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그만 음악지 하나를 구상하고, 창간을 준비하는 중이다. 그러면서 예전부터 우리 주위에 있던 음악지들이 많이 떠올랐다. 앞선 문장에 과거형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현재 내가 손으로 페이지를 넘겨가며 볼 수 있는 종이 잡지들이 거의 남지 않았다는 것을. 떠오른 참에 연대기 순으로 우리 주변의 음악지들을 살펴보기로 했다. 물론 더욱 많은 음악지들이 있었지만, 그나마 이름이 많이 알려졌고, 또 마니아들에게 영향을 많이 줬던 잡지들을 주로 다뤘다. 이 외에도 재즈나 다른 분야를 다루는 잡지들이 있긴 하지만, 이번에는 록과 팝이라는 범위로 한정지었다.
국내에 등장한 최초의 팝 음악 잡지는 ‘팝스 코리아나’였다. 조용호, 이해성, 서병후가 함께 만든 출판사에서 발간해 1967년에 창간되었다. 국내에 본격적으로 영미권의 팝음악을 소개했던 잡지로, 잡지를 통한 토론의 장이 펼쳐지는 등 국내 팝 음악의 저변 확대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후 ‘가요생활(뮤직 라이프)’라는 잡지가 창간되었고, 편집장은 이문세(가수 이문세와는 동명이인)였다. ‘가요생활’이 국내의 음악계에 기여한 바도 크지만, 일본식의 번역어투가 많았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가요생활 이외에 악보와 국내의 음악인들에 대한 가십들을 본격적으로 다룬 잡지는 ‘대중가요’였다. 우리 가요에 대한 체계적인 정리와 자료가 전무한 지금 ‘대중가요’는 당시의 국내 음악상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팝 음악이든 가요이건 간에 한 가지만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잡지들은 시대적인 상황 때문인지 그 생명력이 길지 않았다. 전축은커녕 라디오의 보급도 변변치 않을 무렵,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외국의 팝 음악이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곡 이외에 ‘클럽’이나 ‘음악싸롱’에서나 흘러나왔을 법한 노래의 소개는 말 그대로 ‘남의 나라 이야기’밖에는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생명력이 짧았던 몇몇 잡지들에서 다루던 팝송 이야기나, 가수들의 가십 이야기는 1960년대 말에 연이어 창간했던 ‘선데이 서울’ ‘주간 한국’ ‘주간 경향’, 그리고 ‘일간 스포츠’ 등의 버라이어티한 책자나 신문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 했다.
지금까지도 그 이름을 알고 있는 팝 마니아들이 많은 것을 보면 ‘월간팝송’은 정말 대단한 잡지다. 초창기 비록 번역 위주의 기사들이 많았지만, 팝 음악의 전도사로서 ‘월간팝송’의 업적은 우리의 상상 그 이상이다. ‘월간팝송’은 1971년 11월에 창간되었다. 앞서 소개했던 ‘가요생활’의 이문세가 창간한 잡지로, 초대 편집장은 나영욱이었다. 이후 편집장으로 부임했던 선성원, 전영혁 등의 편집장들은 이후에도 국내의 팝 음악 신에서 맹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초기 ‘월간팝송’은 기사의 양에 비해서 악보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았지만, 점차 악보는 줄어들고 기사들이 그 자리를 메우게 된다. ‘월간팝송’은 1987년 2월에 폐간했다. 창간 15주년 기념호가 나온 지 3개월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2월호의 마지막 페이지인 편집후기에는 온통 침울한 분위기의 글들이 메워졌고, 이후 ‘월간가요’로 거듭났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에 이르는 시기는 DJ의 김기덕과 김광한의 시대였다. 특히 서로 라이벌 관계에 있던 두 DJ는 보다 적극적인 방송 홍보 전략으로 매주 발행되는 무가의 음악정보 책자를 만들었다. 김기덕의 ‘2시의 데이트’에서 발행한 책자는 ‘Pop PM 2:00’였고, 김광한의 ‘팝스 다이얼’에서 발행한 책자는 ‘POKO’였다. ‘Pop PM 2:00’는 두시에 방송하는 프로그램의 시간에서 착안된 이름이고, ‘POKO’는 ‘Pops Korea’의 준말이다. 각각의 책자에는 그 주에 있었던 팝계의 단신들과 프로그램의 신청곡 순위, 악보, DJ의 칼럼에서 오디오에 대한 정보까지 한마디로 ‘월간팝송’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기사들을 담고 있었다. 무가지였던 관계로 배포가 다 되기 이전에 책을 챙기기 위해서 발행되는 날짜를 맞춰서 배부처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던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예전부터 그 이름을 날리던 박원웅과 이종환의 프로그램에서도 무가의 정보지가 발행되었다. 박원웅의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책자의 이름은 ‘팝스 팝스’에서 ‘FM 텐’으로 한차례 이름이 바뀌기도 했다.
