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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프로파일 15탄 - 들국화

솔직히 나는 들국화가 한국대중음악사의 가장 명징한 순간으로 추앙받는 첫앨범 [들국화]를 발표했던 1986년, 혹은 라이브앨범까지 발표하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그 시절에 들국화를 잘몰랐다. 들국화라는 밴드의 존재조차 몰랐다는건 아니다. 다만 내가 막내삼촌과 친척형/누나들 어깨너머로 주워들은 팝음악얘기와 보유한 몇장의 LP들 - 저니(Journey), 오지오스본(Ozzy Osbourne), 딥퍼플(Deep Purple) 등에 빠져있던 시건방진 어린녀석이었다는 얘기다. 풀어 말하자면 뭣도 모르면서 한국음악은 뭐가 안되네 이러고 자빠졌던 놈이었단 말이다.

그래서 들국화에 대한 구체적인 첫기억은 중학생이던 1980년대 후반, TV 방송에 등장한 모습이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여러 록밴드가 등장했던 특집프로그램으로 기억한다. 어린 마음에 정말 커다란 무대였다. 그 큰무대 한가운데 놓인 마이크 스탠드 앞에 장발의 아저씨(보컬리스트 이름이 전인권인지도 몰랐다)가 어색한 양복차림으로 섰다. 그리곤 띄엄띄엄 노래를 시작했다. 관객과의 호흡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뻣뻣하게 서서 연주하는 멤버들 덕분에 큰무대는 더휑해 보였다. 그러나 곧 마법이 일어났다. 발성법 따위는 가볍게 무시한 것 같은 보컬리스트의 외침이 공간 전체를 가득 메워버렸다. 무대는 어느새 가만히 연주하고 노래만하는 멤버들의 기운으로 꽉채워졌다. 하지만 아쉽게도 방송은 '그것만이 내세상' 연주를 마무리 짓기도 전에 끝나버렸다.

다음날 나는 들국화가 출연한 방송얘기를 꺼내며 친구들로부터 들국화에 대한 정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음악좀 듣는척하는 되바라진 중학생들이 할 얘기들이 뭐있겠나, 전인권의 보컬이 몇옥타브니, 어떤 창법으로 노래하네, 주찬권이 한국서 드럼을 제일 잘친다등등 별시답잖은 것들뿐이었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이런 얘기들이 더해지면서 어느 틈엔가 들국화는 살아있는 전설이 되어있었다. 꾸역꾸역 모은돈으로 레코드 가게에 갔다. 이미 두 장의 정규앨범에 베스트앨범과 라이브앨범까지 상당히 여러 장의 음반이 있었다. 오지 오스본의 [Tribute](1987)와 딥퍼플의 [Made in Japan](1972)에 감동하던 시절이었다. 주저없이 [들국화 Live Concert]를 꺼내들었다.

사람에따라 다를지몰라도 나에게 이 선택은 행운이었다. 내가 좋아하던 'He Ain't Heavy He's My Brother'와 'Come Sail Away'의 리메이크도 함께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것만이 내세상', '행진', '축복합니다',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오후만 있던 일요일' 등 훗날 나를 사로잡게되는 들국화의 1집의 수록곡보다 이미 친숙한 두 곡의 존재가 더 반가웠다. 심지어 "배를 저어가자~ 험한바다 물결건너~"라며 '희망의 나라로'를 'Come Sail Away' 중간에 장난스럽게 집어넣은 대목까지 맘에 들어버렸다.

그렇게 뒤늦게 [들국화]와 [들국화 II]를 순서대로 집어들었다. [들국화] 앨범에 대해 무슨말 필요할까? 세상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을것만 같은 지름의 기운, 그리고 그와 등치될 수 없어보이는 균형감. 어느곡 하나 버릴수 없는 빛나는 작품이었다. 그렇게 들국화는 역사를 새로 써갔다. 하지만 나는 후발주자였다. 그것도 많이 늦은.

앨범명
1집 들국화
아티스트 및 발매일
들국화 | 1985.09.10
타이틀곡
행진
앨범설명

한국 대중음악 역사상 영원한 성역과도 같은 이 기념비적인 작품에 더 이상 어떠한 찬사와 부연설명이 필요할까? 격동의 1980년대를 대표하는 젊은이들의 송가였던 도발적이고 선동적인 "행진 한국형 록 발라드 "그것만이 내 세상"과 "사랑일 뿐..

