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희(웹진 '백비트' 편집인)님의 앨범리뷰
처음 장기하와 얼굴들의 무대를 접했을 때 지적인 육각수라는 생각을 했다. 그대로 따라 부르기엔 호흡이 힘들지만 그의 입에 착착 붙고 우리의 귀에 쏙쏙 붙는 시시콜콜하면서도 구수한 가사가 그랬고, 제대로 웃기는 노래를 만들어 춤까지 붙여 무대로 올라갔는데도 싼티가 전혀 안 나서 그랬다. 좌우간 오래 잊고 있던 어느 유쾌한 가수..
처음 장기하와 얼굴들의 무대를 접했을 때 지적인 육각수라는 생각을 했다. 그대로 따라 부르기엔 호흡이 힘들지만 그의 입에 착착 붙고 우리의 귀에 쏙쏙 붙는 시시콜콜하면서도 구수한 가사가 그랬고, 제대로 웃기는 노래를 만들어 춤까지 붙여 무대로 올라갔는데도 싼티가 전혀 안 나서 그랬다. 좌우간 오래 잊고 있던 어느 유쾌한 가수가 문득 떠올랐을 만큼 큰 웃음 줬던 퍼포먼스, 그리고 이를 기초로 해 사용자가 제작한 이런저런 2차 콘텐츠들이 광장급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넷심을 움직인 핫이슈가 됐는데, 최근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하면서 무려 고현정한테 인터뷰를 당하는 정도로 사회적 계급이 상승했으니 이제는 과연 뮤지션계의 슈퍼스타라 말해도 허언이 아닐 것 같다. 게다가 그런 번영에 충분히 수긍할 만한 준수한 작품으로 복귀했고 합당한 반응이 돌아오고 있는 중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지칠 줄 모르고 주단위로 한 다발씩 쏟아내는 리메이크 곡의 폭격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노래는 섞인다. 부상하던 순간은 그야말로 벼락과 같았지만 막상 첫 번째 정규앨범 앞에서 좀 미적지근한 평가를 얻었던 몇 해 전과 달리, 그들은 지금 다시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는 것 같다.
우선 앨범 발표 이전의 정황. 1집까지 함께 활동하던 미미 시스터즈와 결별한 상황을 그들은 참 그들다운 용어로 정리했다. 합의이혼. 이혼 후 감당하게 되는 마음의 파동을 다만 짐작하기를, 일단 가볍지 않은 혼란을 겪었거나 일시적으로 해방감을 누렸을 것이고, 이참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이며, 그 변화는 무언가에 깊게 집중하면서 마침내 시작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인데, 실제 미혼이라 쳐도 이 모든 과정을 해치웠을 것으로 사료되는 장얼과 미미는 우리가 상상하는 이혼의 발전적인 후일담을 들려주고 있다. 부부사이라 말하긴 좀 느끼하지만 어쨌든 장얼과 미미는 함께 활동하던 시절 밴드가 추구하는 음악을 보다 명확하게 전달하는 차원에서 매우 긴밀한 관계였을 것이고, 결별 후 각각 어떻게 이력을 관리해야 할지를 생산적으로 고민하지 않았을까 싶어진다. 둘은 때때로 일치하고(하세가와) 때때로 완전히 다른 뮤지션들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미미처럼 예측할 수 없었던 음악 그리고 장얼처럼 기대 이상의 음악을 차차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이혼 또한 여유와 재치의 그들 무리에게 흥미로운 미션이라 말하는 것처럼.
좌우간 공식 이혼 발표 후에 앨범이 나왔다. 전작이 장기하가 주도하는 1인 송라이팅 중심의 음악이었다면, 공연멤버로 활동하던 얼굴들의 지분을 넓혀 완전한 밴드 구성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설명하는 앨범이다. 그러나 기획 차원에서 새 앨범을 드러낸 전략은 홍보의 1타 콘텐츠인 15초짜리 티저만 없었다 뿐이지 사실상 주류 아이돌의 매뉴얼에 가까웠다. 1집 시절에는 뮤직 비디오가 하나도 없었다고 말하는 장기하는 2집을 앞두고 감독 데뷔라는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첨부했고, 처음이라 소개하면서도 전혀 엉성하지 않은 작품을 먼저 공개했다. 멍하니 TV를 바라보다 웃다가 졸다가 하는 'TV를 봤네'의 뮤직비디오는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장기하도 똑같다는 일상기반의 연출로 우울한 군상들을 위로하면서 앨범에 대한 기대치를 높였고, 그 기대가 팽배해져 있을 타이밍에 바로 앨범을 풀었다. 그리고 일각에서 손짓이 참 은근히 야하다고 평가되는 또 다른 장기하 감독작 '그렇고 그런 사이'의 뮤직 비디오를 열었고, 공연장은 원래 밴드니까 그렇다 쳐도 마치 막 새 노래 발표한 아이돌처럼 녹화장으로 곧장 가서 청중을 만났다. 수많은 밴드 사이에서 '선영상 후앨범', 그리고 출반과 함께 TV 출연이 즉시 이루어진 사례가 또 있을까. 있을 수 있지만 크게 호응이 따른 전례는 애석하게도 몹시 드물 것이다. 어쨌든 장얼은 여기서도 새로운 기록을 남긴 게 분명하다.
