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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는 걷히고

그래미 트로피도 많이 챙기고, 앨범도 많이 팔았다. 사생활이나 실언 때문에 음악과 무관한 지면에서 자주 다뤄진 유명인이기도 하다. 외모도 훌륭하고, 목소리나 작곡 실력도 괜찮고, 그가 에릭 클랩튼, 로버트 클레이, 쟈니 윈터 등이 올라가는 무대 위에 섞여서 기타를 연주해도 상대적으로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이는 뛰어난 기타리스트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데뷔 앨범을 내고 강산이 한 번 바뀌는 동안 “이것이 존 메이어다”라고 말할 만한 대표작이 없었다는 것도 인정해야 할 사실이다.

존 메이어가 페스티벌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말했다. “아니, 저렇게 기타를 잘 연주하는 사람이었다고?” 이 땅에서 공연을 안 했기 때문이거나 잘 알려진 곡들이 어쿠스틱 기반의 곡들이라 그 어떤 사람들에겐 분명 과소평가된 부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연장에 가거나 DVD를 찾아 볼 것도 없이 스티브 조단, 피노 팔라디노랑 함께 한 트리오 라이브 앨범만 들어봐도 된다. 이 젊은 기타리스트가 로큰롤이나 블루스를 연주하는 걸 듣다 보면 그의 몇 십년 선배들이 갖고 있는 노련함이 그에게 있으며, 특히 리듬에 있어선 그의 세대엔 이만한 인물이 없겠다 싶을 정도로 탁월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커다란 장점은 앨범을 만드는 데 두드러진 역할을 해오진 않았다. 왜냐하면 주로 팝음악에 기반한 두 장의 정규 앨범들을 만들어 왔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트리오 라이브 앨범을 녹음한 이후에 나온 세 번째 정규작 [Continuum] 무렵부터는 분명히 변화하고 있었다. 블루스와 로큰롤에 자주 등장하는 코드 진행이 흔해지기 시작했고, 기타 솔로도 전보다 늘어났다. 연이어 지미 헨드릭스의 곡을 커버하기도 했었다. “세상이 바뀌길 기다리는” 타이틀 곡의 가사에는 전에 얘기하지 않던 정치적인 주제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Battle Studies]에 와서 다시 상황이 복잡해졌다. [Continuum] 이전에 즐겨 만들던 어쿠스틱한 팝음악이나 성인 취향의 팝/록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Born And Raised]가 도착했다. 예상치 못했던 분위기가 흐른다. 제임스 테일러 풍의 노래 ‘Queen Of California’로 앨범이 시작된다. 이 곡에서는 닐 영의 앨범 [After The Gold Rush]와 조니 미첼의 [Blue]가 동시에 언급되는데, 정서적으로든 음악적으로든 그가 최근에 지향하고 있는 바, 즉 앨범의 전반적인 방향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두번째 곡 ‘Age Of Worry’에 가면 좀 더 익숙한 존 메이어가 등장하는데, 외형은 변해도 그가 여전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카우보이 모자를 쓰더라도 존 메이어는 존 메이어인 것이다. 요컨대 그는 여전히 자신의 스타일로 크로스오버를 한다. 이 싱어 송라이터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은 팝이며 그 위에 블루스와 록큰롤, 그리고 AOR 등을 안고 오다가 이제 컨트리와 포크와 같은 미국적인 사운드의 품으로 가는 것이다.

앨범명
5집 Born And Raised
아티스트 및 발매일
John Mayer | 2012.05.22
타이틀곡
Something Like Olivia
앨범설명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래미가 사랑하는 아티스트, 보석처럼 빛나는 이 시대의 싱어 송라이터, 존 메이어 총 7회의 그래미 수상, 전세계 2천만장의 앨범 판매고에 빛나는 아티스트!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한 전작 이후 3년만에..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정의하면서 동시에 무엇을 놓아주고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식의 독백을 들려주는 ‘Shadow Days’의 심리상태는 왜 그가 좀 더 정적인 형식을 띤 이런 음악을 만들어 내고 싶어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단서다. 데이비드 크로스비와 그라함 내쉬가 백보컬로 참여한 타이틀 곡에서도 내적 성장에 관한 얘기는 계속된다. 의식적으로 존 메이어는 자신의 삶과 음악을 차분한 방식으로 되돌아 보고자 했던 것 같다. 앨범에 담긴 음악적 재료들은 제법 다양하다. 컨트리나 포크 앨범이라고들 하지만 ‘Love Is A Verb’나 ‘A Face To Call’은 기존의 존 메이어 곡들과 크게 다르지 않고, 크리스 보티의 인트로로 시작하는 앨범에서 드물게 제3자를 얘기하는 ‘Walt Grace’s Submarine Test, January 1967’에는 군악대를 연상시키는 리듬 패턴이 있다. 포크와 컨트리, 즉 ‘아메리카나’의 영향력이 앨범 전체를 감싸고 있을 뿐, 그가 완전히 변화한 것도 그렇다고 큰 보폭으로 진화한 것도 아니다.

존 메이어가 당분간 투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쩌면 이 앨범의 수록곡은 라이브에서 자주 들을 기회가 많지 않을 지도 모른다. 사실, 이번 앨범이 존 메이어의 미래를 제시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어쩌면 그의 디스코그래피 가운데서 하나의 과도기적 앨범으로 남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존 메이어가 지금껏 발표한 그 어떤 앨범보다 전체적인 정서와 형식이 가장 잘 맞아 떨어지는 작품이기에 적어도 그가 발표한 괜찮은 앨범 중의 하나로 남을 것이다. 관습적인 표현이 되겠지만 앨범 내내 물 흐르듯 흘러가는 이 자연스러움은 간혹 중간에 맥이 끊기곤 했던 과거의 정규 앨범들에서는 만나기 어려웠던 장점이며 그 어떤 때보다 담담하고 진솔한 가사는 앨범을 오랫동안 들을 수 있게 만드는 요소다. 행여나 존 메이어의 음악이 자꾸 변화한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도 없을 듯 하다. 그가 존경하는 에릭 클랩튼도, 이 앨범을 들으며 자주 떠올리게 되는 닐 영 같은 인물도 늘 일관된 음악적 행보를 보인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에 따르면, 이제 겨우 그림자가 걷혔을 뿐이다. 이 앨범은 하나의 작품으로써 분명한 색상을 지니고 있으며, 존 메이어는 여전히 젊다.

100비트 | 김영혁 (음악 칼럼리스트)

음악이라는 나름 한 우물을 팠지만 이것 저것 가리지 않고 다 듣다 보니 여전히 공부할 것이 많은 애호가 겸 음악에 관련된 이런 저런 기획도 하고 글도 쓰는 프리랜서

www.twitter.com/johnfunny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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