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대한민국 중고생들이 그랬듯, 여왕과의 첫 대면은 멤버 네 명이 나란히 있는 사진을 담은 [Greatest Hits]였다(CD가 아닌 테이프였다). 처음 끌린 곡이 무엇이었냐고? 당연하게도 ‘보 랩(Bohemian Rhapsody)’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러하지 않았을까? 대중음악가가 만든 가장 웅장하고 장엄하며 아름다운 록 오페라는 순식간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퀸(Queen)은 나의 일상이 되었고 여정은 마치 복기를 하듯 거꾸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넘었다. 이제야 ‘나만의 베스트’를 꾸며볼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선다.
[Greatest Hits] 테이프는 결국 워크맨 사이에서 생을 마감했다. RIP. 다시 CD로 구입하기 전까지, ‘보 랩’과 ‘Killer Queen’은 가장 많이 들었던 퀸의 노래였다. 그리고는 1집과 2집을 구매했다. 아직 풋풋하고 세련되지 않았던 [Queen]에서는 ‘Keep Yourself Alive’에 액슬 로즈(Axl Rose)가 죽을 때 관에 넣어가고 싶다고 말했던 [Queen Ⅱ]에서는 ‘The March Of The Black Queen’에 매혹되었다. 특히 프로그레시브 록의 진면목이 담긴 ‘The March Of The Black Queen’은 밤마다 즐겨 듣곤 했던 ‘페이보릿 송’이 되었다. 그로부터 1주일 후 구입했던 3집 [Sheer Heart Attack]에선 원래 알았던 ‘Killer Queen’외에 ‘Brighton Rock’을 알게 되는 기쁨도 있었다. 떠들썩한 난장 같은 이 노래도 좋았다.
가장 잘 알려진 4집과 5집은 누구에게나 일정수위 이상의 감동을 제공하는 것 같다. 4집의 포문을 여는 첫 곡 ‘Death On Two Legs’의 초반부를 잠식하는 건반을 듣고는 구입을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브라이언 메이(Brian May)가 부른 깜찍한 ‘‘39’는 소품이었지만, 적어도 내겐 소품 이상의 충격을 준 노래였다. ‘블랙 앨범’에선 사랑스러운 두 노래 ‘The Millionaire Waltz’와 ‘Somebody To Love’에 애착이 갔다. 기억해보니 그때 여자에 대한 열병을 앓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함이 하늘을 찌르지만, 퀸의 음악은 그런 기억조차 소중하게 만들었다. ‘Good Old-Fashioned Lover Boy’의 제목은 완전 내 얘기였다. 하하.
사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퀸의 음반은 [News Of The World]와 [Jazz]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탄탄한 연주와 작곡, 구성력을 보여준 퀸의 전성기라 생각한다. 힘들 때 ‘Spread Your Wings’를 듣고 기운을 차렸고, 침잠하는 ‘My Melancholy Blues’는 안정제가 되었다. 그땐 너무 어렸고, 음악이 가장 좋은 치료약이라는 걸 알기까진 몇 년이 더 필요했다. 아, 이제 [Jazz]를 말해야 한다. 고민된다. 누구를 넣고 누구를 뺄까. 만치니(Roberto Mancini)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에이, 가장 많이 들었던 순으로 잘랐다. 남은 것은 ‘Jealously’, ‘Don’t Stop Me Now’로 밝혀졌다.
