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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ESCAPE TOUR 2012 no.3 리뷰
#1 흠뻑 젖어 행복하게 노래하기

공항에서 우리는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티켓을 나눠 들었고, 정겹게 인사를 나누고는 헤어졌다. 드디어 탈출이 감행되었고, 새카맣게 탄 팔뚝과 함께 각자의 여행지로 되돌아갔다. 2박 3일의 대장정은 이렇게 끝났지만, 저마다의 여행은 그렇게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이틀 전에 김포공항을 떠나 이곳, 제주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영화 [대탈주(The Great Escape)](1963)를 떠올리고 있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주말의 명화’의 오프닝 음악이 바로 이 영화의 테마뮤직이다. 숱한 영화들의 명장면들과 [대탈주]의 음악이 함께 흐를 때마다 괜히 가슴이 벅찼던 밤들을 기억한다. 그 중에서도 [빠삐용]의 한 장면, 그러니까 절벽으로 둘러쳐진 무인도에서 망망대해로 뛰어들어 탈출을 감행하는 순간을 좋아했다. 그런 풍광과 연출이 가능한 곳을 한국에서 찾아보라면 (제주도의 부속 도서인) 마라도가 아닐까 싶다. 실제로 제주도는 유배지이기도 했으니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어느새 제주공항으로 향하는 하늘에서 경건하게 두 손을 모으고 졸음에 겨워 꾸벅꾸벅 합장을 하고 있었다.

세 번째 GET, 나는 왜 거기에 있었나.

기질 상 집단생활을 싫어한다. 학교생활의 극단을 보여주는 체육시간이 싫었고, 교련수업이 싫었고, 소풍도 귀찮았고, 수학여행은 왜 가나 했고, 대학입학식 날엔 집에서 잤고, MT는 피곤했으며, 군대는 정말 싫었고, 예비군훈련도 싫었고, 민방위교육마저 싫었다.(그런데 불행히도 체질은 잘 맞아 일단 하면 FM이고 제복 입으면 ‘태’도 잘 빠졌다. 오죽하면 나중에 장교가 되란 소리까지 들었을까.) 이런 사람이 수십 명의 모르는 사람들과 투어를 떠나다니…. 이런 사람을 불러내다니…. 그럼에도 따라나선 것은 7월 27일부터 29일까지 2박 3일 동안 이어진 이 여행이 다름아닌 ‘Great Escape Tour’(이하 GET)의 세 번째 일정이었기 때문이다. 외국에선 보편화된 생태관광과 음악여행 그리고 지역문화의 융화를 시도한 기획이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이 무엇인가. 휴가철 유명 관광지에서 무엇부터 봐야 할지 두리번거리는 습성은 이 사회에서 자신이 무얼 찾고 있었는지 찾고 있는 모습과 닮았다. 일상에선 어디로 갈지도 모르면서 일단 급히 가야만 한다. 여행지에서도 마치 재난영화의 막바지에 큰 문제가 해결될 때에 꼭 등장하는 상황실의 환호장면 같은 것을 보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만들어지지도 않은 기념품을 사서 돌아온다. 아마 여행자가 지금 살고 있는 도시에 더 가까운 공장에서 만들어진 후에, 더 일찍 배송되어 관광객들의 결제를 기다리며 진열대를 채우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가는 관광지를 찾아 다니며 많은 사람들과 같은 방식으로 굳이 여행을 즐기고 싶다면 방해하지 않겠다. 그만한 재미와 그런 방식이 더 적합한 분들이 계시기도 하니까.

