk Koo Kim’은 비운의 복서 김득구를 지칭한다. 마크 코즐렉이 김득구가 자신과 동향인 오하이오 출신의 권투선수와의 경기 때문에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만든 곡이다. 그는 공연 중에 이런 이야기를 꺼냈고, 12년 전에 한국을 방문한 일과 자신의 노래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했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이날 ‘Duk Koo Kim’과 ‘Heron Blue’처럼 선 킬 문 시절의 곡들도 들을 수 있었고, 나와 동반자는 그의 라이브에 감명 받았다.
고경천 등과 함께 ‘밴드 강산에’로 등장한 강산에는 존중받아 마땅한 음악인이다. 그는 옛 히트송만 부르지 않는다. 옛 노래에 안주하는 가수들뿐만 아니라 채 마흔도 되지 않았으면서 매번 같은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록 밴드도 있다. 그러나 강산에는 ‘떡 됐슴다’를 비롯하여 EP [Kiss](2011)의 새로운 곡들로 초반을 장악했고, 과거의 히트송도 전과 다른 분위기로 연주했으며, ‘깨어나’처럼 대중적 히트송이 아닌 곡들로도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강산에 음악의 시작점이었던 ‘…라구요’와 어머니에 얽힌 사연을 전하는 대목은 가슴 찡한 순간이었다. 당사자가 아니고선 섬에 살며 바다에 남편을 묻어온 여인들의 마음이나 ‘한마저 식었다’는 어느 실향민 할머니의 마음을 오롯이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머지않은 시기에 마지막 통일부장관의 퇴임을 보고 싶다. 그런 날이 오면 이러저러한 공식음악이 아니라 이 노래면 충분할 것이다. 강산에가 앙코르에 화답한 ‘예럴랄라’까지 2시간 35분 동안 이어진 GET 라이브는 알이 꽉 찬 ‘명태’가 부럽지 않았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탈출자들과 음악인들은 숙소 앞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를 벌였다. 한데 뒤섞여 정치와 사회에 대한 진지한 논쟁과 학술과 음악에 관한 열띤 토론을 벌어진 않았지만, 여기저기에서 음악인과 탈출자 그리고 탈출자와 탈출자 사이에 시끄럽고 화기가 애애한 대화가 이어졌다(물론 마크 코즐렉처럼 과묵해야 했던 사람도 있다). 어떤 테이블에선 여느 예능 프로그램보다 재미있는 개그토크쇼가 이어졌고, 밥상 모서리가 노려보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술에 취하지도 않은 나조차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오간 이야기들 중 하나인 음악평론가 박은석 대표의 응급사태 경험담은 현장에 있었던 웹툰작가 김양수씨에 의하여 최근에 작품화되기도 했다. 또 ‘여자 1호’와 ‘여자 2호’를 둘러싼 애정촌 놀이도 벌어져 한때 커플이 탄생할 뻔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다음날 아침, 사계리 해변에서 식사를 할 때에 이렇게 살가운 인사를 나누었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잘 자… 무셨어요?” 아, 한여름 밤의 짧은 인연이여!
새벽까지 이어진 자리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한 탈출자 행렬은 다음날 한낮, 첫날에 들은 건축 강연의 소재가 된 건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곤 근처에서 음악인들과 뒤섞여 농담을 주고받거나 여기저기를 어슬렁거렸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앉고 만지고 둘러보았다. 경사진 지면 위에 띄워놓은 건물은 통유리로 한라산을 끌어들이는 조망을 가졌고, 거의 모든 재료를 제주에서 조달했다고 한다. 한국의 전통가옥은 풍경과 사물과 건물의 조화를 이루는데, 이러한 새로운 양식 역시 말투는 다를지언정 나름의 조화를 시도하고 있었다. 실제 생활과 생산이 이루어지는 건축물에 관심이 많다. 생활상과 생활패턴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빌딩과 구조물을 보면 당대의 산업을 알 수 있고, 문의 모양이라든지 심지어 우주선을 보면 생명체의 형체를 추측할 수 있다. 둘러본 건물은 별장의 용도였기에 그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전통의 돌담을 벽으로 활용한 외벽이 눈에 들어왔다.
벽체가 담이 된 현대의 거주지는 외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요새 같지만 실상은 수용소에 가깝기도 하다. 그럼에도 층간소음 덕에 사생활은 보호받지 못한다. “아랫집 윗집 사이에 울타리는 있지만, 기쁜 일 슬픈 일 모두 내 일처럼 들리고, 서로서로 참아가며 한집처럼 지내”는 공동주택이 적지 않다. 내밀한 소리까지 공유할 수 있는 아파트는 이웃들이 가까이 살면서도 아주 멀어지게 하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제는 ‘가까운 이웃이 멀리 사는 일가보다 낫다’는 옛말은 말 그대로 옛말이다. 그런데 제주관아의 내삼문과 외삼문을 둘러싼 돌담과 선암사의 돌담이 완전히 다르듯이, 담과 벽이 전혀 다른 의미가 된 곳도 있다. 관광지가 된 곳곳의 ‘○○읍성’ 안에 재현해놓은 옛날 집들은 숙박시설과 음식점이 대부분이지만, 지난해에 계획 없이 걷다가 둘러본 제주 구좌읍 하도리의 별방진은 과거 군사기지였던 성곽 안에 실제로 생활이 이루어지는 마을과 밭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담과 벽이 서로를 갈라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시키고 있었다.
