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는 자연과 음악을 핵심으로 하는 여행 프로그램이다. 2박 3일간 두 번의 공연, 세 번의 생태 체험을 핵심으로 한다. 그리고 중간중간 강연 및 식사 시간을 갖는다. 매 끼니는 물론 야식까지 꼬박꼬박 다 챙겨먹는 데다 제주 명물 성게알국과 고등어 백반부터 가로수길 스타일의 이탈리안 스파게티까지 메뉴도 다양하다. 숨가쁜 일정인 것 같지만 여백도 많다. 그 여백은 작은 군것질로, 성찬과 같은 음식으로, 흥건한 술로, 그러다 어느덧 서로의 취향과 고민을 나누는 풍성한 대화로 채워진다. 짧은 나날 동안 순식간에 쌓여버린 이 풍요로운 기억과 추억 앞에서 기록의 의무와 씨름해야 하는 나는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고민 끝에 첫 회는 생태 위주의 잔잔한 여행으로, 두 번째는 공연과 친목의 역동적인 여행으로 가닥을 잡았다.
앞서 말했던 대로 투어팀 남녀 성비는 2:12, 게다가 두 명의 남자는 이벤트 당첨자. 주최측 곰사장의 ‘너그러운’ 통계가 말하기를 투어팀의 평균연령은 29세, 모두 미혼, 그리고 주먹구구식 취재에 따르면 거의 모두 애인 없는 상태. 그런 청춘남녀가 찾아간 곳은 사방으로 산과 바다가 펼쳐진 자연, 그리고 산자락을 끼고 있는 리조트. 따라서 [짝]을 찍을 만한 최적의 조건이었으나 그럴싸한 예능이 되지는 못했다. 여자는 무려 12호까지 대기하고 있지만 남자는 고작 2호가 끝이니 뭘 제대로 하겠나. 뭘 꼭 노리고 찾아온 건 아니라 해도 남녀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은 아름답고 바람직한 그림인데, 진짜 너무하는 비율이다. 꽃밭에 던져진 두 남자는 자주 당혹스럽다. 취향과 관심사를 따라 뭔가 즐기러 오면 여자가 너무 많고, 또래 친구들이 같이 즐겼으면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여행이나 문화 생활에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게다가 지금은 ‘디아블로3’ 시즌이다.
하지만 심각한 여초라고 겁먹을 필요는 없다. 공유할 만한 분야와 경험이 있는 젊은 친구들의 친화력은 어린날의 소꿉장난과 크게 다르지 않을 만큼 끈끈하고 사랑스럽다. 금세 말이 짧아지고 여기저기서 언니 소리가 나온다. “저는 서른두 살로, 대한민국 문화산업을 책임지는 기둥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저는 붕가붕가 소속 가수들에게 아낌없이 현금을 쓰고 있는 아무개라고 합니다.” “직장인 스트레스는 공연으로 풀 수밖에 없어요.” “다음 주 월디페 가시나요?” “그런데 바이 바이 배드맨 단독 공연은 언제 하는 건가요!” “직장 동료가 가까워지기 참 어려운데, 음악 좋아하고 공연 가는 거 서로 알게 되니까 금방 친구가 되더라고요.” “GET, 이거 다 좋은데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어요. 직딩은 금요일 휴가 쓰기 너무 어려워요.” “저도 샀어요. 엇 님도? 그럼 지산에서 또 보겠네!” 대화가 이런 식으로 풀리니 친구먹는 건 순식간이다. 그러므로 이런저런 문화상품을 구상하는 이들은 20대 후반, 30대 초반의 여심을 제대로 읽어야 할 것이다.