그리고 노래들. 가사와 멜로디보다 사운드 차원의 재치가 보다 두드러지는 편이다. 일부분에선 트랙리스트 순서를 따라 제목과 제목을 이으면 문장이 완성될 만큼 배열에 신경 쓴 흔적이 역력하지만, 다만 첫 곡 '뭘 그렇게 놀래'의 경우 수록곡들 틈에서 예고의 역할을 하기에는 좀 약하게 느껴졌다. 이어지는 곡들이 훨씬 자극적이기 때문에 그랬는데, 거듭해서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고 있다. 앨범의 방향을 예고하는 가장 정직한 노래, 그리고 감상에 있어 점층효과를 노린 결정으로 보인다. 반대로 앨범에서 가장 튀는, 시종일관 뿅뿅대는 '그렇고 그런 사이'는 정신없이 소리를 쏟아내지만 다행히 마냥 성급하고 요란한 게 아니라 세대불문으로 사람의 기분을 고조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 리쌍의 앨범에서 미리 접해 친숙한, 그리고 특히 도입부에서 어쩐지 쨍하고 해가 뜰 것 같은 '우리 지금 만나', 잽싸게 전환에 전환을 거듭하는 즐거운 격변의 '보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 한참 달리고 난 뒤 서글픈 듯 아름다운 전개로 휴식을 주는 '그때 그 노래'와 '마냥 걷는다' 등 앨범의 수록곡들은 그들 음악의 줄기가 한탄이자 불만이라는 사실을 갑자기 잊게 만들기도 한다. 무엇인가 때문에 자신이 한심했고, 무엇인가 때문에 자신이 억울했던 상황을 보컬 장기하는 늘 그랬던 것처럼 또렷한 발음과 랩에 가까운 내레이션으로 전달하지만, 건반 중심의 편곡이라는 일관된 흐름 안에서 입체적으로 또 다각적으로 궁리한 풍성한 사운드에 어느 순간 이야기 이상으로 취해버리고 만다.
그러다 막판에 이르러 장얼은 그동안 무엇을 꾸준히 좋아했고 연구했으며 그러다 어떻게 이루었는가를 강도 높게 말한다. 8분에 달하는 서사 구성의 야심작, 혹은 장얼 버전의 '보헤미안 랩소디'라 말할 수 있을 만큼 복합적인 전개를 펼치는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의 이야기다. 방송3사의 심의와 싸우기를 이미 포기한 가사 속의 몇몇 수식어가 일러주는 것처럼, 노래는 밴드가 만끽하는 가장 자유롭고(또 비타협적이고) 가장 진지한(또 싸이키한) 순간을 다룬다. 아울러 전부터 지금까지 그들 곁에 있는 산울림, 송골매, 신중현 같은 영웅의 이름들이 가장 선명해지는 자리이기도 하다. 데뷔 앨범 당시엔 1970년대 국내 밴드 음악을 많이 들었고, 새 앨범을 준비하면서 건반악기를 많이 쓴 옛 영미 밴드 음악을 많이 들었다고 하는데, 레퍼런스를 넓히는 이 같은 작업이 되려 EP와 1집에서 들려주었던 초기의 작품들을 보다 명료하고 명쾌하게 부각해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훌륭하다고 인정하지만 너무 가까이에 있어서 그랬을까, 교본으로 삼기에 그리 빈번하지도 수월하지도 않았던 선배들을 소환하는 순간은 퍽 낭만적이고 또 인간적이다.
복고를 꽤 세련된 방식이라 여길 때가 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먼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닌가 한다. 장얼과 장얼을 즐기는 젊은 세대에게 장얼의 우상들이 먼 존재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직관과 추상의 빈티지보다는 훨씬 가깝고 친숙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이 구체적이고 살가운 과거지향을 세고 강하게 드러내려는 장얼의 음악은 끊임없이 말을 토해내고 다채로운 소리를 입히는 것으로 빈틈을 아낀다. 아마도 재생이 지속되는 동안 상념이 개입되는 순간은 '그때 그 노래'와 '마낭 걷는다' 정도일 것이고, 또 다른 느슨한 노래 'TV를 봤네'는 주기적으로 안정의 코러스를 싣는 것으로 바쁘게 진행된다. 재치는 물론 유지되지만 그 이상의 무게에 골몰했고, 아직 여물지 못했던 전작의 허점을 적극적인 연주와 충원된 인력으로 보완했으며, 모처럼 친숙한 듯 신선한 사운드가 의욕적으로 쏟아지는 이 의기양양한 앨범에 균형 차원에서 덧붙여야 할 자질이 있다면 그건 겸양인데, 그건 변함없이 자조적인 가사가 담당하고 있다. 허세와 진중함, 향상과 매너가 이렇게 명백한 앨범 앞에서 모질게 말하기도 칭찬을 망설이기도 좀 어렵다. "좋지 않으면 안 되는 음반"이라고 돌려서 말하는 재주가 나는 별로 없다. 이건 그냥 좋은 앨범이다.