처음부터 허점을 찾기 힘들었던 1집과 달리 뭔가 빈구석이 많았던 [들국화 II]에서 '쉽게', '제발', '너는' 등의 매력을 건져내며 기뻐하고 있을때, 이미 들국화는 전인권과 다른멤버들로 갈라선 후였다. 허성욱과 전인권이 [추억, 들국화 - 머리에꽃을]을 발표했지만, 이미 들국화가 아닌 상황이었다. 주찬권과 최성원의 솔로앨범도 잇달아 발표되었다. 모두 좋은 앨범이었지만 들국화는 아니었다. 전인권은 전인권대로 무대위에서 자신의 백밴드를 들국화라 불렀고, 주찬권과 최성원을 중심으로 한 팀역시 들국화의 이름으로 라이브 활동을 이어나갔다.

1994년 여름, 나를 포함한 들국화의 팬들은 들국화라는 이름을 내건 다른 두 팀의 공연을 만나야했다. 여름과 가을사이에 펼쳐진 두 팀의 공연을 보고 나오는 감회는 참으로 묘했다. 한쪽에선 '세계로 가는 기차'를 마지막 곡으로, 또다른 한쪽에선 '행진'을 앵콜곡으로 관객의 끝없는 싱얼롱을 유도했다. 관객들 모두 열심히 따라 불렀지만 그어느 공연장에서도 [들국화 Live Concert] 앨범에 담겨있던 어설픈듯 하면서도 번뜩이는 재치와 천재성이 교차하는 찬란한 순간을 다시 만날 수 없었다. 그저 기술적으로 라이브 연주를 아주 잘하는 프로뮤지션들의 공연일 뿐이었다.

앨범명
3집 들국화 3
아티스트 및 발매일
들국화 | 1995.04.01
타이틀곡
우리
앨범설명

'태백산맥' 출신의 민재현과 '송골매' 출신의 이건태의 라인업으로 새롭게 재결성된 들국화의 작품이다. 애절한 보컬이 돋보이는 "쉽게 본래 내지르는 스타일을 선호하는 전인권의 절규를 만끽할 수 있는 "기분전환 허밍을 이용한 독특한 샘플링..

1995년 [들국화 3]라는 타이틀의 앨범이 발매된다. 전인권을 주축으로 새로운 멤버로 구성된 신진 들국화는 데뷔앨범을 연상시키는 커버아트부터 전성기의 재현을 노렸다. 따지고보면 1990년대에 들어 삐걱대던 전인권의 행보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라이브 무대에선 트윈드럼체제를 통해 묵직한 사운드를 구축하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인권, 최성원, 허성욱, 조덕환, 주찬권이 만들었던 깊이를 재현할순 없었다. 손진태, 최구희등 당대의 기타리스트들이 달려들어도 채울수없던 담백한 조덕환의 공백은 끝내 전인권의 스트로크 중심의 기타로 담담히 채워졌다. 드럼마스터 이건태가 스틱을 잡았건만 주찬권의 리듬보다 멜로디에 선을 댄 독특한 드러밍의 아우라를 넘어설 수 없었다. 그렇게 들국화는 생을 마칠듯 보였다.

1997년 겨울의 초입에서 비보가 날아왔다. 1982년 8월에 이촌동에 위치한 카페 ‘까스등’에서 전인권과 함께 들국화의 역사를 열었던 허성욱이 캐나다에서 교통사고로 생을 달리한 것이다. 이 사건의 충격은 전인권, 최성원, 주찬권의 오리지널 들국화를 끌어모았다. 1998년 6월 "10년 만의 해후"라는 타이틀을 건 들국화 공연이 펼쳐졌다. 함께 무대에 오를 준비가 되고, 안되고를 떠나 무려 10년 만에 세사람이 들국화의 이름으로 한 무대에 섰다는 그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감동했다. 지금까지도 이들은 가끔씩 들국화의 이름으로 관객을 만난다. 하지만 들국화의 이름을 건 새로운 앨범을만들 것 같지는 않다. 25년 전에도 조금씩 다른 방향을 향하던 멤버 각자의 음악세계가 각각 한없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이는 1986년의 불꽃 같은 균형감이 워낙 완벽했다는 얘기와 같다. 그렇다. [들국화], [들국화 Live Concert], [들국화 II]는 한국대중음악의 역사에서 가장 놀라운 순간이었다.

앨범명
2집 들국화 II
아티스트 및 발매일
들국화 | 1986.09.01
타이틀곡
제발
앨범설명

세션이었던 최구희, 주찬권, 손진태가 정식 멤버로 가입하여 보다 완벽한 라인업을 구축한 작품이지만, 전체적으로 감수성 어린 최성원의 영향력이 지배적인 탓에 전작의 패기와 열정이 다소 거세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렇지만 절대 함량미달..

100비트 | 조일동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호오는 분명하지만, 취향의 다름을 옳고 그름이라 오해하는 자들을 경멸하는 음악딴따라 글쟁이이자 문화인류학꾼. 변방의 잡놈들의 네트워크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믿고 있다.

http://100be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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