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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긴 음악, 아주 깊은 감동

이 소중한 작품에 관한 글을 10년 만에 다시 쓸 수 있어 감사하다. 그때 느꼈던 감흥에 전혀 변화가 없다는 사실에도 감사한다. 이 주인공들은 어떻게 가사를 써야 하고 어떻게 노래해야 하며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스트링과 악기들을 활용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어떻게 곡을 써야 하고, 그 곡들로 어떻게 앨범을 구성해야 하는지도 안다. 그동안 이들을 대화의 소재로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그다지 늘지 않은 실태에 때로는 의문을 품었고 때로는 체념했다.
요즘 같은 시절에 숨겨진 걸작은 (시장의 기준으론) 실패작의 듣기 좋은 모욕일 뿐이다.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의 문제이다. 북유럽 록의 전위가 1990년대 중반에 맹활약했다면, 거기에서 성장한 아티스트들이 다양한 장르와 역사의 융화를 꾀하여 성숙기에 다다른 시점이 2000년대 초반이다. (애석하게도 이 무렵부터 한국에선 소수 마니아 집단 밖으로 이러한 동향과 성과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이 최고점에 내리 꽂힌 작품이 그린 카네이션(Green Carnation)의 [Light of Day, Day of Darkness](2001)이다.

앨범명
2집 Light Of Day, Day Of Darkness
아티스트 및 발매일
Green Carnation | 2002.01.08
타이틀곡
Light of Day, Day of Darkness
앨범설명

노르웨이의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 그린 카네이션(Green Carnation)의 두 번째 정규 앨범으로, 60분 6초로 이루어진 동명 타이틀곡 'Light of Day, Day of Darkness' 한 트랙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사, 작곡, 편곡을 모두 밴드를 만든 Terje Vik S..

이야기는 1990년, 노르웨이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래의 천재들(10대 소년들)이 모인 그린 카네이션은 주요 구성원들 중 쵸르트(Tchort) 등이 떠나자 두 형제(X-Botteri, Cristopher Botteri)가 남았고, 그들이 새로이 꾸린 밴드가 바로 북유럽 록 음악의 전설이 될 인 더 우즈(In The Woods)이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보테리 형제의 인 더 우즈와 쵸르트가 참여한 엠페러(Emperor), 사티리콘(Satyricon), 카퍼씨언 포레스트(Carpathian Forest), 블러드 레드 쓰론(Blood Red Throne) 등은 진지하고 극단적인 1990년대의 언더그라운드 음악사를 써내려갔다. 각자의 길을 걷던 이들이 1998년에 다시 만나 그린 카네이션의 이름으로 피운 꽃이 [Journey to The End of The Night](2000)인데, 10년 동안의 우여곡절 끝에 데뷔작을 발표해놓고 이내 보테리 형제가 보따리를 싸면서 그린 카네이션은 쵸르트 중심으로 재편된다. [Light of Day, Day of Darkness]는 이러한 과정 끝에 탄생한다.

러닝타임이 60분 08초인 이 앨범의 트랙은 단 하나이다. 즉, 한 시간에 달하는 하나의 곡이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전혀 놀랍지 않게도 이와 비슷한 시도는 무척 많다. 그러나 솔직해지자. 장시간 내내 귀에서 떨어지지 않고, 한번 듣기 위하여 마음을 다잡을 필요 따윈 없으며, 그냥 내버려두어도 가슴을 절로 적시는 작품은 많지 않다. 굳이 단일 트랙으로 실어야 했을까 싶게 파트의 구분이 명확한 앨범이나 무드의 고저는 있으되 고조되는 맛은 부족한 곡들도 있다. 이건 아니다 싶으면서도 그대로 밀고나가는 뚝심을 발휘할 때엔 졸음에 겨워 꾸벅꾸벅 합장하며 답례하는 수밖에 없다. ‘Light of Day, Day of Darkness’는 다르다.
시종 유려할 뿐만 아니라 몰아치고 쉬어가는 시점이 적절하여 지칠 이유가 없다. 모던한 둠(doom)을 기조로 현악과 코러스, 오르간과 색소폰 그리고 스캣을 적절히 동원하면서 다양한 감정을 고양시킨다. 이 근간을 완벽한 편곡과 구성이 떠받치고 있다.

1 Light of Day, Day of Darkne.. Green Carnation 듣기 가사 보기 앨범 보기 뮤직비디오 보기 재생목록에 담기 MP3 BGM

물론 구성요소들이 획기적이진 않다. 완전히 새롭고 독자적인 창조의 높은 가치야 두말할 나위 없지만 좋은 것을 취하여 좋은 것으로 만드는 노력 또한 값지다. 바하 역시 하슬러(Hans Leo Hassler)와 프레토리우스(Michael Praetorius) 그리고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와 같은 선배들의 멜로디를 차용하여 발전시켰고, 구노(Charles Francois Gounod)는 그 바하의 곡을 이용하여 ‘아베 마리아’를 만든 사실까지 고려하면, 음악의 정원은 포기 나눔과 접붙임으로 가꾸어진다. ‘Light of Day, Day of Darkness’는 여러 스펙트럼을 투사하여 얻은 색채로 테크니컬한 것과 프로그레시브한 것의 차이를 보여주며, 격랑과 포말, 찰나와 영원, 소멸과 환희가 함께 흐르도록 했다. 젊은 날에 ‘최악의 범죄’를 저지른 쵸르트가 시간이 흐른 후 자신이 아버지이게 했던 어린 딸을 잃은 슬픔과 다시 아들을 얻는 위로를 경험한 개인사를 떠올릴 때 극단의 인생과 극단의 음악이 다다른 극단의 성숙이었다.

이 곡(앨범)은 20세기 록의 총화이자 21세기 새벽을 장식한 명작이다. 그린 카네이션은 수십 년의 터울을 뛰어넘어 하드 록과 프로그레시브 록 그리고 재즈와 익스트림 메탈을 회고하면서도 현재 속에 융화시킨 [Blessing In Disguise](2003), 그리고 사유하는 어쿠스틱 록의 진수인 [The Acoustic Verses](2005)를 잇따라 발표한다. 자칫 공허해지기 쉬운, 다양한 시대와 장르의 포용을 위태롭지 않게, 편안하고 차분하게 소화하여 불러들였고, 매번 수작을 발표하며 아름답기 그지없는 라이브를 펼쳤다.
그린 카네이션이야말로 특정 장르의 이름 안에 가둬지기엔 아까운 아티스트들이다. 출신성분 때문에 열외로 둔다면 ‘요한 수난곡’이나 ‘마태 수난곡’을 요한과 마태의 수난을 다룬 음악으로 알고 넘어가버리는 꼴이다. 지나친 지지가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맞다. 상찬에 필요한 모든 단어들을 동원하여 기꺼이 같은 글을 다시 쓸 준비가 되어 있다.

100비트 | 나도원 (웹진 '백비트' 편집인)

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및 장르분과장, '100비트' 편집위원, [결국, 음악]의 저자. 다양한 매체와 기관에서 다각도의 글을 쓰며 다채로운 역할을 맡고 있다.

http://100be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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