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에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그 나라만의 정서가 있다. 그리고 그 고유한 정서는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나라의 언어를 통해 가장 잘 전달될 수 있다. 음악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다. 음악 자체가 만국공통의 언어라지만, 노랫말을 통해 감지되는 특정한 느낌이란 게 분명 존재한다(이탈리아의 칸초네와 포르투갈의 파두, 프랑스의 샹송을 떠올려보자). 그런데 전통적 장르 말고 팝 (Pop)이나 록 (Rock) 같은 동시대의 음악에, 이를테면 영어 외의 언어가 얹혀진다면 어떨까?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출신 나라를 불문하고 영어로 노래하는 요즘의 추세를 보면 흥미로운 화두가 아닌가?
해외음악을 즐겨 듣는 이들이라면 이 같은 질문에 곧바로 스웨덴의 켄트(Kent)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켄트는 북유럽의 스산하고 차가운 감성을 스웨덴어 -노랫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에 버무려 훌륭히 구현해낸 좋은 사례다. 허나 여기서는 스웨덴어보다 훨씬 더 보편성을 띠는 언어이면서도 유독 음악 쪽에서 접하기 힘든 말이 돼버린 프랑스어로 노래하는 밴드와 그들의 대표작에 대해 얘기하고자 한다. 바로 파비앙 뒤보(드럼), 플로리앙 뒤보(기타) 형제와 니콜라 샤사뉴(기타), 베누아 포에(리드보컬/베이스)로 이뤄진 4인조 그룹 쿄(Kyo)와 그들의 두 번째 앨범 [Le Chemin]에 대한 얘기다.
Benoît Poher(보컬), Florian Dubos(기타, 백킹보컬), Nicolas Chassagne(기타), Fabien Dubos(드럼)으로 이루어진 프랑스의 팝락 밴드 Kyo가 2003년 발표한 두 번째 정규 앨범으로,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엄청난 성공을 가져온 앨범이다. 이 ..
비디오게임 ‘킹 오브 파이터(King of Fighter)’의 캐릭터에서 이름을 딴 쿄(Kyo)는 디페시 모드(Depeche Mode)와 비비맥(BBMak)이 만났다는 평가처럼, 일렉트로닉 요소가 가미된 사운드를 들려준다. 그리고 팀 이름에 걸맞게 오리지널 비디오 애니메이션(OVA) '스트레이트 재킷(Strait Jacket)'의 두 번째 에피소드 마지막에 두 번째 앨범의 타이틀 'Le Chemin'이 사용됐고, 세 번째 앨범 [300 Lesions]의 첫 곡 'Contact'는 비디오게임 ‘FIFA 06’의 사운드트랙에 수록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같은 단편적 사실만으로 쿄의 음악을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에만 어울리는 것으로 섣불리 예단해선 안 된다.
네덜란드 출신의 여성 싱어 송라이터 시타(Sita)와 듀엣으로 부른 첫 트랙 'Le Chemin'은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의 'Ava Adore'가 연상되는 도입부가 인상적이며, 일렉트로닉 요소가 적절하게 가미돼 곡의 풍미를 더한다. 리사 로엡(Lisa Loeb)의 'Stay'가 생각나는 'Je Cours'는 제법 거친 기타 리프를 통해 앞선 트랙보다 직선적인 사운드를 들려주고, 무반주 상태에서 시작되는 보컬 도입부가 무척이나 인상적인 'Derniere Danse'에선 본격적으로 서정성을 과시하기 시작한다. 'Tout Envoyer en l'Air'은 거칠기보다는 발랄한 느낌이 물씬 나고, 'Je Te Vends Mon Ame'는 밝으면서도 서정미를 풍길 수 있음을 보여준다.
'Chaque Seconde'는 옥타브를 오가며 같은 선율을 계속 반복하는 기타, 그리고 부담스럽지 않은 가성으로 들려주는 보컬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산술적인 완급조절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구성이지만 부분부분의 변주를 듣는 재미가 쏠쏠한 'Comment Te Dire'는 앨범 중반부에 적잖은 무게를 제공한다. 'Pardonne'는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음악을 소재로 하는 웃음거리로 딱 좋은 제목이지만, 앨범을 통틀어 최고의 서정성을 보여준다. 도입부의 기타, 샹송의 정서가 묻어나는 보컬의 선율, 아련한 느낌을 더해주는 이펙터 사운드까지 삼박자가 어우러진 곡이다.
드라마틱하면서도 기승전결의 구성을 완벽하게 갖춘 'Je Saigne Encore'와 상승적인 분위기를 띠면서 곡 말미에 소나기처럼 퍼부으면서도 과시적이지 않은 드럼이 멋진 'Sur Nos Levres', 전형적인 마지막 트랙의 분위기와 함께 비장미까지 느껴지는 'Tout Reste A Faire'까지 한 곡도 빼놓아선 결코 안될 만큼 멜로디의 완성도가 모두 평균 이상이다. 음반을 다 재생하고 나면, 보컬을 비롯해 어느 악기도 과시하는 면모를 보이지 않으면서 서로를 품어가는 '톨레랑스'의 미덕이 쿄만의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실상 프랑스에는 훌륭한 음악을 들려주는 아티스트들이 무척이나 많다. 아방가르드적인 에어(Air)와 국적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밝은 음악을 하는 타히티80 (Tahiti 80), 재기 발랄한 저스티스 (Justice), 실험적인 사운드를 자랑하는 M83 등 여러 팀들이 대중들과 평단으로부터 균형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음악 조류상 쿄가 이들에 비해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어로 부른다는 사실 때문에 이들을 주목했음을 시인한다.
피아프(Edith Piaf)와 이브 몽땅(Yves Montand)의 히트곡 메들리를 통해 만난 낭만적이고 사색적인 느낌의 프랑스어와 추억의 노래인 조르디(Jordy)의 'Dur Dur D'etre Bebe'에서 감지됐던 앙증맞고 귀여운 어감에 이어 쿄를 통해 프랑스어의 또 다른 매력을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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