솔직히 [The Game] 음반과, [Flash Gordon] 사운드트랙에선 그렇게 애착을 두었던 곡이 없었다. 카세트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 ‘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만을 리스트에 남긴다. 그에 비해 [Hot Space]는 일각에서는 망작이라고 하는 작품이지만 정말 마르고 닳도록 플레이했던 음반이었다. 퀸 최고의 팝송으로 꼽고 싶은 ‘Las Palabras De Amor’는 거의 외우다시피 들었다. ‘Under Pressure’를 간과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귀에 감기는 곡들이 많았던 [The Works] 앨범에선 ‘I Want To Break Free’를 빼놓을 수 없었다. 조금 지겨울 때도 있지만 이 노래만한 마력을 뽐내는 록이 어디 흔한가? 그 옆에 퀸이 만든 가장 퀸다운 곡이라 생각되는 ‘Hammer To Fall’을 살포시 올려 둔다. [A Kind Of Magic] 앨범에선 ‘Who Wants To Live Forever’를 편애했다. 상상이지만 이 노래를 감상하고 있자면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의 목소리는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 들리기도 한다. 가끔 퀸의 후반기 앨범은 너무 구슬프게 연주되는 것 같다. 결과를 알고 있기에 더 그러한 것일지도 모른다. 퀸이 만든 최고의 진혼곡 ‘Innuendo’를 들으면 더욱 그러하다. 전편에 깔린 비의와 프레디의 처절한 보컬, 차마 끝까지 듣고 있기가 두려워지는 퀸 최고의 노래 중 하나이다.
그들의 마지막 앨범 [Made In Heaven]을 손에 쥔 사람들의 심정은 대부분 비슷하지 않았을까? 눈에 물기를 머금은 채 한 팔을 뻗어 공중으로 뛰어오르다 엄마한테 욕먹어 본 사람이라면 말뜻을 알아차렸을 수도 있다. 그렇다. 누구나 프레디가 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Made In Heaven’을 빠뜨릴 수 없다.
이미 3장짜리 베스트 앨범이 나온 적이 있는 위대한 그룹이지만, 아마 5장으로도 베스트가 부족한 팬들이 세고 넘칠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함을 밝혀둔다. 다만 여러분의 학창시절을 뜨겁게 달구었을 퀸과의 추억이 이 리스트를 통해 상기되었다면 흐뭇할 것 같다. 이제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부탁하건대, 어서 이 피투성이 리스트를 공격해 달라. 빠진 곡에 대해선 너무 노여워하지 말고.
음악을 심하게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내가 좋아하는 어떤 뮤지션/밴드의 특정한 어떤 노래/음반이 도대체 왜 누려 마땅한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지 분통 혹은 분노 혹은 불만을 터뜨려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지극한 팬심으로 그(녀) 혹은 그(녀)들의 대표곡/대표작에 순위를 매겨가며 폐인놀이를 즐겨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High Fidelity)]의, 한심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낙오자 삼총사처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참에 대놓고 그 짓을 해보기로 했다. 이름하여 'Custom Best Album'. 내가 사랑하는 뮤지션/밴드를 모셔놓고 그(녀)/그(녀)들의 '베스트 앨범'을 온전히 내 손으로 꾸며보는 것이다.
이건 어쩌면,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시대의 요청이다. 전 세대의 뮤지션/밴드에 접근하는 가장 손쉬운(그리고 경제적인) 방법이 베스트 앨범을 섭렵하는 것이라면,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그(녀)/그(녀)들의 정수를 누군가에게 소개하는 일만큼 즐거운 일도 없을 테니까. 역사적 의미와 개인적 취향을 적절히 조절해 선곡하는 것이 핵심임은 물론,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게다가 이제는 공테이프/공CD를 데크에 걸고 이 앨범 저 앨범을 뒤적이는 푸닥거리도 더 이상 필요치 않다. 음악을 파일 단위로 재생하는 시대의 이기가 커스텀 편집앨범의 신천지를 진작에 열어젖혔으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에 여러분도 '나만의 커스텀 베스트 앨범' 한번 만들어보시길 바란다.
영문학과 철학을 전공했고 현 대중음악평론가로 활약하고 있다. 잡지 [오이뮤직], [프라우드], [브뤼트]의 필자로 있었고 현재는 웹진 '100비트' 편집위원, '보다', 매거진 [독서평설], [유레카]의 필진이다. [네이버 오늘의 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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