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로 인해 클래식을 들었고 형들에게서 팝을 전수받았지만 내 스스로 음악을 찾아듣기 시작한 지점은 뉴웨이브 시대와 맞닿아 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나마 찾아 듣게 된 것도 팝을 좋아하던 한 친구를 만났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친구는 컬처 클럽(Culture Club)과 바나나라마(Bananarama)를 좋아했고 개인적인 음악 차트를 만들었으며 라디오 방송국에 엽서를 보내던, 아주 실천력이 강했던 아이였다. 당시 나는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문워크(moonwalk)에 경도되어 그 아이의 음악적 성향에 크게 동조하진 않았지만 덕분에 라디오에 엽서를 보내기 시작했으며 음반도 본격적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그 애가 좋아한 컬처 클럽은 당시 듀란 듀란(Duran Duran)과 함께 국내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영국 그룹으로 지금의 아이돌 그룹처럼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하고 있었다. 듀란 듀란과 라이벌로 종종 라디오의 특집방송에 소재가 되었던 팀이기도 했다. 특히 이 둘은 유리드믹스(Eurythmics), 왬(Wham) 등과 함께 미국 차트에서 맹위를 떨쳤고 그로 인해 팝 음악사에서 제2의 영국 침공(2nd British Invasion, 1984년 4월 미국 차트의 100곡 중 40곡이 영국가수가 발표한 곡이었고 1985년 5월에는 10위 안의 8곡이 영국가수 곡이었다)을 주도한 팀들 중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컬처 클럽은 그룹 바우 와우 와우(Bow Wow Wow)에서 종종 노래를 부르던 보이 조지(Boy George)와 베이스를 치는 마이키 크레이크(Mikey Craig), 드러머 존 모스(Jon Moss), 기타리스트 로이 해이(Roy Hay)가 만든 그룹이다. 데모테이프를 통해 버진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은 이들은 1982년 [Kissing To Be Clever]를 내놓고 세 번째 싱글인 ‘Do You Really Want To Hurt Me?’가 영국을 비롯한 10여 국에서 1위를 차지하고 미국에서 2위까지 오르는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다. 이어 ‘Time’을 다시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 ‘I Tumble 4 Ya’를 9위에 올림으로써 비틀즈(The Beatles) 이후 최초로 미국에서 데뷔 앨범에서 3곡을 10위 안에 진입시키는 그룹이 되었다. 이 앨범으로 이들은 1984년 그래미 최우수 신인상을 받는다.
무엇보다도 보이 조지의 여장이 화제가 되었다. 그는 유리드믹스의 애니 레녹스(Annie Lennox)가 선호하는 남성복장과 더불어 성적인 편견에 도전하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이것과 관련해 플로라이다(Flo-Rida)의 ‘Right Round’ 샘플링 곡 ‘You Spin Me'를 부른 그룹으로 유명한 데드 오어 얼라이브(Dead Or Alive)의 싱어인 피트 범스(Pete Bums)는 자신이 먼저 화장을 짙게 하고 챙이 큰 모자를 썼으므로 오리지널리티가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지만 보이 조지는 “누가 먼저 했나보다 누가 더 잘 했나가 중요하다”고 말함으로써 원조 논쟁을 일축했다.
Boy George – vocals Mikey Craig – bass guitar Roy Hay – guitar, piano, keyboards, sitar, electric sitar Julian Stewart Lindsay – piano Jon Moss – percussion, drums Additional musicians Judd La..
이들은 1983년에 발표한 [Colour By Numbers]로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스타로 자리를 굳힌다. 미국에서 ‘Church Of The Poison Mind’, ‘Karma Chameleon’, ‘Miss Me Blind’로 다시 세 곡을 탑 텐에 올렸으며 이중 아직까지도 이들의 대표곡으로 각인되어 있는 ‘Karma Chameleon’으로 미국 차트를 3주간 지배한다. 카멜레온처럼 변신하며 연인에게 밥 먹듯이 거짓말하는 바람둥이를 꼬집은 이 곡은 영국에서만 140만장이 팔려 그 해 최고로 많이 팔린 싱글로 기록되었으며 16개국에서 1위에 올랐고 아직까지도 1980년대를 통틀어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의 수위를 다툰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곡들 외에도 미국에서 13위까지 오른 ‘It's a Miracle’, 영국차트에서 3위까지 오른 ‘Victims’와 ‘Storm Keeper’ 등이 인기를 끌었다. 이 앨범은 미국 앨범 차트를 37주간 장악했던 마이클 잭슨의 [Thriller]에 밀려 2위까지 밖에 오르지 못했지만 캐나다에서는 최초로 천만 장 이상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미국에선 4백만 장, 영국에선 2백만 장 이상이 팔렸다.
이들은 뉴 웨이브의 한복판에서 밴드임에도 불구하고 신디사이저로 효과를 극대화하던 다른 팀들과 하나로 묶였지만, 그들은 미국의 알앤비를 받아들이고 거기에 다양한 장르를 섞은 절충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레게 친화적인 경향을 보였던 당시의 영국 가수들 중의 한 팀으로도 분류되기도 한다. 이런 경향에 일조했던 가수들로는 샤데이(Sade), 빌리 오션(Billy Ocean), 유리드믹스(Eurythmics), 왬(Wham), 심플리 레드(Simply Red), 에브리싱 벗 더 걸(Everything But The Girl)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들을 브리시티 소울(British Soul)이라고 부른다.
‘Black Money’나 ‘Changing Every Day’를 부르는 허스키한 보이 조지의 목소리는 당시 뉴웨이브를 풍미하던 깔끔한 목소리의 가수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특히 ‘That's The Way’같은 곡은 지금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애용되는 R&B곡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런 그룹의 색깔은 백 보컬을 맡았던 헬렌 테리(Helen Terry)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앨범 후 이들은 무리한 공연, 그로 인한 부실한 앨범 작업, 보이 조지의 약물 중독, 보이 조지와 드러머 존 모스의 염문으로 점점 좌초하고 만다. 세 번째 앨범인 [Waking Up House On Fire]는 ‘The War Song(#17)’이 미적지근한 히트를 기록한 것으로 막을 내리고, 밴드에이드(Band Aid) 참여 후 발표한 [From Luxury To Heartache] 역시 전작들에 비해 초라한 성적표를 받음으로써 해체의 수순을 밟는다.
아직까지도 약물 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이는 보이 조지는 1987년 솔로 앨범 [Sold]에 수록된 ‘Everything I Own’이란 곡으로 영국에서 1위한 것을 비롯해 8개국에서 10위권 안에 들었으며 1992년에는 펫 샵 보이스(Pet Shop Boys)가 프로듀싱한 동명의 영화 주제곡 ‘Crying Game’으로 미국 싱글 차트(#15)에도 모습을 드러낸다. 재결합에 있어 계속 보이 조지와 멤버들 간의 의견차가 있었던 컬처 클럽은 1999년 일시적으로 가졌던 공연의 대성공으로 재결합에 합의한다. 속전속결로 다섯 번째 앨범 [Don't Mind If I Do]를 발표했고 평론가들에게 호의적인 평가를 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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