매회 새로운 주제를 택하기로 한 GET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들을 풍성하게 연결시킬지 궁금하다. 가끔 찾는 대신 아예 다른 삶을 추구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정착하고 있는 제주에는 오래된 이야기와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많다. 산맥이 가로막혀 있던 강릉마저 중세까지 독자사회를 형성해왔으니 바다로 떨어져 있는 제주는 오죽했을까. 남태평양에서 저녁식사 데이트의 허락은 여기와 완전히 다른 뜻이며, 아르헨티나에선 외모에 대한 농담에 관대하고, 반면 지중해 국가에선 동성 간에 손을 잡고 다녀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과 같은 문화차이는 늘 흥미롭다. 그 이상으로 제주는 고립된 만큼 보전해온 문화를 지녔고, 동시에 해류와 문화의 관계도 보여준다.
알다시피 제주는 고려 때에 한국사에 편입되었다. 이런 예는 청나라 때에 이르러서야 중국의 일부가 된 대만에도 있다. 오키나와를 포함하는 류큐는 1879년에 일본에 병합되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장기간 미군의 점령 하에 있다가 1972년에 반환되었으니 일본의 일부로 있었던 기간은 무척 짧다. 일본 반환 전에 개별적인 국가로 인식되어 1950년대 말에 국제회의(아세아민족반공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런데 류큐에선 제2차 세계대전 때에 49만의 인구 중 15만 명이 일본군에 의하여 죽었으며, 제주는 4•3항쟁 당시에 3만 명 이상이 죽임을 당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미에 미군이 제주도에도 상륙했다면 더욱 참혹했을 것이다. 더구나 류큐에서도 미군기지뿐만 아니라 자위대 기지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예정지인 요나구니 주민의 의견이 반반으로 갈리며 갈등까지 빚는다고 한다. 이마저도 닮았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묘](1988)에서 밤하늘의 가미카제 전투기들을 보고 어린 아이가 반딧불 같다고 말한다. 슬픈 장면이다. 비슷한 시기의 중국 시골마을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 지앙 웬 감독의 [귀신이 온다](2000)에서 ‘귀신’은 괴한이나 침략군만 지칭하지 않는다. 흐름에 휘말린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하여 어떻게 귀신이 되어버렸는지, 그리고 그 누구든 피해자와 가해자로 만들 수 있음을 증언한다. 방심한 사이에 귀신은 불현듯 다시 찾아올 것이며, 우리 안에서도 다른 이름으로 배회하고 있다. 탈출자들 중 일부는 자유 시간에 강정마을을 찾아갔다.
GET는 더 많은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네 번째 GET는 공연부터 더욱 특별하다. 지난 1년 동안 가장 훌륭한 작품을 발표한 음악인들만 엄선하여 시상하고 축하하는 ‘이매진 어워드’ 페스티벌이 일정에 포함되어 있다. 초호화 라인업의 공연, 벌써부터 부러워진다. 길을 찾아가고 있다기보다는 만들어가고 있는 GET처럼 탈출자들 역시 단기간 체류로 모든 것을 얻을 수는 없다. 사실 너무 알아버려도 곤란하다. 해와 달에 대해 많이 알게 된 지금, 해와 달을 신비를 품고 바라보는 지구인은 전보다 줄었다. 그런데 거대한 신비의 발견이란 바로 실체를 알고 제대로 사랑할 때에 얻어진다. 우리는 자신을 그냥 내버려두고 나와 적절한 거리를 두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나로 하여금 나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가며, 그렇기에 자신의 의미는 다른 데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할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세상을 사랑할 수 있다. 이처럼 자신에게 들어갔다가 되돌아 나오는 문 하나를 소개하는 여정이 GET이길 바란다.
다시 제주공항으로 돌아가는 길, 첫날 특별한(?) 음악으로 탈출자들을 환영해준 버스기사님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작별인사를 했고, 3일 내내 탈출자들의 안내자가 되어준 강성일 박사는 제주의 정감어린 말을 가르쳐주며 안녕을 빌어주었다. 고건혁 대표와 김효정 팀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리를 책임졌다. 짧은 일정이지만 오래 기억될 일정을 함께 한 탈출자들도 웃는 얼굴로 서로에게 인사했다. 마크 코즐렉은 수줍게 손을 흔들었다. 잠시 후 모두가 도착하게 될 곳에서 이틀 전, 우리는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티켓을 나눠 들었고, 인사도 나누지 않은 채 서먹하게 같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탈출이 감행되었고, 아직 하얀 팔다리와 함께 모두의 여행지로 떠났다.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및 장르분과장, '100비트' 편집위원, [결국, 음악]의 저자. 다양한 매체와 기관에서 다각도의 글을 쓰며 다채로운 역할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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