1984년 8월에 창간된 ‘음악세계’는 1960년대 최초의 팝 매거진 ‘팝스 코리아나’를 탄생시켰던 서병후가 발행인이었다. 중앙일보에서 발간한 ‘음악세계’가 ‘월간팝송’과 차별화된 부분은 과감한 컬러 페이지의 도입, 책의 반 정도의 기사를 가요에 할애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후발주자였던 ‘음악세계’가 ‘월간 팝송’을 가장 크게 위협했던 것은 ‘빌보드’와의 특약이었다. 그때까지 아무런 계약 없이 빌보드 차트를 무단으로 전재했던 ‘월간 팝송’은 ‘음악세계’가 독점계약을 하는 바람에 그 이전에 사용한 비용까지가 고스란히 청구되었다는 씁쓸한 뒷이야기를 남기고, 이후의 책에서는 지명도가 한 단계 낮은 ‘캐시박스’의 차트를 연재하기도 했다. ‘음악세계’의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본력에 밀린 ‘월간팝송’은 다시 지금의 잡지 사이즈인 국배판으로 그 판형을 바꾼 뒤 오래되지 않아 폐간하게 되었다. 하지만 ‘음악세계’ 역시도 경쟁자이자 파트너를 잃어버린 후 ‘뮤직 씨티’로 개명하며 잡지의 성격을 선회했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폐간하게 된다.
전문화의 틀을 갖추고, ‘Magazine For Musicianship Training’이라는 취지에 걸맞게 악기에 대한 정보, 미디강좌 같은 새로운 시도들을 단행했다. 비록 외지에 실린 기사들의 전재기사가 많긴 했지만, 그때까지 국내에서는 접하기 힘들었던 색다른 기사들이 흥미를 모았고, 국내의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에 대해서도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내부의 문제로 ‘뮤직랜드’는 두 개의 잡지로 쪼개지는 위기를 맞게 된다. 기존의 편집진들이 모두 이탈을 하게 되었고, 남은 ‘뮤직랜드’는 새로운 편집진들과 말 그대로의 ‘Magazine For Musicianship Training’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고, 이탈한 편집진들은 또 하나의 새로운 음악 전문지 ‘핫뮤직’을 창간하게 된다.
앞서 살펴본 대로 ‘뮤직랜드’에서 이탈한 편집진(편집장 성우진)이 창간한 ‘핫뮤직’이 처음 나온 것은 1991년 11월호다. 해외에서는 록이 다시 중흥기를 맞고 있었지만, 국내에는 변변한 음악지 하나도 없던 시절 ‘핫뮤직’의 존재는 대단한 것이었다.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는 록 뮤지션의 소개와 병행해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록의 흐름과 명반을 일목요연하게 짚어주는 ‘핫뮤직’은 말 그대로 ‘록 음악의 교과서’나 다름이 없었다. 또 성문영, 한경석, 김훈, 김봉환, 성시권 등 이후 국내 평론계에서 큰 활약을 하게 되는 인물들을 양산한 사관학교와도 같은 잡지였다. 국내 음악지 가운데 가장 장수를 누린 잡지였지만 2008년 5월호 이후 긴 휴간에 돌입했다.
‘뮤직피플’은 예전 ‘하모니 음악 연구회’를 이끌던 하세민이 만든 잡지였다. 당시까지 보기 힘들었던 중철 제본으로 등장한 잡지였고, 초기에는 많은 기사들이 있었지만 이후 화보중심의 잡지로 바뀌면서 그 힘을 잃어버리게 되고, 음반의 소식을 전하는 ‘주간 음악 정보’, ‘컬렉터’ 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그 생명만을 유지해 나가게 된다.
KBS-TV에서 방영하던 ‘지구촌 영상음악’은 그때까지 많이 접할 수 없었던, 뮤지션들의 비디오 클립이나 실황공연 장면을 영상으로 보여주며 팝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았던 프로그램이었다. 방송 ‘지구촌 영상음악’에서 만든 잡지가 바로 ‘GMV’이다. ‘GMV’는 1993년 10월에 창간되었다. 마이클 잭슨을 포지인물로 내세운 창간호가 의미하듯이 본격적인 팝 음악 전문지가 탄생한 것이었다. 방송의 특성을 십분 살려서 초기 ‘GMV’에는 팝스타들의 뮤직 비디오 클립이 부록으로 제공되었다. 역시 방송을 통해 만들어진 동호회와 각 지역의 통신원들이 책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페이지가 많았고, 그때까지 없었던 ‘팝’에 대해 ‘특화’함으로 해서 많은 마니아들을 탄생시키기도 했다. 2005년 폐간.
