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2월 21일 경춘선 복선전철 개통. 20년 넘게 지속돼 온 ‘춘천 가는 기차’의 이미지는 그렇게 자취를 감추었다. 상봉역이 아니라 청량리역 시계탑 아래 모여 인원 점검을 하고 둘씩 마주 보고 앉아 수다를 떨며 춘천으로 향했던 대학생 무리들은 순식간에 머나먼 과거가 됐다. 2012년 2월 28일 ITX 청춘이 개통되며 출발역 청량리와 옛 좌석 형태를 되살려놓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 열차는 준고속열차로 홍보되고 2층 기차로 홍보된다. 비둘기호, 통일호, 무궁화호라는 말이 서로 어울리던 시절 혹은 기차 출입문에 매달려 위험천만하면서도 낭만적이었던 여정을 치러냈던 시절은 이제 끝이 났다.
김현철이 묘사한 “차창 가득 뽀얗게 서린 입김”은 냉난방이 완전하지 못했던 그때의 기차, 유난히 덜커덩거렸던 것으로 몸이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승차감을 상기시킨다. 수도권 교통망 확충, 지역 사회 균형 발전, 최첨단의 안전한 철도 시스템, 이런 말들은 ‘춘천 가는 기차’와 어울리지 못한다. 불완전하고 덜커덩거리고 느렸던 그때의 경춘선을 김현철은 자신의 동요하는 마음, 청춘 내면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것으로 그려냈다. 충동적으로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올라탄 기차는 봄날의 옛사랑을 떠올리게 하고 현재의 “초라한 내 모습만” 자꾸 보게 만든다. 결국 그 기차는 “저녁 때 돌아오는 내 취한 모습”을 상상케 만든다.
곡은 이토록 쓸쓸한 모습을 아름답게 치장해놓는다. 차분하고 예쁜 플룻의 선율, 미약하게 밑을 받치는 보사노바 리듬, 맑디 맑은 키보드의 음들이 그렇고, 무엇보다 슬픈 듯 졸린 듯 아픈 듯 상념에 잠긴 듯 이어지는 김현철의 여린 목소리가 그렇다. 이 노래는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스무 살 청춘이 지닌 심상의 한 측면을 대변하는 노래가 되어갔다. 이것은 비단 80년대 후반 이후에만 적용되지 않았다.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 김영호가 70년대 후반에 지녔던 모습까지도,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간 과거의 청춘들까지도 포섭하는 노래가 되었다. 기차를 타고 차창 밖을 물끄러미 내다보며 교외로 향하는 일은 수십 년 간 젊은이들이 대물림 했던 감성의 공간이었다. 그 일은 아직까지 남아있는 예스런 노선들에서 계속되고 있다.
‘춘천 가는 기차’뿐만이 아니라 김현철이 1989년에 발표한 1집의 노래들은 모두 신선하고 산뜻하고 아름답고 세밀했다. 그저 들뜬 기분, 설명할 수 없는 그 기분을 묘사하는데 주력하는 ‘오랜만에’와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한 인상을 두서 없이 풀어낸 ‘동네’는 일찍이 그 누구도 들려준 적 없는 종류의 음악이었다. 퓨전 재즈에 팝의 감각을 입힌 GRP(Grusin-Rosen Productions) 사운드를 좋아한 김현철은 키보드 연주에 천부적 재능을 보였고, 그것을 스무 살 즈음 지녔던 예리한 감수성과 혼합하여 곡을 만들어냈다.
가수이자 작곡가, 프로듀서 등 다양한 활동으로 하고 있는 김현철의 역사적인 데뷔 앨범으로, 1989년 동아기획에서 발매되었다. 아직까지도 낭만과 추억과 함께 김현철 최고의 곡으로 손꼽히고 있는 '춘천가는 기차'를 비롯하여, 곡의 첫 곡 '오랜..
어떤날, 시인과 촌장의 노래들에 매료됐던 그는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그들을 찾았고 그는 곧장 발탁된 터였다. 그는 음악 신에 등장하자마자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이미 준비된 뮤지션이었다. 1989년 5월 발매된 박학기 1집에 ‘이미 그댄’과 ‘계절은 이렇게 내리네’를 수록했고, 3개월 뒤 자신의 데뷔 앨범을 발표했으며, 다시 3개월 뒤엔 장필순 1집에 ‘어느새’와 ‘점점 더’를 수록했다. 그는 이미 유능한 프로듀서였고 디렉터였으며 동아기획의 기둥이었다. 이로써 그는 1988년의 오석준, 1987년의 유재하와 맞먹는 재능과 감성의 소유자로 인정받았고, 1980년대의 마지막 해에 등장했음에도 1980년대 후반 포크-팝 계열 언더그라운드의 모든 것을 구현한 인물로 인식되었다.
천재 키보디스트로 불렸던 김현철은 1990년대에 들어서도 건재했다. 교통사고의 공백을 마치고 돌아온,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했던 1992년에 두 번째 앨범 [32℃ 여름]을 발표했고 조동익, 함춘호, 손진태와 프로젝트 그룹 야샤(Yasha)를 결성하여 퓨전 연주 앨범을 발표했다. 또 1993년 벽두에는 영화 [그대 안의 블루]의 음악 감독을 맡아 한층 재즈 연주에 경도된 사운드트랙 음반을 발표했다. 이 세 가지의 연속된 작업물 속에서 그는 ‘춘천 가는 기차’의 감성을 은은하게 계승하며 차가운 전자 사운드(‘그런대로’), 멜로디컬한 퓨전 사운드(‘시드니의 겨울’), 호소력 짙은 발라드(‘그대 안의 블루’)를 두루 누비며 넘치는 재능을 과시했다.
그는 한편으로 1980년대 동아기획의 유산을 간직하고 한편으로는 윤상, 정석원, 신해철, 유영석 등의 신세대 뮤지션들과 교류하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폭풍 속에서도 자기 색을 뚜렷이 발휘했다. 장혜진의 [Before The Party]를 프로듀싱한 1994년과 이소라의 솔로 데뷔 앨범을 프로듀싱한 1995년에 이르기까지 그는 여전히 천재적이었고 가요계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춘천 가는 기차’는 그때도 변함 없이 덜커덩거리며 달리고 있었다.
타이틀이 거창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원자폭탄으로 도시 하나를 순식간에 박살내버리거나 멀쩡한 강바닥을 파내서 생태계를 초토화시키는 정도쯤이나 되야 세상을 바꿨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설득할 생각은 없다. 다만, 노래가 세상을 바꾸는 방식은 투표의 작동원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한 장의 투표권이 공동의 지향과 만남으로써 세상을 (좋게든 나쁘게든) 바꾸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하나의 노래는 대중의 정서와 호응함으로써 한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규정하는 이정표로 우뚝 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바꾼 노래'들을 주목했다. 당초 19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전체를 아우르는 기획으로 준비했으나,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의 제약으로 여기서는 1970년 이후 발표된 노래들을 시대순으로 소개하기로 했다는 점도 밝혀둔다. 더불어, 여기에 미처 소개하지 못하는 노래들은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을 것이라는 약속도 함께 드린다.
몇몇 직장과 각종 알바와 잡일을 하며 보낸 10년 동안 꾸준히 음악에 관한 글도 써온 두 딸내미의 아빠. 청소년 대중음악 입문서 <주머니 속의 대중음악>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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