하지만 걸음이 느려지는 곳도 있다. 가장 느린 걸음과 동작을 볼 수 있는 곳을 알고 있다(이번 GET에서도 가장 느린 걸음과 동작을 보게 된다). 간혹 찾는 남양주 봉선사에서 맞은 어느 일요일 오후, 철이 되면 등을 띄우는 ‘연’못 옆길의 풍경을 동반자는 이렇게 표현했다. “이후에 아무런 계획 따위 없다는 듯 세상 가장 느린 발걸음을 보여준다. 짜기라도 한 것처럼 저만치 앞서가는 사람과 그 뒤를 걸어가는 사람이 뒷짐을 지고 걷는다.” 이처럼 이름 없는 여행지에서 마주한 비경에 감탄하는 것과 숨겨진 음악을 찾아내고 감동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 또한 인적 없는 곳에서 부르는 노래의 아름다움은 소중하다. 기억과 생활과 관계, 즉 삶이 사람이요, 노래는 사람의 사랑이고, 그 모두가 하나의 여행이다. 결국엔 목적지에 도착해서 허무함을 토로하는 여행전문가들이 많은 이유도 자신의 바깥에서, 자신이 살아야 하는 사회의 바깥에서 무언가를 찾기 때문일지 모른다. 반대 방향으로 맹렬히 내달리면서 막연히 새로운 삶에 가까워진다고 믿고 있는 세상에서 GET는 색다른 여행과 삶의 방식을 제시한 사례가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향한 곳은 제주도로 이전한 다음(Daum) 본사였다. 그리고 이어진 강연들은 GET가 앞서 말한 바람과 맥을 같이 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제주바람’과 함께 GET을 공동주관하는 ‘제주생태관광’의 고제량 대표이사는 국내 대표적 관광지인 제주도의 주민들도 행복한지에 대해 의문을 던졌다. 관광수익은 대기업과 개발업자가 독식하고 있어 주민들에게 고루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기에 38개나 되는 골프장이 건설되고 있는 현실도 짚었다. 골프장이 어떻게 건설되는지 본 사람이라면, 그리고 어떻게 운영되고 자연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가벼이 넘길 수 없는 문제이다. 음악동네에서도 ‘친환경적인 녹색 페스티벌’ 운운하며 리조트에서 열리는 행사들이 있다. 이제 자제해줬으면 한다. 푸른 잔디가 깔려있고 새소리도 들리는 그 곳, 골프장과 스키장으로 둘러싸인 리조트야말로 대규모 생태파괴와 최악의 참사가 벌어진 현장이며, 바로 그것을 녹색과 백색으로 호도하여 돈을 끌어들이는, 모순된 탐욕의 심장이다. ‘반환경 녹색’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고제량 대표의 이야기는 강정마을에까지 이어졌다.

붕가붕가레코드의 곰사장은 GET의 취지와 연혁을 소개했고,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란 슬로건처럼 GET 역시 음악과 지속성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라고 토로했다. 세 번째 GET의 테마라는 건축에 대한 강연도 이어졌다. 제주 이주민들이 많아지는 추세라 자기만의 집짓기에 대한 관심이 꽤 커지고 있는데, 그에 앞서 건축 자체에 대한 성찰을 요청하는 것으로 들렸다. 다음의 전정환 이사는 본사의 이사가 회사의 즐거운 변화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하고 싶은 질문들이 참 많았고, 제주바람의 대표이자 GET의 기획자인 박은석씨도 탈출자들에게 질문을 요청했다. 그러나 겨우 1시간이 30분 동안 이어진 강연임에도 먼 길 오자마자 의자에 앉아선지, 그리고 점심까지 먹은 직후라선지 체감시간은 130분 정도였다. 질문이 적었던 건 이심전심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하다가 착각이었으리라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수중 산행과 수중 공연 ‘오르멍들으멍’

지난해 늦봄부터 초여름 사이에 청보리로 가득한 제주에 머물며 한적한 곳만을 찾아 다녔다. 구체적인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그냥 동네를 걷다 보니 올레길 1코스였네’식이었다. 그때엔 무와 양파 수확이 한창이었는데, 그 밭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냥 반찬거리로 생각되어선지 무꽃이 얼마나 예쁜지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고 나면 놀라곤 한다. 우아한 도라지꽃의 기품도 마찬가지다. 또한 외지인에게 독특하게 보인 풍경은 밭 중간중간에 있는 무덤들이었다. 자녀들은 부모의 묘 주위에서 농사를 짓고, 그런 모습을 죽은 이들은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시골풍경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은 작년에는 북동부에서 남역을 거쳐 남서부의 모슬포와 마라도까지 여행했고, 이번 GET는 제주 서부권을 중심으로 일정이 짜여 있었다. 그러니 2년에 걸쳐 제주 전역을 종횡하는 셈이었다.

이승악으로 이동하는 버스에선 날씨 때문에 바깥 풍경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516도로와 숲터널을 채우고 있었던 안개는 그 운치를 더해주었다. 3일 동안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이 원산지라는 버스기사님이 우리를 실어 날랐고, 생태해설사 강성일 박사가 탈출자 무리를 이끌었다. 그는 안개로 덮이고 빗물이 흐르는 꼬부랑 도로를 달릴 때 자신의 유일한 교통사고가 이곳에서 발생했다고 말했다. 마침 도로변에 사고로 뒤집힌 차량이 젖은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갔다. 내 손은 안전띠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이어 오름의 의미를 전하다가 이승악 숲 체험에 앞서 사고위험을 강조하고, 간혹 뱀도 나올 수도 있으니 정해진 길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슬슬 공포가 밀려왔다. 그렇다. 강성일 박사는 공포해설사였다.

