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라디오헤드(Radiohead)는 '레전드'라는 이름의 기획에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아직 멀쩡하게 활동하고 있을뿐더러, 과거의 영광 이후 어지간한 근작을 이어가는 수준도 아니다. 지금도 그들과 관련 있는 뉴스는 음악계의 헤드라인이다. 이들의 새로운 음악이 어떤 관심을 받는지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라디오헤드는 도대체 한국에 오지 않는 것만 빼고 최고다.
이 대단한 밴드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대개 첫 싱글 'Creep'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한국에서 이 노래는 특별하다. 'Creep'은 '실시간 차트 Top 100' 이전에 한국 카페음악을 지배했던 몇 개의 트랙 중 하나였다. 스트리밍 사이트와 K-Pop 부흥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지금도 커피를 마시면서 'Creep'을 들어야 할지 모른다. (진심으로 두렵다.) 지산밸리 록페스티벌에서 선보인 UV Land의 90년대 메들리가 이 노래로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사실 'Creep'은 라디오헤드 본인들에게 더 중요한 노래다. 그저 그랬던 데뷔 앨범 [Pablo Honey]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앨범 [The Bends]의 제작과 홍보에서 상당한 수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The Bends]는 아주 훌륭했고, 상업적으로는 아직 의아했지만, 밴드 자신들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The Bends]는 라디오헤드가 만든 대중적인 의미의 기타록 밴드 앨범으로서 최고치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High and Dry', 'Fake Plastic Trees', 'Street Spirit (Fade Out)' 같은 싱글들은 지금도 제 역할을 다 한다.
그리고 '세기말 블루스' [OK Computer]가 나왔다. 정서적으로 영국이지만 사운드에 있어서는 미국의 색채를 담고 있던 특이성, 아티스트로서의 자기 확신, 창작 상의 완전한 자유와 스타일에 대한 탐구 등이 섞인 결과물은 놀라웠다. 말 그대로 나오자마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단 하루 만에 모든 아이들이 6분이 넘는 'Paranoid Android'와 그 노래의 애니메이션 비디오에 관해서 말하던 것을 기억한다. 그 시절 우리에게 유튜브는 고사하고 브로드밴드도 없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던 라디오헤드는 이 앨범과 함께 시작한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마음대로 하라고 했는데 잘 되면 무엇이든 해도 된다. 그래서 우리는 [Kid A], [Amnesiac]을 갖게 되었다. 두 앨범은 얼마나 특이한지 말하는 것은 머쓱할 정도로 성공했다. [Kid A]는 싱글 한 장 안 나왔고, [Amnesiac]은 [Kid A] 세션 중의 다른 곡들로 만든 'Kid B'로 알려졌음에도 그렇다. 하지만 이 성공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비슷하게 반복된 적이 없는 오직 라디오헤드만이 보여준 성공이라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그러니까 라디오헤드는 그냥 라디오헤드가 되었다.
지구상에서 현존하는 최고의 록밴드 래디오헤드의 97년도 앨범이다.그들의 정규 3번째에 해당하는 본작이 주는 충격은 새천년이 온 지금에도 유효하다.첫 앨범에서의 creep이 주는 압박감은 이들에게 커다란 스트레스로 작용했다고 하는데..
당시의 충격에 비해, 두 앨범은 즐길만한 부분이 많다. [OK Computer]와 [Hail to the Thief] 이후의 작품들을 무리 없이 연결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다. [Hail to the Thief]에서 현재 라디오헤드의 음악적인 모습을 완성하고 그 후로도 꾸준하게 유지하는 수준을 본다면, 꼭 거쳐가야 했던 무엇으로 보일 정도다. 사실 '2+2=5'나 'There There' 같은 노래들이 'Optimistic'이나 'Pyramid Song' 같은 곡들에 비해서 더 친절하다고 할 수도 없다.
음악적인 문제에만 머물렀다면 라디오헤드가 그렇게 뜨거운 밴드로 남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이들은 음악이 세상으로 나가는 방식을 바꾸는 데 앞선 사람들이다. 첫째, 개별 아티스트로서 웹 방송을 적극 활용했다. 현재 유행하는 각종 라이브 세션이나 신곡 공개 등은 라디오헤드가 홈페이지를 통해서 시도했던 역사를 무시할 수 없다. 둘째, 유명한 [In Rainbow] 앨범 판매를 통해서 새로운 음악 유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우리는 더 이상 아티스트에게 직접 대가를 지불하는 일을 신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것들 역시도 라디오헤드의 이름 아래 가능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시작하고 보여주어야 했던 것은 틀림없다.
그래서 라디오헤드는 단지 잘 나가는 밴드가 아니다. 평론가와 음악애호가들에게 공히 최고 수준의 '사랑'을 받는 아티스트가 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음악에 관심이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이름을 알고, 평자와 팬의 입장에 상관없이 그 음악을 높이 평가하고, 대다수가 그들을 좋아하고, 더불어 그들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는 밴드가 되는 일이다. 현재 라디오헤드는 시간의 평가를 면제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아티스트다.
웹진 '보다' 필자. 자고로 인간 영혼의 고결함과 능력은 그가 즐기는 향락을 통해 엿볼 수 있다. (Matthew Arn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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