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가상의 라이벌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영국의 엘튼 존(Elton John)과 미국의 빌리 조엘(Billy Joel)의 경우도 그런 사례 중 하나일 법한데, 소시적 괜히 나는 어느 한 쪽에 표를 던지기 어려웠다. 나는 종종 이 두 사람을 유비할라 치면, 가령 싱어가 노래 속 주인공에 이입되면서 노래에 대한 자의식을 드러내는 것처럼 들리는 음악(엘튼 존의 'Your Song'과 빌리 조엘의 'Piano Man')을 서로 대비하고 싶어지곤 했다. 어쨌든 몇 년 전에는 이 둘이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다 하니, 세간의 비교가 괜한 건 아닌 것도 같다.
당연하게도 엘튼 존의 음악을 이 짧은 지면에서 상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뮤지션 중 하나로서 2억 5천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기록했고, 50여 곡에 이르는 톱 40 히트곡들을 보유했으며, 굴지의 음악상을 수 차례 받았고,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등 40여 년 동안의 무수한 이력과 음악을 다 소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혼, 중독, 다식증, 커밍아웃 등에 이르는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그의 인생사와 더불어 여러 논란들이 있기도 했지만, ‘멜로디 메이커’로서 그의 탁월한 (대중적인?) 감각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유려한 목소리, 캐치한 멜로디 감각, 그리고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세련되면서도 인상적으로 주조해냈다. (한때 헤어지기도 했지만) 오랜 파트너로 공조해온 버니 토핀(Bernie Taupin)의 가사 역시 엘튼 존의 음악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또한 피아노를 연주하며 벌인 열정적인 무대 퍼포먼스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엘튼 존이 수많은 히트곡들을 쏟아내던 그의 전성기는 1970년대 초중반일 것이다. 그는 발라드, 로큰롤, 블루스, 컨트리, 프로그레시브 록, 알앤비나 소울, 재즈 등에 이르는 방대한 여러 음악 장르들을 융화시켜 ‘팝적’으로 만들어냈다. 일례로 1970년 두 번째 앨범 [Elton John]에 실린 ‘Your Song’은 “컨트리, 포크, 소울, 재즈에 알앤비 훅”이 담긴 곡으로 평가된다. 피아노를 기반으로 어쿠스틱 기타, 셔플 리듬 섹션과 우아한 현악 반주가 곁들여진 이 곡은 앞서 이야기했던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치는 순진무구한 사랑 노래인 동시에, 노래에 대한 자의식이 드러나는 곡으로 들린다. 이와 비슷한 뉘앙스의 또 하나의 노래를 고르라 하면 아마도 ‘Crocodile Rock’ (1973년작 [Don't Shoot Me I'm Only the Piano Player] 수록)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 홍키통키 리듬의 흥겨운 이 곡은 ‘노래 자체에 대한 노래’라 할 만한 곡이다.
이처럼 다채로운 음악을 그만의 팝적 감수성으로 만들어내는 앨범은 계속되어서, 가령 미국 서부에 대한 느슨한 컨셉트 앨범이라 할 [Tumbleweed Connection] (1970)에도 컨트리부터 블루스 등에 이르는 소스가 담겼고, [Honky Chateau] (1972)에도 경쾌한 부기 ‘Honky Cat’부터 다소 가벼운 수준의 사이키델릭 팝 ‘Rocket Man’까지 다양한 음악들이 포함되어 있다.
Elton John - Organ, Piano, Keyboards, Vocals, Vocals (bckgr) Dusty Springfield - Vocals (bckgr) Madeline Bell - Vocals (bckgr) Lesley Duncan - Guitar (Acoustic), Vocals, Vocals (bckgr) Herbie Flow..
물론 뭐니뭐니 해도 1970년대 초 엘튼 존을 수퍼스타로 만들어 준 앨범은 [Goodbye Yellow Brick Road] (1973)일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다양한 장르들이 총망라되어 있는 이 앨범에 수록된 많은 곡이 히트했다. 가령 “한국인이 애창하는 팝송” 중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는 아름답고 서정적인 발라드(‘Goodbye Yellow Brick Road’)는 물론이고, 포크(‘Candle in the Wind’), 하드 록(‘Saturday Night's Alright for Fighting’), 나아가 프로그레시브 록의 장대하고 변화무쌍한 서사성이 10여분 동안 담긴 곡(‘Funeral for a Friend (Love Lies Bleeding)’), 레개풍의 코믹한 노래(‘Jamaica Jerk-Off’)에 이르는 방대한 스타일을 포괄하면서도 그만의 탁월한 선율 감각이 흥미로운 피아노 연주와 유려한 목소리를 통해 전달된다.
1970년대 말, 80년대 초에 이르는 그의 행보는 다소 주춤하기도 했지만 [Jump](1982), [Too Low for Zero](1983)를 통해 재기에 성공했다. 1985년 ‘Live Aid’ 콘서트에서 조지 마이클과 함께 부른 ‘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원래는 1974년 [Caribou]에 수록된 곡)도 하나의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보다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은 영화 음악과 뮤지컬 음악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1994년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이언 킹]의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을 통해 아카데미 및 그래미 상을 수상하며 화려한 시절을 다시 한 번 구가했다. 그외에도 뮤지컬 [아이다], [빌리 엘리어트] 같은 음악을 통해 또다른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고 보면 그의 노래가 영화 속에 삽입되어 인상적인 순간으로 형상화된 경우들도 몇몇 생각난다. 배우 이완 맥그리거가 영화 [물랑루즈]에서 불렀던 ‘Your Song’,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어린 주인공을 대변하는 듯한 ‘Tiny Dancer’ 등은 영화 속 장면을 더 또렷이 기억에 남게 해주는 매개체로 기능하지 않았던가.
한편으로, 진작에 섹시 스타 매릴린 먼로에게 헌정되었던 ‘Candle in the Wind’가 20여 년 뒤 왕세자비를 추모하는 곡으로 재활용되는 순간도 있었다(정확한 제목은 ‘Candle in the Wind 1997’이고 다소 내용이 바뀌었지만). 이를 통해 또 다시 단기간 동안 최고의 싱글 판매고 기록을 경신하는 것을 보며 나는 조금 씁쓸해졌다.
그래도 그래미 어워드에서 엘튼 존과 레이디 가가가 함께 하는 무대를 보며 조금은 부러워졌다. 젊은 뮤지션과 함께 목소리를 맞출 수 있는 문화적 맥락도, 시간이 흘렀어도 퇴색되지 않는 그만의 에너지도….
오랜 세월 대중음악웹진 'weiv'에 있었다. [오프 더 레코드 인디 록 파일], [한국 팝의 고고학 1960, 1970]의 공저, [한국의 영화음악: 1955~1980]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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