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스텝을 가미해 싱글로 따로 발매했던, 그러니까 앨범의 부록 격인 ‘The DJ Is Mine'을 제외한다면 앨범은 대체로 흑인음악의 향을 풍긴다. 다시 정확히 말하자면 앨범은 ‘팝과 결합해 빌보드에서 유행을 선도했던 흑인음악’ 유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앨범이 레퍼런스로 삼았을 것이라 추정하는 음악들이 실은 이미 ‘철 지난’ 어떤 것들이라는 점이다.
물론 철이 지났다고 해서 그 음악의 가치가 폄하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철이 지났다는 것은 분명한 팩트이기도 하다. 즉 영미 음악권의 유행에 늘 강박적일만큼 빠르고 민감하게 반응해온 국내 가요시장에서 이 앨범이 드러내는 ‘느림’은 음악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다소 뜬금없다는 인상을 안긴다.
‘Tell Me'나 ‘Nobody'의 복고가 ‘의도’였다면 ‘Like This'는 의도치 않은 결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여러 이유를 추정해볼 수 있고 실제로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원더걸스가 한창 미국에 진출할 당시 미국에서 활동하려고 박진영이 써놓은 곡이 아니었을까 따위의 상상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어떠한 이유와 맥락이 있었든 비욘세(Beyonce)의 2006년작 ‘Get Me Bodied'와 2008년작 ‘Single Ladies' 등을 연상하게 하는 ‘Like This'는 유행을 선도하는 인기 걸 그룹이 2012년 여름에 들고 나올 노래로는 어색해 보인다.
‘Hey Boy'를 비롯한 나머지 수록곡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비욘세를 언급했으니 이왕 또 관련지어 말하자면 이 곡들은 마치 비욘세의 데뷔 앨범이 발매되던 시절, 혹은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가 한창 활동하던 시절의 사운드와 감수성을 보는 것 같다. 이러한 비유가 정교하지 않다거나 부당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도 이 곡들이 최신 조류와 긴밀히 반응하는 쪽보다는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쪽에 가깝다는 점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흑인음악 애호가를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이 앨범은 확실히 반가운 작품이다. 취향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지난 앨범에 이어 완성도 역시 나쁘지 않다. 특히 ‘Stupid Hoe'를 비롯한 니키 미나즈(Nicki Minaj)의 몇몇 싱글과 프로듀서 방글라데시(Bangladesh) 등으로 상징되는 최신의 힙합 사운드를 참조해 변용한 듯한 ‘R.E.A.L’은, 혜림과 유빈에게 힙합 역사를 통틀어 가장 강력한 ‘랩빨’을 지닌 여성 래퍼로 기록될 니키 미나즈 수준의 랩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꽤 근사하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드는 건 앞서 말했듯 앨범의 이러한 모양새가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보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시기’에 ‘이러한 음악’을 ‘국내’에서 발표한 것이 원더걸스 멤버들의, 박진영의, JYP의 계획된 의도였을지는 잘 모르겠다. 미국진출의 (부정적인) ‘나비효과’라고 말한다면 억측일까.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보게 된다고들 하지만 그 후로 무언가 꼬여버린 느낌, 비단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대중음악평론가이자 문화기획자.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흑인음악을 정체성으로 여기고 90년대 맑은 가요에 관심이 많다. 저서로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 [힙합, 우리시대의 클래식]이 있고, 역서로 [제이지 스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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