공포해설사의 친절하고 상세한 생태해설을 들으며 자연의 숨을 들이쉬고, 또 그곳에서 음악과 함께 숨쉬는 ‘오르멍들으멍’이 시작되었다. 생태 트레킹과 음악 버스킹의 만남, 첫날의 하이라이트였다. 비가 와서 수중산행과 수중공연이었던 것은 아니다. 습한 기운으로 가득한 이승악을 걷다보니 탈출자들의 옷도 땀으로 젖었다. 간략한 점심으로 보충한 에너지는 금세 소모되었고, 엄청난 습기는 숲과 숨과 인간을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물’아일체 경험 중인 행렬을 따라가다 보니 ‘사람냄새’가 느껴지기도 했다. 산행을 자주 하는 편이라 기가 다하고 맥이 다할 정도로 가파른 오르막과 싸우다 보면 몸이 다리 위에 실린 이삿짐처럼 느껴진다는 것을 잘 안다. 앞서 가는 이들의 머리 위에 말풍선들이 환영처럼 보였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그러나 사실 숲길은 그다지 가파르지 않았고, 탈출자 모두가 꿋꿋하게 이겨냈다. 이면우 시인의 작품 ‘그림자 콘돌’을 빌면 “정오의 사막을 우산도 없이 건너”는 사람들보다야 훨씬 낫지 않는가.

사실 줄지어가는 산행에 몰두하면 앞사람의 뒤꿈치만 보게 된다. 그래서 선두그룹에서 후미그룹으로 슬쩍 쳐져 경치와 공기를 만끽했다. 소매물도의 동백나무 숲길처럼 아기자기한 모습 대신 장엄한 숲길이 펼쳐졌다. 많은 이들이 서울이 있는 한반도 중부에 거주하다 보니 동백나무와 탱자나무 그리고 사철나무처럼 남방계 식물을 자주 보기 힘들다. 이승악의 오름은 남방계 식물들로 이루어진 숲이었고, 아직 보지도 못한 봄과 가을의 풍경마저 무척 아름다우리란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길이었다. 나는 대자연에 예의를 차라기 위해, 그리고 떡이 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자주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했다.

이제는 좀 쉬어가자고 조르는 허벅지를 외면하고 정상에 당도한 탈출자들은 둘레에 동백나무가 자라는 정자에 앉아 수중생물이 된 자신들의 몸을 말렸다. 그리고 잠시 후, 2인조 편성의 피터팬 컴플렉스가 최성원의 곡인 ‘제주도 푸른 밤’으로 그들을 맞아주었다. 피터팬 컴플렉스도 거기까지 걸어 올랐다니 GET의 ‘오르멍들으멍’에 참가하는 음악인들은 일종의 ‘극한직업’ 종사자들이 아닐까 내심 반가웠다. ‘나비보호색’과 ‘첫사랑’이 이어졌고, 산새들은 회의를 거쳐 이 침입자들을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인지 코러스를 노래에 보태주었다. 이제야 GET가 시작되었다는 기분이 들었고, 정상의 공기 중에는 또 다른 말풍선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진지한 곡들과 보컬 전지한의 박수유도가 교차하던 중에도 ‘너는 나에게’가 흠뻑 젖은 이들의 눈동자마저 적실 기세였다. 산에 올라 숨죽이며 들어야 하는, 그러니까 자연 속에서 듣는 도시의 사랑노래 같은 노래들이었지만, 탈출자들의 얼굴은 흡족해 보였다. 특히 ‘자꾸만 눈이 마주쳐’를 모두가 합창할 때에 더더욱. 음악이란 이래서 신기하다. 에너지를 쏟아내는데도 원기를 얻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저녁 7시 30분경에 하산하여 차에 올랐을 때엔 이미 밤이 제주를 뒤덮고 있었다. 한림으로 이동하여 거하게 회를 먹으며 서먹함을 푸는 자리를 둘러보니 세 번째 GET에는 학생과 직장인 등 다양한 직업의 소유자들이 있었고, 테헤란로와 홍콩, 국립현대미술관과 신문사처럼 근무하는 곳과 경력도 다채로웠다. 1회와 2회와는 달리 남녀 성비의 격차도 완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적과 인종까지 하나가 아니었다. 이 놀라운 탈출자 무리에 섞여 육지에선 흔치 않은 갈치회와 고등어회에 만족하고 나니 슬슬 다시 합장을 시작해야만 했다. 첫날을 다섯 글자로 줄이면 ‘고난의 행군’이겠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2편에서 계속됩니다)

100비트 | 나도원 (웹진 '백비트' 편집인)

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및 장르분과장, '100비트' 편집위원, [결국, 음악]의 저자. 다양한 매체와 기관에서 다각도의 글을 쓰며 다채로운 역할을 맡고 있다.

http://100be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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