첫날도 둘쨋날도 많이 걸었다. 평지도 있었지만 등산화가 절실한 가파른 산길도 만났다. 평소 운동량 적은 도시인이 그렇게 걸으면 현기증이 온다. 올레를 걷는 동안 쉬었다 가자고 말하는 사람, 말없이 그냥 멈춰서는 것으로 대대적인 휴식을 유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따 있을 공연에서 온몸을 불태워야 하는데 벌써부터 좀비가 되면 어쩌나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첫날엔 온몸 구석구석이 아팠다. 하지만 둘쨋날이 되니 운동이 몸을 풀어준다고 느끼게 된다. 더군다나 도시랑 공기의 수준이 다르니 그리 많이 걸어도 피로가 덜한 것 같다. 한편 제주 소주 한라산은 처음처럼이나 참이슬보다 더 독한 술인데, 더 많이 먹어도 안 취하는 신비로운 효과가 있다. 전혀 검증되지 않은 위험한 과학이지만 일반체력뿐 아니라 술체력까지도 맑은 공기를 따라 움직이는 모양이다. 아울러 작은 팁 하나. 제주 출신 곰사장은 한라산을 주문할 때 늘 덧붙인다. “미지근한 걸로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거 장난이 아니다. 그렇게 먹으니까 정말 쑥쑥 들어간다.
GET 프로그램에는 매일 밤마다 ‘야식’이 있다. 족발, 치킨, 목살, 말고기 육회, 광어회 등등 다양한 메뉴가 쏟아지긴 하지만 야식은 무슨 야식, 씹기 전에 마셔버리는 시간이다. 애초부터 분량조절에 실패했는지 음식은 넘쳐나고, 술이 음식을 이겼는지 여기저기서 캔 따고 병 따는 소리가 끊임이 없다. 바이 바이 배드맨, 델리 스파이스, 눈뜨고 코베인까지 공연차 여행에 동행한 뮤지션들과 출신상(?) 약간의 거리감은 있지만, 적당한 술은 모두를 너그럽게 하고 조심스럽게나마 어울리게 한다. 델리 김민규를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한 누군가 휴대폰으로 ‘챠우챠우’를 틀어놓자 모두가 따라부르기 시작한다. 예고치 않게 자신의 노래를 만나면 기분이 어떨까. 쑥스럽긴 해도 실은 좋지 않을까. 시크한 김민규는 “아니요”라 대답한다. 오 뮤지션다워! 먼저 지친 김민규가 자리를 뜰 때까지 우리들은 짓궂은 배웅의 의미로 그의 노래를 끝까지 불렀다. 본인이 안 좋아해도 어쩔 수 없다. ‘챠우챠우’는 세상이 변함없이 사랑하는 노래다.
걷고 먹고 적당히 휴식 취한 다음 제주대 아라홀로 이동했다. 첫 번째 GET 공연을 만나러 가는 길이 걱정스럽다. GET가 장기화되려면 도시의 패키지 여행객도 많아야 하지만 지역사회의 지속적인 홍보와 지지도 따라야 한다. 서울 홍대입구가 아니고서야 밴드 공연에 많은 관객을 부를 수 있는 지역이 흔치 않은 것이 사실이고, 제주라고 해서 크게 다를 건 없다. 이래저래 도민 대상의 특별한 행사가 많은 곳이라 유료관객을 기대하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역시 또 절망으로 시작했지만 또 의외의 반응을 확인하고 작은 희망을 봤다. 기획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성취감이란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렵게 준비하면서 바닥을 생각했다가도 대책없이 헛된 기대를 품기도 하지만, 막상 펼쳐놓으면 진짜 극으로 치닫지는 않는다. 우리의 공연도 그랬다. 뮤지션은 평소 기량대로 공연 잘하고, 절반 정도의 관객은 뜨겁게 열광하고, 체력과 취향의 차이로 절반 정도의 관객은 관망하는 듯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마무리되는 가장 보통의 공연.
