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류는 왜 욕을 먹을까? 막상 화두를 던져놓고 나서 아류의 뜻을 생각해보니 이 질문은 그야말로 우문(愚問)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아류는 '문학, 예술, 학문 등에서 독창성 없이, 뛰어난 것을 모방함. 또는 그런 작품이나 사람'이라고 정의돼 있다. 그 의미가 이럴진대 욕을 먹어도 싸지 않은가. 허나 그렇다고 해도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혹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을 떠올려보면 덮어놓고 욕만 하는 것도 능사는 아닌 듯하다. 막말로 표절도 아니고, 더군다나 그것을 소비하는 주체인 대중이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아류를 사랑해준다면 분명 재고의 여지는 있다.
스톤 템플 파일럿츠(Stone Temple Pilots, 이하 STP)는 동시대의 조류에 줏대 없이 편승했다는 비난을 온몸으로 받아낸 아류의 대표격(?)이다. 1992년 STP가 데뷔앨범 [Core]를 발표했을 때 당시 평단은 이들이 펄 잼(Pearl Jam)과 앨리스 인 체인스 (Alice In Chains), 사운드가든(Soudngarden)의 요소요소를 훔쳐 조악한 음악을 한다며 맹비난을 퍼부었다.
실제로, 육중한 리프(riff)가 넘실대는 'Sex Type Thing'에선 앨리스 인 체인스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고, 'Wicked Garden'과 'Plush' 같은 곡은 충분히 펄 잼을 연상시킬만했다. 특히, 'Plush'에서 스콧 웨일랜드(Scott Weiland, 보컬)가 들려주는 창법은 에디 베더(Eddie Vedder)를 흉내 낸 혐의가 너무나도 짙었다.
그러나 평단의 비난이 무색하게도 STP는 1993년 명실상부한 스타로 발돋움했고, 데뷔작은 플래티넘을 달성했다. 그 기세를 몰아 1994년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 [Purple]도 가볍게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Interstate Love Song'과 'Vasoline', 'Lounge Fly', 'Big Empty', 'Unglued' 같은 수록을 통해 헤비함과 멜로디를 결합시킨 자신들만의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평론가들의 시선은 고와지지 않았고, 이 즈음에 보컬리스트 스콧 웨일랜드가 코카인과 헤로인 소지 혐의로 체포돼 물의를 일으켰다. 그 와중에도 다음 앨범을 준비하던 나머지 멤버들은 2년의 발표주기를 지켜내며 세 번째 앨범 [Tiny Music...Songs from the Vatican Gift Shop] (이하 [Tiny Music])을 공개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데뷔작부터 대성공을 거둔 STP 스스로도 평단의 비난이 부담스럽긴 했던 모양이다. 아무리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아티스트라 해도 자신의 창작물이 평가집단한테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물론 그 반대의 경우보다야 낫겠지만- 분명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STP의 데뷔작부터 세 번째 앨범 [Tiny Music]까지는 아류라는 손가락질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의 과정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세 차례 시도 끝에 STP는 누구의 아류로는 느껴지지 않는 음악을 세상에 내보였다. 스트레스를 유쾌한 에너지로 바꾸는 연금술이라도 쓴 것 마냥 앨범의 분위기는 밝았고, 스콧 웨일랜드의 목소리도 전작들과는 달라도 너무나 달라졌다.
Ron Boustead - Editing Stone Temple Pilots - Art Direction, Design, Photography Tracy Chisholm - Engineer Dean DeLeo - Bass, Guitar, Handclapping, 6-String Bass Robert DeLeo - Bass, Guitar, Percussio..
STP는 [Tiny Music]에서 기타와 베이스의 공명을 최소화해 날것의 사운드를 내는 동시에 드럼의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컨셉트를 잡았고, 아류라는 비난의 빌미를 제공한 스콧 웨일랜드는 의도한 것인지 마약의 후유증 때문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짧은 호흡을 통한 꾸밈없는 목소리로 다른 멤버들과 조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딘 딜레오(Dean DeLeo, 기타)가 곡을 쓴 'Pop’s Love Suicide'와 로버트 딜레오(Robert DeLeo, 베이스)가 작곡한 'Big Bang Baby', 그 사이에 자리한 스콧 웨일랜드의 자작곡 'Tumble In The Rough'에서 엿보이는 일관성을 통해 함께한 세월을 무시할 수는 없는 밴드의 호흡을 새삼 느낄 수 있다.
당시 라디오를 통해 수없이 울려 퍼졌던 노래이자 드러머인 에릭 크레츠(Eric Kretz)가 쓴 곡인 'Trippin' on a Hole in a PaperHeart'도 앞서 언급한 세 곡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단연 일품의 그루브를 들려준다. 모든 게 변했지만 [Tiny Music]에서 단 하나 그대로인 것은 팝을 방불케 하는 캐치한 멜로디인데, 'Lady Picture Show'와 'Adhesive', 'And So I Know'에선 말랑말랑한 선율 위로 덮이는 스콧 웨일랜드의 거친 목소리가 예상외로 잘 어울린다. 그 외에도 기타소품인 'Daisy'는 햇살 좋은 나른한 날이 연상되는 슬라이드 기타연주가 인상적이고, 리드미컬한 전개에 이어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외침이 터져 나오는 'Art School Girl'도 재미있는 구성을 선보인다.
그런데 아쉽게도 [Tiny Music]은 전작들만큼의 흥행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스콧 웨일랜드의 약물문제가 다시 불거지는 바람에 프로모션 투어를 다니지 못한 탓이 컸다. 그로 인한 불화로 나머지 멤버들은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의 목소리를 닮은 보컬을 영입해 토크쇼(Talk Show)라는 새로운 밴드를 결성해 앨범까지 발표했고, 스콧 웨일랜드 역시 솔로 앨범을 냈다.
미운 정이나마 있었던지 이들은 재결합과 결별을 반복 -그 와중에 스콧 웨일랜드는 前 건스 앤 로지스(Guns N’ Roses) 멤버들과 함께 벨벳 리볼버(Velvet Revolver)의 보컬로도 활동했다- 하다 2010년 셀프-타이틀 앨범까지 [Tiny Music] 이후에도 세 장의 정규앨범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후로는 90년대 중반 때의 인기는 언감생심이었다.
평론가가 아류를 비난해도 대중들은 '제2의 ○○'라는 전략적 홍보문구에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STP가 아류라며 그토록 욕을 먹었지만, 나중에 스폰지(Sponge)같은 밴드가 또 '제2의 STP'라는 소개와 함께 등장하는 것을 보면 참 우습기도 하다. 어찌 보면 본류가 아류를 만들어내고 그 아류가 다시 다른 아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음악을 비롯한 예술이 확장해가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다만 STP는 복고나 고전의 재해석이라는 변명을 할 여지도 없이 동시대의 조류를 흉내 낸 만큼 평론가의 비난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래도 아류라는 비난 속에서 자신들의 색깔을 내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만으로도, 또 대중들이 그것을 인정하고 좋아해줬다는 것만으로도 STP는 인정받을 자격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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