‘월드 팝스’는 1996년 6월에 창간되었다. ‘핫뮤직’의 초대 편집장이었던 성우진이 편집장을 맡았던 책으로, 팝과 록을 골고루 다뤘던 잡지다. 하지만 잡지의 성격이나 방향성이 뚜렷하지 못했다는 단점을 안고 있었다. 부록으로 카세트테이프나 브로마이드 등의 당근을 가지고 있었지만, 기존 음악지들의 아성을 누르지 못하고, 오래가지 않아 폐간되었다.
1997년 3월 창간된 ‘락킷’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록을 표방한 록 전문지다. 앞서 ‘월드 팝스’의 편집장 성우진과, 1980년대 ‘코리아 헤비메틀 클럽’의 장현희, 이후엔 고종석이 편집장을 담당했다. 때마침 활발히 이루어지던 국내의 록 공연에 대한 기사 비중이 높았고, 무가지로 발행하던 ‘Guitar Net’을 흡수하면서 본격적인 록 전문지의 모습을 갖춰갔지만, 소리 소문 없이 폐간되어 버린 책.
역시 록 전문지를 표방한 ‘록커스’는 1997년 10월에 창간되었다. 박은석을 편집장으로 한 ‘록커스’도 마찬가지로 락을 다루기는 했지만, 잡지만의 뚜렷한 색깔이 없어서 롱런을 하지 못했던 경우이다. 기존의 음악판에 대해서 관심은 있었지만, 준비는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가 사라진 그만그만한 음악지들 가운데 가장 큰 족적을 남겼던 음악지는 ‘서브’다. ‘핫뮤직’ 출신인 성문영이 편집장을 맡았고, 국내에서는 당시까지 홀대받던 장르였던 브릿팝에 대한 애정으로 수많은 지지층을 얻어냈던 음악지. 1998년 1월에 창간했고, 브릿팝과 더불어 국내에 조금씩 불기 시작한 홍대를 중심으로 한 국내의 인디 신에 대해서 가장 체계적으로 다루었던 잡지였다. 부록으로 끼워주던 CD에 국내의 인디 뮤지션들의 데모 음원들을 수록하며, 많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을 수면 위로 올려놓았던 의도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다만 편집장이 박준흠으로 바뀌면서 국내 뮤지션의 비중이 수준 이상으로 높아져 오히려 외면을 받았던 잡지로 그 후 오래지 않아 역시 폐간의 운명을 맞았다.
아직도 국내 뮤지션들만을 다루는 전문지는 어려운 현실인 듯 보인다. 본격적으로 국내의 뮤지션 이야기를 다뤘던 ‘데뷔’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CD부록에도 불구하고 1995년 창간호를 포함한 3권을 책을 내고 폐간했다. 쌈지에서 1998년에 창간한 ‘Da’는 초창기 국내의 음악만을 인터뷰 형식으로 다루는 음악지였지만, 이후 ‘Beat’라는 얼터너티브 전문지로 선회한 이후 그 수명을 다했고, 국내의 인디씬만을 다루던 무가지 ‘인디즈(Indiz)’역시도 소리 소문 없이 생겼다가 없어진 경우이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또 하나의 영향력 있는 팝 전문지가 탄생했다. ‘GMV’의 원용민이 편집장을 맡은 ‘오이뮤직’이 그것이다. 기본적으로는 팝음악을 전문적으로 다루면서, 록에 대해서는 ‘Q’와의 특약을 통한 기사의 다양화를 꾀했다. 인터넷 쇼핑몰과의 연계 등 언제나 발 빠르게 움직이는 음악지로, ‘오이 스트리트’로 변모하며 전면적인 수술을 단행하기도 했지만 그 후 오래가지 못하고 폐간한다.
이 외에 2004년에 창간한 무가지 ‘프라우드’는 2008년 유가지로 전환되었다가 얼마 가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서브’의 박준흠이 편집장으로 있는 ‘대중음악 사운드’는 잡지라기 보다는 무크지에 가깝고, 전반적인 문화의 일부분이 아니라 팝/록을 다루는 잡지는 무가지인 ‘핫트랙스’ 밖에는 남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대전에서 방송 게스트, 외부 기고 등 소극적으로 해왔던 음악활동. 2004년 KTX가 처음 개통한 날 부터 서울에 있는 핫뮤직에 출퇴근을 하며 정식으로 직업이 되었다. 때문에 현재 휴간 중이긴 하지만 '핫뮤..
http:// 100beat.com인디음악, 공연, 뮤직 페스티벌이야기와 함께 초대이벤트 소식을 받아보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