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금 록 명반 리스트 작성을 위한 설문에 응할 때마다 최상위권에 반드시 적어 내는 앨범이 있다. 그리고 이 앨범 안에 록 명곡 리스트 작성을 위한 설문에 응할 때마다 최상위권에 꼭 적어 내는 곡이 있다. 한국 헤비메탈 1세대의 기념작인 [Rock In Korea](1989)와 ‘The Same Old Story’이다.
임재범, 손무현, 김종서, 김도균, 강기영, 오태호...과거와 현재 한국 Rock씬을 이끌고 있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탄생시킨 기념비적인 음반.Rock In Korea! 꺼져가는 불씨를 살린! 록맨들의 열정 어린 화합 만감이 교차되고..
‘한국의 록’은 이만치 다가왔다 싶으면 저만치 멀어지는 섬과 같았다. 1980년대 중반에 점화된 하드 록 혹은 헤비메탈의 열기는 1980년대 후반에 서울은 물론이고 인천과 부산 등지에서 두각을 드러낸 새로운 밴드들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대표급 선수들의 연이은 활동 중단과 현실의 한계로 말미암아 불안한 전성기에 이르러 있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비롯된 프로젝트 옴니버스 앨범은 선뜻 정규앨범을 발표하기엔 부담이 따르고 싱글과 EP는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1988년에 블랙 신드롬, 크라티아, 아발란쉬, 철장미 등을 시작으로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을 발굴해간 ‘프라이데이 애프터눈(Friday Afternoon) 시리즈’와 나름의 입지를 굳힌 1세대 음악인들의 [Rock In Korea]가 대표적이다. 이 방식은 블랙 홀, 블랙 신드롬, 백두산, 스트레인저의 [Power Together](1993)를 거쳐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시도된다. 이 중에서도 [Rock In Korea]는 참여 음악인들의 면모와 음악의 완성도 그리고 역사적 가치로 인하여 매우 중요한 자리에 놓여 있다.
임재범-김종서-김성헌 등의 보컬리스트들, 그리고 기타연주자이며 작곡가인 김도균과 손무현-오태호뿐만 아니라 손경호-이중산-강기영-김민기처럼 당대 최강의 록 음악인들이 이 앨범을 위해 모였다. 소속 밴드들을 열거하면 시나위, 백두산, H2O, 외인부대, 사랑과 평화, 공중전화, 카리스마, 어린왕자 등을 망라하고 있으니 가히 ‘국대급’이다. 그에 걸맞게 시나위 등에서 활동한 김성헌의 보컬과 강기영의 음악성이 빚은 ‘멈추지 않는 강’과 ‘허상’, 그리고 훗날 이승환과 만나 대중가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게 되는 오태호와 홍성민의 ‘기억날 그날이 와도’처럼 수록된 곡들 중 상당수가 지금의 기준으로도 뛰어났다. 주제가랄 수 있는 ‘Rock In Korea’의 전통은 [Power Together]의 ‘내 곁에 네 아픔이’(주상균 작사-작곡)처럼 한국 헤비메탈 역사의 인상적인 순간이자 감동어린 송가에까지 이어졌다. (이 앨범은 후에 라이브 효과음을 입히는 수법이 유행하자 약간의 손질과 트랙 교체를 거쳐 [Rock In Korea Ⅱ : Live Remix]라는 이상한 앨범으로 다시 나온다.)
그런데 여기에서 단 한 곡을 고른다면? 너무 쉬운 질문이다. 어쩌면 하드 록과 헤비메탈의 1차 부흥기인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전반까지 발표된 록 음악들 중에서 하나만 고르라고 더 어렵게 되물어도 답은 같을지 모른다. 20대 청년 임재범의 절창과 김도균의 기타 명연이 최상의 협연을 이룬 ‘The Same Old Story’가 그것이다. 강기영과 미국인 연주자들의 밴드인 마쥬르카 멤버들이 다른 파트를 맡은 ‘The Same Old Story’는 3단 구성을 통하여 서정 보컬-기타가 점층 폭발하는 안정된 구조를 뛰어난 가창과 연주가 완성시켜놓은 명곡이다. 한국의 1세대 하드 록/헤비메탈이 음악적 정점에 남긴 기록인 것이다. 또한 김도균과 임재범 체제를 중심으로 한 밴드, 아시아나의 탄생에 대한 예고이기도 했다.
‘한국의 록’이 흐르는 물속에 자리를 잡고 우뚝 솟아오른 섬이 되는 대신 드문드문 떨어진 군도(群島)에 가까워진 것처럼 록 음악인들은 징검다리를 건너다니듯이 자주 거처를 옮기면서 원치 않게 긴 프로필을 가질 수밖에 없는 길을 걸어왔다. [Rock In Korea]에 함께 이름을 올린 음악인들 대부분이 그래야 했고, 임재범과 김도균도 마찬가지였다. 세대의 교체와 스타일의 전환이 이루어질 무렵에 임재범은 홀연히 솔로가수로 대중 앞에 등장했고, 더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는 어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스타로 등극하기도 했다. 다양한 음악의 실험과 밴드 활동을 꾸준히 이어간 김도균 역시 공교롭게도 또 다른 TV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으로 출연하게 되었다. 보기에 따라선 그들이 우리 대중음악의 단면들마다 등장하며 증인이 되어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절정의 순간을 기억한다. 이미 ‘The Same Old Story’의 연주와 노래는 하드 록과 헤비메탈에서 최고일 뿐만 아니라 모든 장르에서도 최고였다. 또한 이 곡은 시간이 흘러 또 하나의 징검다리를 놓으려는 이들에게 물길을 알려주는 부표가 되었다. 그래서 결국, 1989년 당시에 고등학교를 다니던 학생이 그 때에 즐겨 듣고 가사까지 외워 불렀던 곡에 대한 글을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이다.
타이틀이 거창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원자폭탄으로 도시 하나를 순식간에 박살내버리거나 멀쩡한 강바닥을 파내서 생태계를 초토화시키는 정도쯤이나 되야 세상을 바꿨다고 얘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설득할 생각은 없다. 다만, 노래가 세상을 바꾸는 방식은 투표의 작동원리와 비슷하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한 장의 투표권이 공동의 지향과 만남으로써 세상을 (좋게든 나쁘게든) 바꾸는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하나의 노래는 대중의 정서와 호응함으로써 한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규정하는 이정표로 우뚝 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바꾼 노래'들을 주목했다. 당초 1900년대 초반부터 시작하여 20세기 전체를 아우르는 기획으로 준비했으나,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의 제약으로 여기서는 1970년 이후 발표된 노래들을 시대순으로 소개하기로 했다는 점도 밝혀둔다. 더불어, 여기에 미처 소개하지 못하는 노래들은 언젠가 다른 방식으로 독자 여러분을 찾을 것이라는 약속도 함께 드린다.
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및 장르분과장, '100비트' 편집위원, [결국, 음악]의 저자. 다양한 매체와 기관에서 다각도의 글을 쓰며 다채로운 역할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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