바이 바이 배드맨은 강렬한 소리와 역동적인 퍼포먼스로 청중을 빨아들였다가 던져놓는다. 눈뜨고 코베인은 능청맞은 입담을 곁들여 귀여운 안무를 가르쳐주면서 참여형 공연을 연출한다. 델리 스파이스는 익숙한 노래로 소통한다. “요새는 신곡 위주로 공연하지만 오늘은 그렇게 안 짰어요”라며 공연의 문을 열었던 델리는 후반 무렵 ‘뚜빠뚜빠띠’ ‘슬픔이여 안녕’ ‘별빛 속에’를 해치우고는 말했다. “빠른 노래 연달아 하면 힘들어요. 하지만 정면승부로 갑니다. 피하는 공 없습니다. 이제 강속구 나갑니다!” ‘달려라 자전거’로 뜨거운 공연을 마감한 후 앵콜곡이 흘러나왔다. 당연히 ‘챠우챠우’였다. 하루 종일 걸어 많이 지쳐 있었을 투어팀은 피로도 잊고 품위도 잊은 채 맨 앞자리 좌석을 맡아 뮤지션 이상으로 달리고 날았다. 그렇게 바람잡이 역할을 완수한 자랑스러운 투어팀은 ‘챠우챠우’ 앞에서도 여전히 뜨겁게 반응했지만, 속으로는 깊은 생각에 잠겼을 것이다. ‘챠우챠우’는 그런 곡이다. 딱히 노래에 얽힌 드라마틱한 개인사가 없다 해도, 짧은 가사와 힘의 연주로 예나 지금이나 숱한 이들의 마음을 괜히 찡하게 만든다.
공연도 여행도 다 끝났다. 일과로 돌아와야 하지만 다들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즐기러 온 게 아니라 노동하러 왔던 다섯 명의 자원봉사자들 또한 한마음이다. 모두 제주도 출신이자 제주대학교 재학생으로, 학교 게시판에서 응모 관련 글을 보고 참여하게 됐다. 그들은 여행객과 다양한 대화를 나눈다. “놀러온 사람들은 고등어구이 하나 먹고 감탄하죠. 좀 이상해요. 우린 매일 아침 밥상에서 먹는 게 그건데.” “산도 가끔 봐야 아름다운 걸 알지 우린 무덤덤해요.” “은행에서 일하거나 공무원이 되지 않는 한 보통 육지로 나가요. 근데 서울 집값은 너무 비싸요(ㅠㅠ).” 귀여운 자원봉사자 친구들에게는 미래 말고 또 다른 고민이 하나 생겼다. 다음 달에도 신청하고 싶은데 하필이면 시험기간과 겹쳐서 울상이다. 진심이냐고 묻고 싶었다. 공연 진행부터 시작해 밥먹고 치우는 일까지 모든 잡일을 다 해결한 친구들이다. 술판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바람에 잠도 제대로 못잤다. 그 고생을 하고도 또 신청할 생각을 한다니, 예쁘고 기특하고 고맙고 미안해 죽겠다.
여행은 사람을 남긴다. 모두가 값진 인연을 얻었다. 진행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주최측이 미처 짐작하지 못했던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여행이 끝난 후 모든 인연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글과 사진을 푸는 것은 기본이고, 솜씨가 뛰어난 사람들은 여행의 풍경을 화폭에 담기도 한다. 모두가 고맙다. 함께 보낸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다녀와서도 성의를 다해 오래오래 기억하겠다는, 그리고 모두가 알차게 참여한 여행이라는 의미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 동영상과 함께 투어팀이 직접 찍은 사진을 함께 싣기로 했다. 이들을 ‘위대한 여행객’이라 말하는 곰사장도 바쁘다. 돌아와서도 변함없는 출석본능으로, 모두에게 돌아갈 특별한 선물 몇 가지를 준비하고 있어서다. 그게 뭔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믿고 싶어진다. 6월의 GET을 기다리는 사람들. 궁금하면 참여하기 있기 없기. 이로써 내 임무는 끝났고, 다음 달에는 다른 동료에게 기록의 바통을 넘겨야 한다. 섬을 떠나기 힘들었던 것처럼 건네기가 참 힘들다.
취미이자 직업으로 음악을 듣고 있다. 그리고 취미이자 직업으로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취미일 때 즐겁지만 직업일 때 고민되는 건 몇 년째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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